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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례로 본 국민연금 개선 방안은] 개혁은 점진적으로 운용은 전문가에게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조직 독립성 확보로 연기금 수익률 높여야...연금제도 개혁 롤 모델 스웨덴 방식 배울 만

▎복지 시스템이 잘 정비된 선진국 스웨덴은 연금제도 개혁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로도 국내외에서 꾸준히 언급된다. 사진은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시내 한 은행 앞에 노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
600조원이 넘는 규모로 세계 3대 연기금에 꼽히는 국민연금은 운용 ‘수익률’ 저하에 따른 연금 조기 고갈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차제에 연금 ‘제도’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두 경우 모두 교훈을 주는 해외 사례를 통해 보다 면밀하게 문제점과 개선책을 짚어볼 수 있다. 수익률부터 보자. 그간 국내에서 국민연금 재정 개선 필요성이 논의될 때마다 대표적인 ‘롤 모델(role model)’로 언급됐던 나라로 싱가포르가 있다. 지난 2013~2015년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었던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임 중 “당장에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서 국민연금을 변화시키기엔 한계가 있겠지만,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점진적으로) 그 토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최 전 장관이 언급한 싱가포르 사례는 곧 이 나라 국부펀드 테마섹(Temasec Holdings) 얘기다. 싱가포르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테마섹은 1974년 나라의 재원 확충과 경제 발전을 목표로 설립돼 2014년까지 40년 간 연평균 주주 수익률이 약 16%에 달했다. 올해 현재는 약 250조원의 자산을 운용 중이다. 그런 테마섹은 지난 3월 보유 중이던 한국 기업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주식 일부를 1조1000억원에 매도했다. 앞서 테마섹은 2010년과 2013년 두 차례 이들 회사 주식에 4000억원가량을 투자한 바 있다. 3월에 판 일부를 제외하고도 남은 지분 가치가 7조원에 달했으니 20배에 가까운 평가이익을 기록했다.

운용 전문성 강화하려면 우수 인재 영입부터


테마섹은 이처럼 자국은 물론 해외에 있는 다양한 기업의 주식에 적극 투자해 고수익을 노린다. 펀드나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는 전체 포트폴리오의 10%에 못 미친다. 이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안정적인 중수익 실현에 더 초점을 둬야 하는 국민연금과 테마섹 간의 직접적인 비교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우선 테마섹은 거액 투자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데 탁월하다. 예컨대 투자 초기엔 이자를 받다가 투자 기업이 성장에 탄력을 받아 리스크가 줄어들면 주식으로 바꿔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전환사채(CB)에 투자한다. 사전에 철저한 ‘현미경 분석’을 거침은 물론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게 유능하기로 소문난 테마섹 내 전문 인력들이다. 기본적으로 세계 최상위 수준인 싱가포르의 교육열과 교육 시스템을 통해 길러진 인재들이 대거 포진해 있지만 여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외부 인재 수혈에 적극적이라 외국인 직원 비율이 30% 이상인데, 이들의 대다수가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 인수·합병(M&A) 부서 출신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기업 분석 기반의 자금 운용 전략 수립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구성원들의 이런 전문성이 뒷받침되기에 테마섹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수익 극대화를 노릴 수 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적으로 인력난에 허덕인다는 얘기가 나오는 국내 연기금 운용 전담 조직, 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경우와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일단 전문 인력이 테마섹의 2분의 1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숫자에서부터 열세다. 특히 지난해 본부가 지방으로 이전한 데다, 그 수장인 본부장이 1년 넘게 공석(空席)이면서 인재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결국 연기금 운용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사람’ 밖에 없다”며 “현명한 본부장이 있었다면 올해는 (시황이 안 좋은 국내 주식 투자에서) 보수적으로 운영하자고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부 임원진에도 공석이 많았지만 외부에서 수혈하기 쉽지 않자 8월 들어서야 조직 내부에 있던 기존의 팀장급 일부가 실장으로 임용됐다.

조직이 국민연금 안에 부서 형태로 존재하다 보니 독립성이 떨어지며, 이에 따라 인력의 전문성 강화 또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대목에서 네덜란드의 연기금 개혁 사례도 참고할만하다. 유럽에서 노르웨이 국부펀드 GPFG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연기금인 공적연금 ABP를 운용 중인 네덜란드는 ABP 내부에 부서 형태로 있던 기금운용 전담 조직의 전문성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8년 ABP 자회사인 APG, 즉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을 설립하면서 기금운용 부서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에 나섰다. 이를 토대로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일본도 해외 투자 힘쓰며 포트폴리오 다각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독립적으로 연기금 운용을 전담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2~2016년 5년 간 평균 수익률이 12.24%에 달했다. / 사진:www.swfinstitute.org 제공
한국에서도 국민연금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공사 형태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배경이다. 실제 APG는 독립 후 전문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확충·배치하면서 투자 실적도 눈에 띄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2008년 -20.2%였던 연기금 운용 수익률은 이듬해 플러스로 돌아섰고 이후로도 지금껏 계속 양호한 수치를 기록 중이다. 당시 APG의 전문 인력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운용 자산 배분에 힘썼다.

그 결과 2008년 주식(55%)과 채권(45%) 중심으로 투자됐던 ABP는 2013년 기준 주식(34.7%)과 채권(40.3%) 외에 대체투자(25%)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지면서 보다 탄탄히 운용됐다. 다른 선진국인 캐나다도 국민연금인 CPP의 운용을 CPPIB, 즉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라는 독립적인 공사에서 전담하고 있다. CPPIB 구성원들은 마치 글로벌 IB 구성원들처럼 꼼꼼하게 투자 성과를 평가받으며, 우수한 실적을 올린 사람에게는 높은 수준의 성과급이 지급된다. CPPIB는 2013년 7.2%였던 자국 주식 투자 비중을 지난해까지 3.3%로 낮추는 결정을 내리면서 성과를 냈다. 두 나라의 2012~2016년 5년 간 평균 연기금 운용 수익률은 각각 9.32%(네덜란드), 12.24%(캐나다)로 5.18%였던 한국에 크게 앞섰다.

이와 달리 이웃나라 일본의 공적연금 GPIF는 한국과 비슷하게 공공기관 형태의 조직이 운용 중이다. 복지부 산하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처럼 후생노동성 산하에서 비독립적 조직이 해당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국민연금과 달리 일본에선 주식 투자 의결권 행사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위탁 운용사가 행사한다.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연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GPIF는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더 높은 운용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도록 투자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예컨대 2013년 25.7%였던 해외 투자 비중을 지난해 39.2%로 높였다. 자국 주식 투자 비중은 5%대에 불과하다. 최근 글로벌 연기금들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하면서 수익률 제고에 나서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또한 여러 노력에도 아직까지 국내 자산 투자 비중이 지나치게 큰 국민연금이 참고해야 할 사례다.

그렇다면 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개혁 논쟁에선 어떤 해외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까. 한국보다 앞서 연금을 도입했던 선진국 대부분도 이미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연기금이 재정위기를 겪은 바 있다. 이들은 이런 재정 건전성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가 지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제도 개혁에 팔을 걷어붙였다. 전문가들이 모범 사례로 꼽는 대표적인 나라로 스웨덴이 있다. 1913년 처음 공적연금을 도입했던 스웨덴은 기존 보편적 기초연금에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개념의 사회보험 방식인 소득비례연금보험을 1960년 도입했다.

그러다가 공적연금의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고 경기 불황이 계속되자 스웨덴 정부는 중산층 이상보다 빈곤층에게 보다 많이 국가가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개편한다. 1998년의 일이다(개혁 필요성 제기가 본격화한 1985년부터 이 개혁까지 약 13년이나 스웨덴 내 모든 정파가 참여해 치열한 논쟁을 펼치고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쳤다). 이때 기존 제도를 대신해서 도입된 제도가 크게 세 가지였다.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의 소득비례연금과 완전적립식 개인저축연금, 무연금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저보장연금이 그것이다. 쉬운 말로 요약하면 ‘오래 일하면서 많이 낸 만큼 많이 받는다’와 ‘저소득층은 최대 혜택을 받는다’가 골자다. 우선 이전까지 스웨덴의 소득비례연금에선 소득의 15년 평균치를 연금으로 지급했지만, 새 제도에서는 개인의 연금 기여 실적에 비례해 국가 경제성장률만큼의 이자율과 기대수명을 반영한 후 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저소득층 최대 혜택, 오래 일할수록 유리


즉 NDC 방식 소득비례연금과 최저보장연금 도입으로 저소득층은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금 수령을 보장 받을 수 있고, 고소득층은 평균 급여의 160%까지인 보험료 상한선을 통해 공적연금 재정 부담 해소에 보탬이 되는 선에서 연금을 받게 됐다. 대신 오래 일하면서 납입을 많이 할수록 이에 비례해서 받을 연금도 늘어나므로 근로자들은 조기 은퇴 대신 오래 일하는 쪽을 선택, 경제활동인구가 그만큼 증가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보험료 일부를 개인 계정에 적립해서 연금펀드에 투자하고 그 수익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완전적립식 개인저축연금을 통해 공적연금에 사적연금 개념을 도입하는 시도를 더했다.

김종진 국민연금공단 대전지역본부장은 “스웨덴은 공적연금의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령화 추세와 경제적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며 “세계적으로 모범 사례라 할 만한 연금개혁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노르웨이나 호주 같은 선진국들도 이후 스웨덴 사례를 벤치마킹해 근로생활이 길수록 더 많은 혜택이 가도록 연금 개혁에 나선 바 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1000원을 내면 1000원을 주는 스웨덴의 NDC 방식처럼 한국도 국민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립학교교직원연금(사학연금) 등 4대 연금 모두를 동일하게 전면 개혁해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연금제도가 돼야만 고령화 시대에 미래 세대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의 말처럼 일각에선 연금 개혁의 방향이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다른 연금 쪽으로도 보다 강도 높게 옮겨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경우 우선적으로 언급되던 사례가 오스트리아다. 앞서 오스트리아는 한국처럼 일반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따로 운영하다가 2005년부터 통합했다. 마찬가지로 인구 고령화와 연기금 재정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첫 연금 수령 나이를 60세에서 65세로 늦추고, 최대 액수를 받을 수 있는 재직 기간도 40년에서 50년으로 올렸다. 역시 ‘오래 일하면서 낸 만큼 많이 받도록’ 조정한 것이다.

그 결과 연금 가입 기간 45년인 공무원이 65세 퇴직했을 때, 2015년 기준 소득대체율이 80%로 민간연금 소득대체율(70%)보다 10%포인트 높은 등의 성과를 보였다. 다만 오스트리아의 공무원연금 개혁은 다소 급진적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기존 공무원 가입자들의 강한 반발 등, 연금 통합까지는 현실적으로 많은 난관이 존재해서다. 더구나 오스트리아 정부는 제도 개혁에도 연금 보조 관련 지출이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며 국가 재정의 압박 요인으로 계속 작용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오스트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정부는 2004년 264억 유로였던 연금 보조금 지출이 2012년 400억 유로로 증가하면서 전체 예산의 25%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2014~2015년 무렵 국내에서도 오스트리아 방식으로 공무원연금을 손봐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제기됐다가 개혁안 채택이 끝내 무산된 바 있다.

보다 점진적인 개혁을 진행한 사례로는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는 일반 국민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한 혜택을 줬던 공무원연금 제도를 개혁해 퇴직 후 연금을 전액 받기 위해 공무원이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2003년 37.5년에서 2008년 40년으로 2.5년 늘렸다. 이어 2010년 프랑스 정부는 공무원과 일반기업 근로자 간 혜택의 형평성을 갖추기 위해 10년 간 점진적으로 공무원 보험료율을 기존 7.85%에서 10.55%까지 높이고 공무원연금에 대한 재정 보조를 중단하기로 했다. 2013년에는 또 한 번 연금제도 전반을 손봤다.

급진적 개혁보다 충격 최소화에 초점 둬야


이 밖에 유럽 다른 나라들보다 사적연금 활용을 많이 해왔던 영국은 2016년 새 연금 제도인 ‘신국가연금’을 도입해 공적연금을 강화했다. 가입 기간을 늘리고 첫 연금 수령 나이를 67세로 상향 조정하면서 재정 안정화에 힘썼다. 애초 영국은 공적 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하고 공무원연금이 따로 없이 모든 국민이 공적연금에 관한 한 동일한 체계를 적용받도록 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의 이런 연금제도 개혁 사례가 공통적으로 안겨주는 시사점이 있다고 전한다. 최장훈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 개혁은 점진적으로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며 “국민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입 기간을 연장하거나,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조금씩 서서히 올려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약 13년의 기나긴 논쟁과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쳤던 스웨덴, 이미 손 본 제도라도 치밀한 연구와 분석 과정을 거쳐 수년 주기로 계속 보완책을 내놓는 프랑스·영국 등 선진국들의 노력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1448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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