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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뜨거운 난민 논란 어디로? - 사회학] 거주·이전의 자유는 모두의 권리 

 

최현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누구나 지구공동체의 시민임을 인정해야…지구 어디서든 살 수 있어야

모든 사람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인권 선진국을 자처하는 많은 나라가 어떻게 대낮에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정하고 어떤 사람을 불법이민자나 불법체류자라고 강제로 추방하는 것일까? 사실 인간을 불법이민자나 불법체류자로 부르고 강제로 추방하는 미국은 최소한의 정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법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미국의 백인들이야말로 원주민들에게 허가도 받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에 불법적(?)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멕시코인이 그 땅의 주인이었다. 멕시코인 입장에서는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행태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아니겠는가?

물론 누군가 근대 이전에 북아메리카에는 국가도 법도 없었다고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나름의 관습법이 있었고 사회조직이 있었다. 원주민들과 협의와 동의 없이 폭력적으로 토지를 강탈하고 이주한 것을 합법적이었다고 정당화할 수는 없다. 어떤 법이든 객관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필그림 파더스를 비롯한 백인들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근거로 원주민들의 동의 없이 아메리카 대륙에 이민하고 난 후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만든 법을 근거로 이주를 불허하는 것은 어떤 논리적 객관성도 정당성도 없다.

이민으로 만들어진 미국에서만 누가 합법적 시민·국민인가라는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아니다. 혈통적·문화적으로 단일하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에서도 누가 한국인인가는 자명하지 않다. 제주도의 양씨·고씨·부씨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인 반면, 단군의 자손으로 대한민국 수립에 크게 이바지한 조선족 동포나 고려인들은 대한민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기 일쑤다. 세계 어디서나 국민 사이의 경계는 그렇게 깔끔하고 분명하지도 않고 합리적이고 공정하지도 않다.

그런데 왜 이런 경계가 생겨났을까?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고착됐던 18~20세기 당시 대중매체(신문과 책)와 교통망의 한계로 전통적인 문화적 동질성에 의존해 지역 국가나 지구 공화국 대신 국민국가가 지배적인 국가형태가 됐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는 보편적 인권과 합리성, 공정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기치로 형성됐지만, 인류 전체를 구성원으로 할 수 없었다.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할 때 혈통주의나 출생지주의라는 전근대적 기준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근대국가가 전근대 사회라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어머니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후에도 아이에게 배꼽은 남는다.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처럼 실정법을 핑계로 난민을 추방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건 백인들의 기득권을 인정해주고 우리 자신의 거주·이전의 자유, 더 나아가 생명권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권리는 상호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어떤 권리를 부정한다면 우리 자신의 같은 권리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지구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국가 사이에 이주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모든 이에게 국경을 개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살해를 방관할 수 없듯이 난민들을 사지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일단 받아들인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차별 없이 인권과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이 노동시장에서 이주민뿐만 아니라 원주민을 보호하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민 연구의 성과들이 보여준다. 같은 한민족이 포용정책을 썼던 중국에서는 최고의 소수민족이 되었지만, 배타적인 일본에서는 수많은 기여에도 아직까지 갈등의 불씨로 남았다.

※ 최현 교수는… 환경과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 생태적 제도와 시티즌십, 자연의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관리, 공동자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446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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