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부실한 국내 반도체 생태계] 장비 업체는 세계 톱10에 한 곳도 없어 

 

최현주 중앙일보 기자 chj80@joongang.co.kr
중소기업 연구 인력 대기업에 뺏겨…‘인력난→R&D 부실→경쟁력 저하’ 악순환

▎SK하이닉스 직원이 반도체 생산 장비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 사진:SK하이닉스
한국은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 국가다. 삼성전자(1위)와 SK하이닉스(3위)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60% 이상이다. 압도적인 우위다. 최근 2~3년 새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호황을 누렸고 한국 반도체 산업은 역대 최대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장비·소재·부품 같은 이른바 반도체 후방산업은 이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10.1%에 불과하다. 반도체 소재도 9.9% 수준이다. 국내 업체 중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10위 권에 드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런 상황은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50% 수준이었지만 후방산업 업체는 6%에 그쳤다. 기업경영성과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원사 중 171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9%에 그쳤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평균 영업이익률(46.9%)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 영업이익도 두 업체 평균인 48조9255억원의 16% 수준인 8조1816억원에 그쳤다. 부문별로는 부분품 업체 17.1%, 장비 업체 10.8%, 재료 업체 6.9%, 설계 업체 4.0%, 설비 업체 1.8% 등이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업이 한국에 있지만, 국내 반도체 후방산업 업계에 ‘낙수 효과’ 없었다는 것이다.

후방산업 국산화율 평균 30% 밑돌아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반도체 후방산업의 국산화율이다. 현재 후방산업 국산화율은 평균 30%를 밑돈다. 장비의 경우 국산화율은 18.2%다. 국내에선 미국의 AMAT이나 램리서치 제품을 주로 쓴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10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장비 구매에 평균 7조원을 쓰는 데, 이 중 5조6000억원은 외국 업체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여기에 인력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계 전체의 산업기술인력 부족률(2016년 기준)은 1.5%다. 그러나 후방산업만 따로 떼어 놓으면 5%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반도체 장비 업체인 에프에스티 장명식 회장은 “지난해 80명 정도의 직원을 뽑으려고 했는데 절반도 못 채웠다”며 “수년째 30~40명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반도체 소재 업체인 A사도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이 회사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5200만원으로 많은 편이지만 평균 근속기간은 5년이 채 안 된다. 이 회사 인사 담당자는 “관련 분야 전공자가 별로 없고, 이들마저 대기업만 들어가려 하니 연구개발(R&D) 자체가 힘들다”며 “결국 회사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간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이른바 ‘대기업 산업’으로 분류하고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은 점도 후방산업을 ‘언더독’으로 만든 원인이다. 정부의 반도체 연구개발(R&D) 지원은 가장 많았을 때가 연간 900억원 선이었고, 올해는 아직 새 프로젝트 지원이 없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한 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반도체 산업 지원=대기업 지원’이라고 여기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반도체 육성에 나섰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월 30일 “향후 10년 간 (반도체 산업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시스템반도체 설계지원센터’를 출범시켰다. 기술개발·투자유치·마케팅 등 창업부터 성장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스타트업의 전 과정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 사격에 나섰지만 이전의 ‘나눠 먹기식’ 보조금 지원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장비 업체인 쎄믹스의 유완식 대표는 “당장 낚시 그물이 좀 좋아진다(보조금 지원)고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더 나은 고기 잡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테스트베드(클린룸)’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테스트 베드는 반도체 장비와 재료, 부품 등의 성능을 평가하는 설비 장치를 말한다. 염근영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7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산업발전 대토론회’에서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자 업체와 접촉해 이들 회사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소재·부품 업체들이 특히 1차 테스트베드 구축을 희망했다”며 “반도체 소자업체와 정부가 지원해 1차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소재·부품을 개발하도록 한 뒤 반도체 소자 업체에서 엔지니어가 파견돼 성능을 평가한 후 반도체 소자 업체의 2차 테스트베드에서 최종 성능평가를 받는 식으로 정부-소자업체 간 협약을 맺어 관련 산업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인력 양성 힘써야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인구 감소와 정원 축소로 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대학에서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서 중소기업의 인력이 대기업으로 이동했고, 이는 반도체 중소기업 생태계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퇴직 인력들에게 기업과 연계된 사업 아이템을 주고 대학과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거세지고 있는 중국의 국내 인력 영입에 대한 단속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 업계 종사자는 해당 기업 퇴사 후 동종 업종에 2년 간 취업이 제한된다. 하지만 관련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교수는 “인력 유출은 곧 기술 유출인 만큼 중국의 추격이 코앞까지 온 상황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인재가 퇴사 후 경쟁사 대신 갈 곳을 마련해 선택지를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1447호 (2018.08.2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