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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한국 사회 뒤흔드는 미투 운동 - 심리학] 권위주의에 민감하고 연대의 힘 발휘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민주화 이후 교육받은 ‘82년생 김지영 세대’…권력·논리적 구조도 달라져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서 지적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비대칭성은 우리 사회에서도 성폭력을 보고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돼왔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사실을 숨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걸림돌은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품행’을 탓하거나 심지어 ‘꽃뱀’으로 낙인 찍는 사회적 풍토다. 이런 가운데서도 미투 운동의 열기가 뜨겁다. 미투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한국 여성의 심리적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폭력의 피해자들은 폭력 피해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존 몸짓이다. 폭력 신고가 재발을 방지하는 사회적 기능도 있다. 그런데 성폭력의 경우 이미 언급한 이유 하나하나가 한국에서 피해자의 신고를 억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2018년 한국 여성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성추행 혹은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는 과정은 오랫동안 억눌러온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정화하는 치유 효과가 있다. 프로이드가 심리치료를 창시할 때 그의 환자들은 주로 여성 신경증 환자들이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아동기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보고가 있다. 현재 심리치료 현장에서도 내담자의 과거 성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상흔을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이 치료 효과가 있다고 본다.

미투 운동은 비밀이 보장되는 치료 공간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공개성은 오래된 성폭력 피해 역사에서 매우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고 있다.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수치스럽다고 학습된 성폭력 피해 경험을 유사 경험을 한 타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객관화하므로 그동안 자신들이 지고 있던 성폭력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오롯이 되돌려주고 있는 현상이다. 상식적으로 폭력 가해의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다. 그러나 성폭력의 경우 그동안 어이없게도 사회가 책임과 잘못을 피해자에게 묻고 있었다. 그것을 우리 사회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미투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30, 40대 한국 여성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이른바 ‘82년생 김지영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교육에서 남녀차별이 크지 않아 사회에 많이 진출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 문화 탓에 사회 진출이 아주 쉽지는 않았고 다양한 차별도 경험했다. 또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 탓에 구성원 중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이 쉽게 성폭력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런 한편 이들은 민주화 이후 공교육을 받은 세대여서 권위주의와 차별에 민감하고 참여 정치에 적극적인 세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밝은 이들이 사회에서 더 이상 어리고 약하지 않은 것도 연대의 힘을 발휘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미투가 내포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권, 차별 없는 권리의식에 대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더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었던 사람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기도 한다. 또 공개적으로 피해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무고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잘 발전시켜야 하는 것도 과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미투 운동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어 보인다.

촛불혁명으로 민주의식이 한층 더 성숙해진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약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할 수 없는 권력·논리적 구조가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일반 국민의 감수성이 높아져 이제 성추행·성폭력 사건에서 작용하는 권력 남용의 실체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최진영 교수는… 한국임상심리학회장이다. 신경심리연구회 회장, 미래부 뇌연구촉진실무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1430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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