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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2차 소리전쟁] 키워드는 실감음향 같은 ‘새로운 소리’ 

 

박준서 소닉티어 대표(소리혁명 공동저자)
UHD 시대 오디오 기술 표준 놓고 각축전 “가장 인간적인 소리로 첨단 기술과 연결”

▎돌비 본사의 사운드랩. 방음 장치를 한 연구실 곳곳에 스피커들이 배치돼 있다.
청각은 인간의 오감 가운데 가장 늦게 발휘되는 감각이다. 그러나 한 번 새로운 소리를 경험하고, 그 차이를 인지하면 쉽게 후퇴하지 않는 감각이기도 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개인의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소리가 얼마나 우리 가까이 있고,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끌 여러 산업에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돌비·DTS가 세계 소리시장 장악

돌비는 ‘소리혁명’을 이끈 회사다. 레이 돌비가 1965년 오디오의 잡음 제거를 위해 세운 돌비연구소는 1970년대 극장의 오디오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꾸는 음향 기술인 ‘돌비 스테레오’를 내놓았다. 워크맨의 잡음 제거 기술로 막대한 이익을 끌어모은 돌비는 5.1채널 사운드에 기반한 ‘돌비 디지털’을 선보여 세계 소리시장을 장악했다. 2010년에는 세계 실감음향 전쟁에서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내놓으며 또 한번 혁신을 주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DTS사는 1993년 자체 개발한 멀티 채널 음장 효과 포맷인 DTS(Digital Theater System)에 기반한 DTS 5.1 기술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DTS사는 세계 2위의 음향 알고리즘 기업으로 성장해 약 25년 간 돌비 디지털과 함께 세계 소리 시장을 양분했다.

돌비연구소와 DTS 중 소리전쟁에서 승리한 자를 꼽으라면 단연 돌비연구소다. 그렇지만 DTS를 ‘만년 2위’의 패자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이 두 회사만이 세계 소리시장을 장악할 만큼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제품에 소리 기술을 탑재해야 하는 모든 업체는 돌비연구소나 DTS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전자기기 제조사부터 닌텐도나 소니 등 게임 업체도 마찬가지다. 월트디즈니·소니픽처스·워너브라더스·파라마운트 같은 영화제작사는 물론이고, BBC 등의 콘텐트 제작사,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의 콘텐트 배급사, 스피커나 앰프 같은 음향기기 제작사 등 세계의 거의 모든 기업이 두 회사에 의존했다. 그렇다면 돌비연구소와 DTS솔루션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업체들이 이 시장의 ‘을’일까. 어쩌면 ‘숨은 을’은 최종적으로 그 업체에게 돈을 지불하는 콘텐트 소비자들일 것이다.

오디오 표준이라는 것이 있다. 세계는 25년 전부터 초고선명(UHD, Ultra High Defiition) 방송 포맷을 놓고 고민을 거듭해왔다. 비교적 빨리 결정된 초고화질 영상의 기준과 달리 사운드 표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와 방송 사운드, 이들 간 호환성은 물론이고 모바일 시대의 컨슈머 사운드에 대한 고려 등 상대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이 많다. 세계의 음향 알고리즘 기업들은 UHD 시대의 오디오 기술 표준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터에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UHD 방송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한 발 앞서 UHD 표준을 정했다. 4K 영상에 10.2채널 사운드가 대한민국의 방송 표준이다. 이는 돌비의 차세대 표준이 아니라 ‘MPEG-H-3D 오디오’라는 포맷이다. 이제 전통 강호인 돌비사운드의 대항마는 DTS에서 ‘국제표준화기구 산하 동영상 연구모임(MPEG)’으로 바뀌었다. 1988년 설립된 MPEG은 세계 통신산업과 전자산업의 주요 기업들이 회원으로 있는 일종의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삼성전자·LG전자·한국전자통신원(ETRI)을 비롯해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 미국 퀄컴과 AT&T, 영국 BT 등이 대표적인 회원들이다. 지난 25년 간 돌비연구소와 DTS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통신·전자산업의 주요 기업들이 자체 음향 포맷을 개발해 차세대 MPEG 표준 인증을 받기 위해 나선 것이다.

UHD 시대 오디오 표준은 ‘MPEG-H-3D 오디오’?


▎소닉티어가 지난 4월 구글플레이에 출시한 애플리케이션 ‘소닉플레이’. 이 앱을 통해 동영상을 손쉽게 입체 음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 / 사진:소닉티어 제공
UHD 시대의 음향을 준비하던 이들은 소리가 평면도형인 원이 아니라 입체도형인 구처럼 에워싸는 형태를 떠올렸다. 좌우로 스피커를 늘리는 채널 경쟁을 넘어서 소리가 상하로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이러한 발상이 차세대 소리인 입체 음향, 일명 ‘실감음향’이다. 실감음향의 궁극적 목표는 피사체, 즉 영상에 정확한 음향을 매칭하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에 정확한 소리를 매칭한 콘텐트가 훨씬 실감나는 감동을 선사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실감음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가며 고도의 방향성을 갖는 입체음향 기술이 필수적이다.

실감음향을 무기로 내세워 돌비연구소와 MPEG 간 ‘제 2의 소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터에 뛰어든 신흥강자가 있다. MPEG와 손을 잡은 토종기업 ‘소닉티어’다. 오랜 세월 돌비와 DTS가 장악했던 극장 음향 시스템에 대한민국의 기업 소닉티어가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그 비밀은 전면부 스크린 Y축에 있다. 소닉티어는 전면부 스크린의 소리를 훨씬 섬세하게 쪼갰다. 돌비가 3개 또는 5개 스피커를 전면에 배치하는 데 비해 15개나 배치한 것이다. 소닉티어는 스크린 영상 속 피사체의 움직임에 따라 사운드의 연출이 가능해 훨씬 명료한 실감음향을 선사한다. 소닉티어는 지금까지 60여 편의 국내 영화에 음향 작업을 했다. 돌비 애트모스가 한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음향 작업을 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다. 지금까지 기세로는 세계 UHD 음향표준화 전쟁의 승리자는 MPEG이다. 그러나 표준과 산업은 또 다른 문제다. 음향산업이 반드시 표준을 따른다는 공식은 법령처럼 성립하지 않는다. 시장은 그보다 더 복잡한 요인과 변수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업계 예측에 따르면 2020년에는 500억개의 지능형 제품이 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서로 연결될 전망이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우리에게 새로운 시공간을 제공하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로 대변되는 가상적인 공간이 일상화가 될 것이다. 생각보다 더 일찍 우리는 고도의 보안 기술이 적용된 블록체인을 통해 가상화폐로 필요한 물건을 소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실시간 접속하고 있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플랫폼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화할 것이다. 거기에 인간과 유사한 인공지능(AI)이 4차산업 각 분야를 넘나들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4차산업 시대에 소리가 가질 파급력은 어느 정도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로 돌아가 보자. 우리와 익숙하지 않은 시냇가 건너편의 또 다른 ‘우리’를 우리는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들과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소리였다.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간다면 우리가 만든 최첨단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과 우리는 무엇으로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 그 답은 역시 소리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그저 막연한 경계심과 두려움 때문에 소리가 지닌 놀라운 잠재력과 가능성을 짐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닌 엄청난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가까운 일상을 떠올려보자. 엄마 목소리 대신 기계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냉장고 안 음식을 꺼내 먹고 싶을까.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이 내는 딱딱한 음성으로 둘러싸인 집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머무르고 싶어할까. 안방과 거실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AI와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결국 IoT와 AI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소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도의 입체 기술이 적용된 가장 인간적인 소리인 ‘감성음향(Digilog)’이다. ‘자율주행자동차 안에서 노동을 할 것인가, 여가를 소비할 것인가’라는 조사에 따르면 약 80%가 ‘여가를 소비하겠다’라고 응답했다. 360도 영상을 구현하는 VR·AR에서 각 영상에 음향을 매칭(Sound Address)하는 실감음향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니드포스피드’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은 방향성을 갖는 음향 무기가 게임의 승패를 거의 좌우한다. 현재 텍스트 빅데이터 기반의 플랫폼은 영상과 음향으로 구성된 미디어 홍수 속에서 건강한 미디어를 안전하게 제공하는 솔루션을 보유해야 할 것이다. 그 솔루션을 위해서는 음향 빅데이터 처리가 필수적 요소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융합과 복합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물 간 기준만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뒤섞일지도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산업은 무엇일까. 바로 미디어산업일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반도체·휴대폰와 같은 IT 하드웨어와 디스플레이 등의 전자제품, 자동차 분야 등에서 강세를 보였다. 제조업 바깥에선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상품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러시아·남미에 이르기까지 지구 전역에서 강력한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우수한 한국 영화와 한류 열풍, UHD 방송 시장의 표준 경쟁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소리는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소닉티어의 기술로 녹음된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가 곧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빛의 속도로 기술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 기술은 다시 다른 기술과 뒤섞여 더 큰 변화를 낳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UHD TV의 시험장이다. 이곳에서 세계를 유혹할 만한 영화와 방송, 음악과 개인 미디어 콘텐트를 적극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어 그 콘텐트가 새로운 소리, 이머시브(immersive) 사운드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우리나라가 초국적 경쟁에서 우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진정한 도약이다.

이미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인간이 할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소리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 UHD 음향 전문가, 컴퓨터 게임 음향 디자이너, 인공지능 오디오 시스템 전문가, 오디오 코딩 전문가, 음성인식 오디오 전문가, VR 입체음향 전문가 등 무수한 소리 산업 관련 직업들이 생겨날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 가정용 냉난방 및 환기 시스템, 세탁이나 요리 시스템, 가정용 미디어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소리로 제어될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온 기계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들어서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감성소리로 말이다.

새로운 소리가 새 일자리 만든다

미디어는 다른 산업의 앞에서 전방효과를 내는 특수산업이다. 우리는 미디어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소리를 낼 준비가 돼 있다. 극장 관객, TV 시청자는 물론 모바일 디바이스에 접속한 사용자를 새로운 소리가 에워싸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소리에 전율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4차산업을 지배할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됐다. 대한민국은 입체음향 기반의 실감음향, 나아가서 감성음향을 제작하고, 세계로 송출하고 재생하는 일련의 기술을 갖고 있다. 극장시장, UHD 방송시장, 플랫폼 시장 나아가 VR과 AR 시장에 이르기까지 전 시장을 아우르는 음향 알고리즘을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 세대에게 음향 알고리즘 기술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들이 새로운 소리를 세계로 수출할 것이고, 나아가 전 국가의 UHD 성공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재생하는 소리가 세계인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1445호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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