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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가전 전성시대 기업 전략 3가지] 작고, 똑똑하고, 특화된 제품으로 승부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냉장고·세탁기 등 대형 가전도 소형화…게임·반려동물 특화 가전도 인기몰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형 주방가전들.
소비 트렌드와 생활환경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틈새가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표적 전통가전이 진입할 수 없는 틈새시장이 생겨나면서 기존 가전 업계 판도에도 중요한 변곡점이 생겼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새로운 트렌드에 맞춘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틈새가전 전성시대에 맞춘 기업의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소형화, 인공지능(AI)화, 특화가 그것이다.

소형화는 틈새가전 시대로 접어든 가전제품 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실제 소형 가전제품은 시장에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형가전 시장이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39%나 성장했다. 소형가전 시장 확대는 전체 가전 시장 판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모두 소형가전이 생활가전 품목의 매출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1~2인 소형 가구의 증가와 함께 틈새가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표적인 소형 가전들의 판매실적이 올라간 결과다.

소형가전 매출이 생활가전 앞질러


▎2. LG 올레드TV AI 씽큐의 대화면을 통해 구글 어시스턴트 한국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 3. 소형 냉장고.
소형화 바람은 기존에 주목 받지 못한 주방가전으로부터 시작됐다. 블렌더·토스터·무선주전자 등이다. 이른바 ‘세컨 가전’이라고 불리며 필수품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제품군이다. 이와 함께 공간 활용에 좋은 초소형 가전도 인기를 끌었다. 일반 냉장고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냉장고와 라면처럼 간단한 요리를 만들 때 유용한 1인용 전기레인지도 등장했다. 혼자 살면서도 집에서 꼬박꼬박 밥을 해먹는 사람이 늘면서 1인용 밥솥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그러면서 중소형 생활가전은 점차 고가 제품군으로 영역을 넓혔다. 면도기·드라이어·토스터를 비롯해 다리미·헤어스타일러 등 몇 만원이면 손에 쥘 수 있던 제품들이 첨단 기술력, 디자인을 앞세워 ‘명품 소형가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해외 가전 업체를 중심으로 청소기·선풍기·헤어드라이어 하나에 50만원을 훌쩍 넘는 프리미엄 가전이 국내 시장에 속속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기업도 이런 트렌드에 맞춰 제품을 내놓으면서 소형 가전 종류도 대폭 확대됐다.

최근엔 대형 가전제품의 대명사격인 냉장고·에어컨·세탁기·빨래건조기에도 소형화 바람이 거세다. 아이가 있어 기저귀 빨래가 많이 나오는 가정에선 세탁 용량 3kg짜리 소형 세탁기 수요가 늘었다. 비슷한 개념의 소형 냉장고, 소형 건조기에 이어 최근에는 내 공간을 위한 미니 공기청정기까지 등장했다. 기록적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 여름 소형 냉방가전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실외기가 필요 없어 작은 평수의 집에도 들여놓을 수 있는 이동식 에어컨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날씨가 쌀쌀해지면서부터는 욕실용 히터, 공기청정 온풍기 등 소형 난방가전을 찾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가성비·작은 사치 소비 경향 영향

가전의 소형화 트렌드는 1인 가구 증가의 영향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수는 1990년 처음 100만을 돌파한 후 2000년 220만, 2015년 520만 등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오는 2022년에는 1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 가구의 30%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다. 1~2인 가구가 가전 시장에서 중요한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1~2인 가구가 늘어나며 주거공간이 소형화됨에 따라 작은 사이즈의 제품을 선호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1인 가구가 향후 업계의 핵심 고객이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일찌감치 관련 수요를 잡아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해 관련 제품을 앞다퉈 내놓는 추세”라고 말했다.

여기에 ‘가성비’를 중시하면서도 ‘작은 사치’를 추구하는 소비 경향도 더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소형가전의 경우 프리미엄 제품으로 분류되는 제품의 가격이 대형 제품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커피메이커나 오븐, 그릴 등의 주방가전 등은 소형화 흐름을 타고 비교적 합리적 가격에 출시되면서 더 많은 수요를 확보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개발이나 건강 등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고 소비하는 젊은층이 냉장고·세탁기 같은 기본 가전 외에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품들을 혼수로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무선청소기·로봇청소기 등 최신 트렌드 제품들은 물론 토스터·커피머신 등 소형 프리미엄 가전 매출이 늘었다.

틈새가전 시대를 맞은 가전 업체들의 또 하나의 전략은 인공지능(AI) 기술 탑재다. 최근 출시되는 신제품에서는 제품 본연의 기능보다 AI를 먼저 소개할 정도다. 조작법 상이한 틈새가전이 늘면서 소비자들은 이것들을 일일이 번거롭게 조작하는 것보다, AI가 일괄적으로 스마트하고 편리하게 관리해 주기를 선호하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AI 플랫폼은 사용자가 음성으로 가전을 제어하고, 기존 PC·스마트폰에서 쓰던 서비스를 가전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용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가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AI가 가정 내 모든 가전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주는 방향으로 제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중견 업체는 자사 제품에 타사 AI 연동


▎LG전자 울트라기어 게이밍모니터. / 사진:LG전자
AI기술 발전 속도가 급물살을 타면서 국내 가전 업체들도 앞다퉈 AI를 탑재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AI기능이 탑재된 TV와 냉장고에어컨·공기청정기를 선보였다. 또 각각의 제품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스마트싱스로 통합했다. AI로 가전을 보다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전사적인 플랫폼 재정비에 나선 것이다. LG전자도 AI 통합 브랜드 ‘씽큐’를 기반으로 AI가전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가 탑재된 가전제품에는 씽큐 휘센, 씽큐 TV 등 ‘씽큐’ 브랜드를 붙인다. AI가 탑재된 제품들은 음성을 통해 제어가 가능하다.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AI 스피커를 내세워 빠르게 가전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스마트홈 신규 가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거나 제휴 아파트에 기본 제공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부담을 낮춘 점이 특징이다. 이통 3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빠르게 이용자를 확보해 AI 스피커를 스마트홈 시장의 허브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들이 스마트홈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타 업계 대비 경쟁력을 가진 분야인 데다 AI 스피커와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스마트홈은 빠르게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중견 가전 업체의 경우 자사 가전제품과 타사 AI 플랫폼 간 연동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고 있다. 대유위니아·캐리어에어컨은 자사 에어컨에 SK의 AI 플랫폼 ‘누구’를 연동시켰고, 귀뚜라미도 자사 보일러에 KT의 ‘기가지니’로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중견 업체 입장에선 자체 AI 플랫폼 개발 비용 부담이 크고 자칫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보다는 자사 IoT 기능과 타사 AI 플랫폼을 연결하는 것이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 또 자사 AI 생태계를 구축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려는 통신사와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려는 중견기업 간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진다.

어떤 한 부분을 전문화한다는 의미의 ‘특화’도 틈새가전 시대에 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는 제품 차별화 전략이다. 여러 기능을 나열하는 규모 경쟁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맞춤형 기능으로 편의성을 강조한 신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프리미엄 가전 수요 창출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큰 틀에선 같은 가전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새로운 기능이 탑재된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며 “특정 기능을 선호하는 마니아층을 겨냥한 상품이나 1~2대 더 갖고 있으면 상호 보완 효과를 볼 수 있는 특화 가전 제품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가전 업체들은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PC·모바일 게이머들을 잡기 위한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고화질·고성능의 게임 비중이 커지면서 최적의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게 도와주는 모니터·스마트폰·키보드 등 게이밍 기어(게임 관련 소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지난 9월 게이밍 모니터 브랜드 ‘LG 울트라기어’를 선보였다. 지난해 게이밍모니터 시장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하는 등 게임 전문 모니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아예 게이밍 모니터 전문 브랜드를 출시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커브드 게이밍 모니터 2종을 새로 공개하고 유럽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화장품 냉장고, 신발 세탁기도 인기

범용으로 쓰이던 냉장고·세탁기 등은 최근 맞춤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가전 업계에 따르면 틈새시장을 공략한 업계의 관련 제품 출시가 잇따르면서, 술 보관에 특화된 냉장고가 입소문을 통해 꾸준한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미 김치냉장고에 와인·소주·맥주 등을 보관하는 기능이 있지만 최근 들어 소주·맥주 등 특정 주류를 위한 전용 냉장고가 출시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이 밖에 화장품 보관에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주는 화장품 전용 냉장고와 의류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신발의 특수성에 최적화된 신발 세탁·건조기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반려동물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펫팸족(Pet+Family)’을 타깃으로 하는 가전도 주목 받고 있다. 반려동물 안전과 건강 등에 특화된 기능으로 소비자를 공략하는 모양새다. 일부 중소·중견 생활가전업체들도 향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펫가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쿠쿠전자는 ‘고양이 안전장치’를 탑재한 인덕션 레인지를 출시했다. 반려동물의 체온 유지, 수면을 돕는 ‘냉온수 펫하우스’나 반려동물 전용 스파·드라이, 반려동물 자동 발 세척기, 자동 공놀이·급식기·급수기 등도 반려동물만을 위한 전용 가전이다.

1457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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