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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줄일 묘수는] ‘일자리 창출’에서 ‘단절 방지’로 방향 틀어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대기업·금융권 등 유연근무제 실시로 대체...‘양질의 일자리’ 지적에 경단녀 채용 부담 느껴

▎여성 친화기업이 대거 참여한 한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장미란(31)씨는 2004년 스타벅스커피코리아에 커피 바리스타로 입사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점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편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결국 10여년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장씨는 “적성에 잘 맞고, 즐겁게 일한 직장을 나오니 상실감이 컸다”며 “이러다 나만 도태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퇴직과 동시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 후 육아에만 전념하던 장씨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3월 스타벅스의 ‘리턴맘 바리스타 프로그램’에 지원해 3년여 만에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 장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을 활용해 하루 4시간만 일한다. 시간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장씨는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육아와 병행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며 “재취업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고, 직장은 물론 가정 내 행복지수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2003년 여성가족부와 ‘리턴맘 재고용 프로그램 협약’을 맺었다. 출산이나 육아 등을 이유로 퇴사한 스타벅스 직원에게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직 스타벅스 여성 관리자를 정규직 부점장으로 다시 채용한다. 세계 스타벅스 매장 중 리턴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이 회사는 일과 가정생활 양립을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최대 2년까지로 확대하기도 했다. 2013년부터 해마다 운영한 결과 5년 새 113명의 직원이 ‘리턴맘’ 자격으로 복귀했다. 리턴맘 바리스타는 주 5일, 하루 4시간씩 근무하는 시간 선택제 매장 관리자로 일한다.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원칙에 따라 이들 역시 정규직으로서 상여금과 성과급, 학자금 지원 등 다양한 복리후생 혜택을 누린다. 본인 거주지와 가까운 매장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본인이 원할 경우 하루 8시간씩 근무하는 전일제 근무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스타벅스는 “전체 관리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80% 이상일 정도로 여성 친화적인 기업”이라며 “우수한 직원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고, 이들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타벅스, 리턴맘 재고용 프로그램 적극 운영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2만 명을 훌쩍 넘었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경단녀를 위한 채용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던 대기업마저 잠잠한 분위기다. CJ그룹은 2013년부터 경단녀 재취업 지원을 위해 ‘CJ 리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매년 200여 명을 인턴 자격으로 선발해 그룹 내 주요 계열사에 배치했다. 이들은 6주 간의 인턴 기간을 마친 후 평가를 거쳐 최종 입사했다. 몇 년 간 대기업의 경단녀 채용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부터 아예 실시하지 않고 있다. CJ그룹은 “올해도 아직 예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신입채용 규모도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경단녀 채용을 실시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기존 직원들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실시나 육아휴직 기간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독려하는 등 복지혜택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동안 경단녀 채용에 적극적이었던 은행권도 방향을 틀었다. 시차출퇴근제 등 제도를 개선·확대해 기존 직원들의 경력 단절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광주은행과 전북은행 등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3~4월 두 달 간 초등학교 입학 자녀가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10시 출근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KEB하나은행도 출근시간을 한 시간 늦추는 데 동참했다. 출근시간은 오전 9시에서 10시로 1시간 늦춰지지만 퇴근시간은 종전과 동일하게 유지한다. 임금도 신청 직원들의 경제적 부담이 발생되지 않도록 종전과 동일하게 지급된다. KB국민·신한은행·우리은행 등은 유연근무제로 10시 출근제를 갈음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들이 출근시간 늦추기를 시행하는 것은 정부 정책과 맞닿아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직장인들의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제, 유연근무제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해 출퇴근 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은행으로서도 경단녀를 채용하는 것보다 기존 인력 이탈을 막는 편이 더 쉽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은 주로 파트타이머나 시간계약직으로 경단녀를 고용해왔다. 근무시간은 전일제(8시간)와 시간제(4~5시간)로 나뉘며 계약기간은 전일제의 경우 10개월 내외로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한다. 시간제는 2년 정도며 6개월 단위로 재계약한다. 월 100만원 수준의 적은 보수와 짧은 계약기간에도 일하려는 경단녀가 많지만 계약이 연장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수는 미미하다. 그마저도 무기계약직으로 불리는 준정규직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비대면 거래 급증으로 은행권의 채용 수요가 줄어든 것도 경단녀 채용이 축소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은행 지점은 지난해 300여개가 사라졌고 올해도 이같은 움직임은 이어질 전망이다. 지점을 줄이다 보니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도 감소했다. 올 상반기 경단녀 채용계획을 밝힌 시중은행은 한 곳도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일자리 창출 압박으로 2015년 한 해에만 1200여 명을 채용했을 정도로 경단녀 채용 열풍이 불었으나 오히려 저임금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제는 채용을 넘어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요구가 커지며 역차별 논란도 계속돼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인력”이라고 말했다.

여성부, IT·지식산업 분야 경단녀 직업훈련 강화

기업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경단녀를 위한 채용공고가 눈에 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3월과 9월에 걸쳐 신규직원 1000여 명, 청년인턴 사원 700여 명 등 올해 총 1700여 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신규직원 채용은 전 과정이 직무능력 중심의 블라인드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건보공단은 경력단절여성의 시간선택제, 지역균형 인재 육성을 위한 지역별 인재채용을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고졸자,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취업 지원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공단 관계자는 “경단녀의 경우 업무 시간이 제한적이어서 기간제 근로자로 선발하는 경우가 잦은데 근무기간 중 평가와 본인 의사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많으니 참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말 경단녀 취업지원 기관인 ‘여성새로일하기센터(이하 새일센터)’ 온라인 사이트를 새롭게 구축하고, 올 초부터 본격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센터를 직접 찾아가야 받을 수 있었던 취업 상담이나 각종 일자리 정보, 직업교육훈련 내용과 모집 일정 등을 모두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전국 155개 새일센터에서는 현재 600여개 직업교육 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빅데이터 전문가와 웹스마트 콘텐트제작 전문가, 패키지 디자이너, 제조현장 환경개선 컨설턴트, 한복 전문가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할 인력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새일센터 측은 “1만4000여 명이 새일센터의 직업교육 훈련 과정에 참가했고, 15만여 명의 경단녀가 새 일자리를 찾았다”며 “올해는 정보기술·콘텐트·지식산업 분야 중심의 직종 훈련 과정을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1433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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