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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대한민국 페미니즘 어디까지 왔나 - 여성학]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출현 

 

김보명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항

지난 8월 4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는 불법 촬영과 편파 수사에 항의하는 ‘불편한 용기’의 4차 집회가 열렸다. 무채색의 냉장고 바지에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 팔토시 등으로 무장한 여성들은 질서정연하게 입장했다. 스태프들은 대열을 배치하고 얼음물을 나눠주면서 응급상황 대처 요령을 안내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의 열기와 소음은 머리를 어지럽게 했지만 참석자들은 끈기 있게 두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지켰다.

집회는 불법 촬영과 디지털 성폭력으로 인해 세상을 등진 여성들을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그 후 구호 선창과 상황극, 삭발식, 선언문 낭독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여성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의 무책임·무능력·위선을 꼬집었으며, ‘유좆무죄 무좆유죄’ ‘여혐민국 땡처리세일 여성인권 단돈 100원’ ‘이런다고 세상이 바뀐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집회가 마무리 되자 여성들은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트위터와 다음 포털 등에 집회 참여기를 올리는 실시간 검색 ’총력공세‘를 펼치면서 디지털 공간에서도 시위를 이어나갔다.

8월 4일의 광화문 시위는 최근 수년 간 디지털 공간과 대중문화 그리고 거리와 광장을 통해 확산되고 또 진화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한 장면이다. 디지털 기술과 감수성이 만들어내는 개인화된 저항들은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만나면서 집합적 저항운동의 언어와 전략을 갖게 되면서 교육·노동·문화·정치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디지털 하위문화에 익숙한 이 세대는 좀 더 직설적이고 단호하고 전투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정치학을 표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출현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강남역 시위와 검은 시위, 촛불광장을 거쳐 혜화역 시위와 미투 집회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여성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한다.

거리와 광장으로 나온 여성들의 손에는 ‘여자라서 죽었다’ ‘살女주세요’ ‘나의 자궁은 나의 것’ ‘덮어놓고 낳다보면 경력단절 못면한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등과 같은 구호가 적힌 피켓들이 들려있다. 이 여성들은 다양한 세대, 정치학, 정체성, 경험을 갖고 있지만 여성의 성적 자율권과 시민권을 보장하는 데 무관심하거나 실패하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높아지는 여성들의 페미니스트 의식에도 여전히 자신의 특권을 놓지 못하는 남성들의 문화와 행동, 여성들의 요구에 무심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이를 왜곡하는 경찰과 법원 및 행정기구의 행보는 여성의 분노를 부채질 할 뿐이다.

디지털 강국이라 자처하는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의 시작으로부터 함께 해온 사이버 성폭력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서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지만 경찰과 정부의 반응은 놀랍도록 냉담한 반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여성에 대한 처벌에는 신속하고 단호하다.

권력형 성폭력을 판단할 때 ‘위력’이나 ‘성적 자율권’ 어느 것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은 교육·노동 현장에서의 하급자에 대한 성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법부의 결정은 편의주의적이고 무성의하다. 수만의 여성이 거리와 광장으로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려는 것이다.

※ 김보명 박사는…한국 여성학회 연구위원회 연구위원이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한국 여성학회 연구위원회 간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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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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