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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한국 사회 뒤흔드는 미투 운동 - 문화인류학] 견고했던 남성동성사회에 균열 조짐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섹슈얼리티의 정치화·민주화 영향…새로운 남성성 탄생할 공간 넓어져

미투 운동처럼 한국 근대사에서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이슈가 정치의 영역까지 장악하며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미투 운동을 보도하는 미디어나 언론은 기득권이나 우월적 지위를 가진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성적인 방식으로 제압하고 폭력을 휘두른 것에 주목한다. 미투의 대상인 된 남성들은 ‘위선적’이며 ‘뻔뻔스러운’ 일탈적 개인으로 그려진다. 몇몇 문제의 남성만 ‘제거’되면 다시 ‘정화된’ 세상이 올 것이라는 착각을 갖게 한다. 성폭력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문화에 대한 분석과 성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문화’다. 남성동성사회(male homosocial society)의 문화는 섹슈얼리티를 심하게 왜곡된 형태로 경험하게 한다. 학교·군대·조직에 걸쳐 강화된 한국의 남성동성사회는 사회라는 공적 영역은 남성이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다. 남성들끼리만 자원과 정보를 교환해 여자를 배제하는 배타적인 남성 연결망이다. 이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남성들 간의 위계도, 연대도 강하다는 점이다. 남성동성사회에서 남성은 자기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남성이나 동료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료나 가족관계의 여성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남성 집단에서 안정적인 멤버십을 갖기 위해서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여성을 희롱·조롱·멸시하는 문화를 다른 남자로부터 배운다. 행여 여성과 협력하거나 평등하고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면 주변 남성들로부터 여자 같다고 놀림을 받는다.

지위 없는 남성 또한 권력 있는 남성으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고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그런 자리에 올라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남성들은 불의를 참는다. 자신의 눈앞에서 불합리한 성차별이나 성폭력이 일어나도 말하지 않고, 나서지 않고, 권력자를 위해 은폐에 가담하기도 한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힘 있는 남성은 자신의 성추행이 목격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성성을 입증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지위와 직장을 위협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피해자를 조직에서 제거하고 없애버리기도 한다.

남성동성사회의 문화는 한국의 부권적 가족제도와 결합해 ‘훌륭한 가장’ 신화를 낳았다. 가족을 부양하는 기혼남은 사회에서 무조건적으로 찬양된다. 결혼한 아내와 정서적인 친밀도가 낮고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경제적 가장 노릇을 잘 해왔으면 인정을 받는다. 정작 자신의 성적·정서적 친밀성을 발휘해야 할 가족이라는 공간에서는 오히려 표현을 못한다. 진짜 삶의 모험이 일어나고, 성적 흥분이 발휘되는 곳은 남성들이 몰려있는 직장·일터·스포츠의 영역이라 믿기 때문이다. 가족은 불평등한 성역할만 남고 건조한 공간이 된다. 모든 성적 흥분과 경쟁은 공적 장소에서 왕성해진다.

문제는 이런 문화에서 태동한 주류 남성성은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에서는 수용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섬세하고 정직한 개인주의적 감각으로 일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무엇보다 결혼은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라며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는 비혼 여성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남성 비혼자도 증가 추세다. 결혼 관계에 들어가지 않으며 사랑과 성적 친밀성을 탐색하는 시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권력이나 지위를 성적 쾌락의 양적비례와 동일시되는 남성은 ‘적폐’로 간주된다. 상호인정, 정직함, 평등함, 상호 쾌락, 자부심, 행복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섹슈얼리티의 정치화와 민주화를 외치는 미투 운동은 남성동성사회의 문화에 균열을 냈고, 이 균열 속에서만 새로운 남성성이 탄생할 수 있다.

※ 김현미 교수는… 한국여성학회 부회장이자 국무총리 산하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이다. 한국문화인류학과 부회장을 역임했다.

1430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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