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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국민연금 어디로] “더 내고 못 받나” 불신 눈덩이처럼 커져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이대로는 2057년 고갈, 90년대생부터 ‘무연금’ 가능성… 세대 착취, 공적연금 개혁으로 논란 번져

5년마다 반복되는 국민연금 논란이 증폭되면서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연금 지급 기간을 줄이고 보험료율을 높이는 방침을 내비쳐서다. 지난 15년 간 이어진 땜질 처방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칼을 빼려던 정부는 주춤하며 여론 동향을 살피고 있다. 극심한 불신과 반발 속에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을 높일 방안과 해외 선진국의 연금개혁 역사도 살펴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의 동의 없는 국민연금 개혁은 없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국민 노후의 마지막 보루라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에 다시 금이 가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고 지급 시기를 늦출 방침을 내비쳐서다. 가입자로서는 예전보다 돈을 더 내고, 나중에 더 적게 돌려받는 셈이 된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그동안 국민연금을 민간 연금보다 수익률이 높은, 안락한 노후의 안전판이라고 홍보해왔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가입자들은 차라리 낸 돈을 모두 돌려달라며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펼치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의 이번 국민연금 개편 방침을 계기로 납입한 돈을 오롯이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폭염에 따른 전기료 폭탄 등으로 민심이 어수선한 가운데 국민연금 논란까지 불거져서다.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의 근원은 국민연금의 한정된 재원에 있다. 국민연금 재원은 가입자들의 납부액과 이 돈을 투자해 생긴 운용수익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재원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지급할 돈이 더 커지면서 기금 고갈론이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정부는 경제성장률과 인구 등 사회·경제의 구조 변화를 따져 5년마다 재정을 재계산한다. 정부는 올해 4차 재정재계산을 한다.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7년 바닥날 전망이다. 3차 재정재계산 때 정부가 예측한 고갈 시기는 2060년이다. 5년 새 3년이 앞당겨진 것이다. 예컨대 1993년생인 한 가입자가 2017년부터 30년 간 직장에 다니며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부했더라도, 연금수령 나이인 65세(2057년)에 한 푼의 연금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런 재정 전망과 변화에 맞춰 연금보험료 조정 등 계획을 세워 10월 국회에 제출한다. 연금수령액을 줄이거나 보험료율을 높여 고갈 시점을 늦추는 데 초점이 모일 전망이다. 연금 고갈 시기를 3차 재정재 계산 때 예측한 2060년으로 늦추려면 최소 1000조원 이상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 추산이다.

2060년으로 고갈 늦추려면 1000조원 이상 필요


국민연금은 근본적으로 정기 소득이 적은 노년에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현재 45%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높이는 금액 변경 검토안이다. 소득대체율이 45%라는 것은 월 소득 100만원인 가입자가 40년 간 가입할 경우 매달 45만원의 연금을 지급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25세에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65세까지 급여를 받으며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45%의 소득대체율을 맞출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육체노동 정년은 60세가 아닌 65세라고 판결을 내렸지만, 대부분 50대에 회사에서 은퇴하는 국내 노동 환경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24년이다. 연금 지급액은 월 24만원에 그쳐, 실질 소득대체율은 24%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른바 ‘용돈연금’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맞물려 보험료율 인상안도 나온다. 3차 재정재계산인 2060년 고갈을 목표로 잡아도 현재 9%(근로자 4.5%+사업주 4.5%)인 보험료율을 12.9%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 월급 3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은 국민연금으로 매달 38만원을 내는 셈이다. 다른 하나는 연금 지급연령을 늦추거나 가입기간을 늘리는 기간변경안이다. 국민연금 지급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8세로 늦추는 안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8월 14일 “지급연령 연장안을 고려한 적 없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지만, 연금 지급연령 연장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연금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는 17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공청회를 열고 9월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안을 상정해 차관·국무회의를 거쳐 10월 국회에 제출한다.

아랫돌 빼 웃돌 궤지 말고 근본적 대안 필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016년 기준 82.4세로 2007년(79.2세)에 비해 3.2세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의 평균 수명 80.8세보다 1.6세 길다. 연금 지급연령은 대개 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한 후부터 기대여명을 고려해 산정한다. 현재 대부분 OECD 회원국들이 평균 수명 증가 등으로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67∼68세로 상향 조정한 상태라 한국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영국은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과 기대여명 증가 등을 고려해 연금 지급연령을 남성 65세, 여성 60세에서 2020년 66세로 올리고, 2026~28년 67세로 높이기로 했다. 프랑스도 2010·2013년 연금개혁을 통해 2023년부터 연금 수급 연령을 67세로 정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나이도 현재 60세 미만에서 65세 미만으로 5년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 고갈을 늦추는 한편, 연금 지급연령이 늦춰진 만큼 돈을 더 납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연구원과 제도발전위원회 등이 함께 제안하고 있다. 정부안대로 국민연금이 개편될 경우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더 오래 내지만 앞 세대보다 적은 돈을 더 짧은 기간 동안 받게 된다.

이런 안은 현재 한창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2040 세대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떨어지고 은퇴 시기는 점점 앞당겨지는데, 정부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되레 가입기간을 연장하거나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15년차 직장인 김혜진(39)씨는 “국민연금 납부는 현재 소비여력을 미래로 옮기는 저축인데, 앞 세대의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연금이 고갈되는 경우에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제도적 보완책이나 약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직장인들이 내고 있는 연금은 노년층 지원에 사용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지금만 못한 연금을 받게 되거나 아예 못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출범한 1988년 소득 대체율은 70%였다. 보험료율은 1988~93년 3%, 93~98년 6%로 지금보다 낮았다. 윗 세대는 아랫 세대의 기여와 높은 경제성장률 덕에 적게 내고 많은 연금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말 기준 연금보험료·운용수익금 등으로 806조5000억원을 조성했다. 연금급여 등으로 172조 4000억원을 지출해 현재 634조원을 적립한 상태다. 규모로는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노르웨이 국부펀드(GPF)와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정부 예상으로는 2043년에는 2561조원 규모로 커진다. 그러나 저출산에 따른 경제활동 인구 감소와 연금을 지급받아야 할 고령층의 증가, 저성장 등으로 기금은 2043년을 정점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2차 베이비 붐 세대인 1970~80년대생이 본격적으로 은퇴를 맞이하며, 합산 출산율이 1명대로 추락한 밀레니엄 세대의 경제활동이 한창인 시점이다. 당장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직장인들의 자녀 세대는 국민연금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2057년 이후에도 국민연금을 유지하려면 당장 보험료율을 21.4%로 올려야 한다.

정부는 일단 국민들의 반발을 잠재우려 국가가 부도나지 않는 이상 연금을 지급하지 못한 사례는 없다고 안심시키고 있지만 불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개편안 관련 보도가 나온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900건이 넘는 국민연금 관련 청원이 올라왔을 정도다. 제도발전위원회는 노후소득보장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기반으로 기초연금·퇴직연금 등 3단계 다층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미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소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며 기초연금·퇴직연금과 함께 대비하는 ‘노후소득 3단계’안을 2008년부터 홍보해왔다. 제도발전위원회가 국민들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은 모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의료보험처럼 강제성을 띤 사회보험제도다. 복지국가로서 연기금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국민연금에 강제성이 없어져 가입자가 줄면 노후 빈곤층이 확대돼 결국 조세를 통한 더 많은 복지 비용이 지출될 수 있다”며 “저출산·고령화 사회일수록 국민 노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국민연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정부 “보험료율 높이고, 지급연령 늦추자” 여론 탐색


▎국민연금 개혁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 / 사진:연합뉴스
이번 국민연금 개편 논란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세대 간 부의 분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세대 간 소득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로부터 ‘세대 착취’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 국민연금이 현재 60~80세 고령층을 배려하는 구조로 설계된 측면이 있다. 1988년 국민연금이 출범했을 당시 젊은 세대의 상당수가 자신은 물론 부모 봉양까지 부담해야 했다. 이에 적은 보험료로도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한 연금 구조를 설계했다. 경제성장률에 맞춰 3%였던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그러나 1998년 9%로 정해진 보험료율은 20년째 멈춰 있다. 서구 선진국의 보험료율은 15% 이상이다.

이에 한국도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지만 표 떨어질까 걱정한 정치권은 미온적으로 움직였다. 국민연금이 오르지 않은 1980~90년대 국민연금 가입자는 적지 않은 혜택을 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상을 처음 시도했지만 외환위기 후폭풍과 카드대란 등이 겹쳐 실패하고 말았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들의 눈치만 보며 미적거렸다. 연금위원회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은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작업 때 보험료율을 12.9%로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여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이에 부담을 느낀 정부에 막힌 바 있다. 2003년 1차, 2008년 2차, 2013년 3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때마다 개편 논의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땜질 처방으로 다음으로 넘겼다. 그러다 지난 15년간 눌러왔던 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올해 들어서 터진 셈이다. 오랜 기간 눌러온 만큼 연금 개혁 문제가 커졌고, 그만큼 국민 반발도 커진 상황이다.

국민연금 재원이 머지 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관측에도 대처하지 못한 정부는 그동안 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데 힘을 쏟아왔다. 국민연금 운영위원회는 지난 10년간 중기운용계획에서 채권 대신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이고 수익형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위험·대체 투자를 늘렸다. 민간 위원들의 반발에도 정부안대로 밀어부친 탓에,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을 둘러싼 내부 갈등도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마지막 방패라는 점에서 수익성에 기반을 둔 운용 방식이 타당한가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은 7.28%로 전년 대비 2.59%포인트 올랐다. 연금을 중기 운영방침에 따라 유지하기 위한 최소 수익률 5%를 초과했다. 국내외 증시가 워낙 뜨거웠고, 미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기조에도 채권 시장이 안정을 보여서다.

그러나 올 들어 국민연금 수익률은 5월까지 0.49%로 고꾸라졌다. 지난해 상반기(5.72%) 수익률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주식 수익률이 지난해 26.31%에서 올해 -1.18%로 곤두박질쳐서다. 수익률에 초점을 맞춘 연금 운영은 미래 연금의 불투명을 키울 수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을 쌓아둘 것이 아니라 현재 세대가 당장의 노후 세대만의 연금만을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봉양하는 세대보다 봉양 받을 사람이 많아지는 한국의 방추형 인구구조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인구구조의 변화 등으로 국민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원칙을 세워둔 상태다.

올 들어 국민연금 수익률 곤두박질


다만 정작 적자 운영으로 매년 수조원의 국민 혈세를 받고 있는 공적연금 문제에는 정부가 눈감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 간 공적연금에 대한 국고보전금이 20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수와 급여가 증가함에 따라 연금 지급액도 커지고 있는데, 연금 재정이 이를 지탱하지 못하자 국민 혈세로 이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공적연금 전체를 보험료 원금에 이자만 더해 주는 ‘확정기여형’ 방식으로 전환해 국가 지원을 줄이자는 의견도 힘을 얻는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홍역을 한 번 치러야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선진국이 보험료를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춰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화했듯이 탈(脫)정치적 논의 환경을 조성해 국민연금이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448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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