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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시대 막 오를까] 정부·여당 “제한적 적용” 가닥 

 

김유경 기자
산업계 “의료 정보 수집 불가능해 속 빈 강정” 비판…해외선 AI 진료·인슈어테크 일반화

정부와 여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안 통과에 힘을 쏟고 있다. 개정안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나 격오지 활동이 많은 군인·선원 등이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의료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이는 한편 세계적인 의료·정보통신기술(ICT) 간 융합 흐름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료법 개정이 자칫 의료민영화의 길을 터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도 반발한다. 17년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 기업의 줄다리기 결과는 예전과 다를까. 이와 더불어 미국·중국 등 원격의료 선진국의 현황도 자세히 살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정책 발표 행사장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AIA생명과 SK텔레콤·SK C&C가 손잡고 하루에 7500보 이상 걷는 고객에게 보험료·통신료 할인 및 커피·음악감상·도서 등의 문화활동 혜택을 제공하는 ‘AIA바이탈리티 X T건강걷기’ 프로그램을 최근 선보였다. 운전을 적게 하는 운전자에게 자동차보험료를 깎아주는 것처럼 건강을 위해 많이 활동하는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기업은 마케팅 용도는 물론 고객들이 많이 걷는 길, 관심 분야 등 광범위한 분야의 데이터를 확보해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이 이런 정보를 활용해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면 불법이다. 의료법과 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등 여러 규제가 가로막고 있어서다. 삼성전자의 경우 자사 스마트폰에 설치된 삼성헬스를 통해 사용자의 걸음 수와 소모 칼로리, 수면시간, 식습관 등의 정보를 촘촘하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한 의료 서비스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규제가 없는 미국에서는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의료 서비스를 지난해 4월부터 제공하기 시작했다.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슈어테크 등 신 기술이 급속도로 진보하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의료계 등의 반발에 막혀 의료정보를 활용한 신기술 활용은 아직 법제화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의료 정보 활용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원격의 원격의료를 중심으로 의료 개혁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혀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불을 댕겼다. 박 장관은 7월 19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의사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나 격오지 환자를 대상으로 대면진료를 하고 정기적인 관리는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확대 계획을 처음 피력했다.

빅데이터 활용한 의료 서비스 제공 불가능


그러나 복지부는 의료정보가 악용될 소지가 있고 의료 민영화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에 막혀 한발 물러섰다. 복지부는 한 달 후인 8월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행법의 의사-의료인, 의료기관-의료기관의 원격 협진을 활성화하되, 예외적으로 격오지 군부대 장병, 원양선박 선원, 교정시설 재소자, 도서·벽지 주민 등 환자와 의사 간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수위 조절에 나섰다. 일반환자를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검토하지 않았다고도 못박았다.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당초 계획에서 후퇴한 것이다.

원격진료 허용 범위 최소화


▎멕시코 시우다드 오브레곤 병원의 한 의사가 400마일 떨어져 있는 한 심장병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던 2010년에도 원격의료 도입을 시도했지만 ‘집단 휴진’ 등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7월 19일 규제혁신 1호 현장방문으로 의료기기를 선택하는 등 의료 규제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원격의료가 전면 도입될 경우 120만 명의 의료 소외계층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이 영리병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원격진료 허용 범위를 최소화해 의료계의 반발을 무마하겠다는 것이다. 여당도 청와대와 같은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의사-환자 간 원력의료 전면 확대를 당론으로 찬성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영리 의료활동 참여를 보장하자는 방향이다.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안을 재심의 하기 때문에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가능성이 아직 사라진 건 아니다. 20대 국회 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보·의료·교육 등 서비스 산업 중심의 4차산업으로 경제 구조가 변하고 있어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며 “의료민영화 등에 우려가 큰 것은 잘 알고 있고, 대안을 만들어 문제를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추가 논의의 여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국회 복지위 관계자는 “과거 안과는 달리 현재 정부안은 영리사업 확대 등 민감한 부분이 빠져있어 여당에서도 의료 소외지역 등 규정을 잘 설계하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라며 “제한적인 원격의료 도입은 의료계 반발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2016년과는 달리 원격의료 대상에 ‘도시 지역의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을 제외했다. 도시 지역 노인과 장애인을 포함시키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의료정보는 일상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혈당이나 부정맥 등 만성 질환 관련 정보로 넓어진다. 이 경우 병원과 IT 기업 간에 새로운 의료 서비스 개발이 가능해진다. 또 건강 및 의료·생체 정보와 관련한 개인정보 보호법까지 개정할 경우 정밀의료와 차세대 유전체 분석 등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의료분야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사립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유전체 등 의료 데이터는 용량이 방대하며, 많은 수의 환자 데이터를 모아야 유의미한 수치를 뽑아낼 수 있다”며 “연구 등 제한적인 목적으로 개개인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면 체계적인 의료 연구의 기초를 닦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계 이해를 크게 침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법안 통과가 급하다는 당정의 판단에 따라서다. 국회 복지위 여당 간사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격의료를 받더라도 곁에 의료인을 둔다든가 처방, 의료기관 지정 등 아직 논의해야 할부분이 많다. 복지위 회의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산업계는 속 빈 강정이라고 비판한다.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기에는 법의 적용 범위가 크게 축소됐다는 것이다. IT업계 관계자는 “현행 의료계 규정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의료 장비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적인 의료기기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다수 의료장비를 일본과 유럽에서 수입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IT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는 대부분 원격의료가 일상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진료 중 6건 중 1건을 원격의료에 의존하고 있다. 영토가 넓고 의료 서비스 가격이 비싸 다른 나라보다 일찍 대중화됐다. 스마트폰에 연결할 수 있는 웨어러블 심박 측정기 등 원격의료 기기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보급되고 있다. 고령화와 의료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은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시행한 데 이어 올 4월부터는 의료보험 지원을, 7월 18일부터는 건강보험까지 적용하기 시작했다. 화상통화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원격진료는 실제 대면진료보다 비용이 70%가량 저렴해 사용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역시 2016년부터 병원과 환자 간에 원격의료를 시작해, 현재는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IT 기업들도 원격의료 서비스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사회의 최소 안전망인 의료가 대기업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다”고 반발한다. 의료는 기업의 영리활동을 위한 기술 혁신보다는 국민이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폭넓게 받을 수 있는 정책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13년 원격 의료 시범 사업 때 삼성전자·삼성생명·SK텔레콤·LG유플러스·LG전자 등 대기업들이 대거 뛰어들어 의료계의 우려를 산 바 있다.

해외에선 의료정보에 블록체인 적용 움직임도


▎중국 기술기업 아이플라이테크와 칭화대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AI 로봇 ‘샤오이’가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의사 자격시험에서 합격선인 360점을 훌쩍 넘는 456점을 받아 합격했다. / 사진:VR포커스
이들의 우려와 달리 세계적으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AI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IT 선진국에서는 AI 의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IBM이 개발한 AI 소프트웨어 왓슨은 이미 의료 분야에 활용되기 시작했고, 구글도 딥러닝에 기반을 둔 의료 진단 소프트웨어를 최근 선보였다. 지난해 8월 중국 기업 아이플라이테크와 칭화대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AI 로봇 ‘샤오이’는 중국 국가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텐센트도 6월 700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AI 진료 엔진을 선보였다. 최근 고대구로병원이 AI 의사 ‘닥터 앤서’ 개발에 착수하는 등 한국형 기술 개발도 진척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중국 등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최근에는 의료정보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현재는 병원을 바꿀 때마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매번 체크해 문진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럴 필요 없이 환 자의 체중과 체지방량·혈압·체온 등의 기초 정보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실어 의료기관끼리 공유하자는 것이다. 의료 정보를 공통된 틀 안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빠르게 응급환자에 대응할 수 있다. 이중 진료도 막을 수 있다. 의료정보 해킹 우려도 적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의료정보 수집이 제한돼 있어 이런 AI 제작을 위한 데이터 연구나 블록체인 구축은 어려운 실정이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분당 서울대병원 석좌교수)은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신의료 기술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며 “과감한 규제 개혁에 나서지 못하면 한국 의료산업의 수준은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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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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