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Home>이코노미스트>Special Report

[‘각학각색(各學各色)’ | 대한민국 페미니즘 어디까지 왔나 - 정치학] 혐오 극복하는 여성운동을 위하여 

 

정주영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위원
‘여혐’ 미러링으로 ‘남혐’ 확산…맹목적 여성주의 경계해야

지난 7월 불법 촬영과 편파수사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혜화역 집회에 등장한 “문재인 재기해” “태일해” 등의 구호와 퍼포먼스는 한국 여성 시위를 비판의 중심에 서게 했다. 고인을 희화화하는 자극적이고 몰역사적인 표현은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의 활동으로 그 심각성이 증폭됐고, 한국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과 논쟁도 가열됐다. 워마드가 사용한 ‘미러링’ 기법은 그간 여성이 받았던 차별과 폭력을 남성에게 가해 인식적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획기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한 방식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워마드의 미러링이 성체훼손, 홍대 몰카 유포, 남아 유괴 예고 등으로 자극성과 불법성의 정도가 사회적 용인의 도를 넘어서면서 한국 페미니즘은 주장의 정당성과 절실함에도 사회적 공격의 대상이 됐다.

이런 사회적 비판과 공격에 대해 페미니즘계는 상황의 불가역성과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식적이고 합법적인 수준의 방식과 표현으로 주장했을 때는 여성과 관련된 이슈가 지금처럼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힘을 갖지 못했으며, 여성은 극도의 폭력과 극혐의 상황에서 위협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베’ 등 남성 중심의 사이트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직·간접적 폭력을 남성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워마드는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과감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맥락과 과정을 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워마드 사이트에서 전개된 활동은 용인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많은 문제점을 갖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유포하고 확산시키는 ‘극혐’의 문화이다. ‘여혐’에 대한 미러링으로 ‘남혐’을 만들어냈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는 심각한 ‘혐오 사회’가 되고 말았다. 워마드가 남성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로 자기 무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을 성 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연대 그룹에서 이탈시켜 여성·남성의 기준으로 모든 문제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약한 것은 선하다’는 인식을 깨고 ‘약한 남성도 선하지 않다’는 논리적 귀결에 도달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진보의 정치적 입장을 버리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통한 운동의 방식을 거부하면서 맹목적으로 여성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워마드를 한국 페미니즘의 대표로 과대 인식해서는 곤란하지만 중요하게 등장한 경향이라는 점에서 논의의 가치가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국 여성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과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멈춰 세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혐오의 확산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에서 “우리가 혐오와 증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야 한다. 혐오에 맞서는 일을 피해자의 몫으로만 떠넘긴다면 그것은 혐오를 방조하는 행위이자 증오에 공모하는 일이 된다”라고 했다. 혐오나 증오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고, 혐오와 멸시의 행위를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태도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공모되는 것이다. 그리고 혐오 탓에 사회적 긴장이 계속 높아지면, 언제든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적 광기와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 ‘나는 워마드 혹은 일베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혐오 문화 확산과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가만히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공모자인 셈이다. 워마드의 문제는 사이트를 폐쇄하고, 관리자를 구속하고, 혐오의 표현과 행위를 처벌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대상화하고 규제하고 처벌해 문제의 싹을 제거하려 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 정주영 박사는…연세대·동국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연세대 정외과 BK21 연구원, 고려대 아세아문제 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images/sph164x220.jpg
1451호 (2018.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