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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끌리는 컨셉 만들기'의 김근배 숭실대 교수] 요강에 막걸리를 부어 준다면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관념론적으로 바라본 마케팅 이론... 경영기법보다 사업의 본질 파악부터

▎사진:지미연 기자
2014년 말 김근배 숭실대 경영학 교수를 처음 만났다. 대화의 주제는 ‘콘셉트(Concept)’였다. 그는 “콘셉트를 정확히 잡아야 길을 잃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 2013년 9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CEO’에서 이를 주제로 ‘끌리는 컨셉의 법칙’이라는 강의도 진행했다. 이를 묶어 책으로 만든게 [끌리는 컨셉의 법칙]이다. 10만권 팔린 마케팅 분야의 베스트셀러다. 당시 김 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다음 계획을 물었다. 그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하다”며 다음 저술을 예고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끌리는 컨셉 만들기]를 출간했다.

김 교수는 신간의 서문에 “신제품을 개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룬 책”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 경영자나 예비 창업자들은 의욕이 넘친다. 하지만 정작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친다. 이를 최소화하며 이들의 성공을 돕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김 교수는 “콘셉트 개발에 도움을 주고자 전작을 썼지만 신제품이나 신사업 개발에 경험이 없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반성하며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책은 어렵다. 김 교수도 일정 부분 동의했다. 신제품 개발에 대한 방법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이론이 제법 난해하다. 몇 가지 철학이론이 등장한다. 칸트의 인식론과 예술창작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정의 방법, 베이컨의 귀납법이 책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는 “콘셉트가 논리학의 핵심 주제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논리학은 인식론의 토대를 이루는 학문이다. 인식론은 개념과 감각, 그리고 상상력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다룬다. 김 교수는 저서에서 창의적 사고를 공감·개념·상상력으로 나눴다. 그리고 각각의 인식능력을 촉진하는 도구를 4개씩 선별한다. 12개의 도구를 사용해 콘셉트를 이야기하며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들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컨셉빌딩’을 소개한다. 그는 “콘셉트(Concept)를 먼저 정하고 제품을 만들라(Building)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개념이 왜 중요한지 명시한 다음 고객과 공감하며 다시 개념을 도출하는 방법을 컨셉빌딩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룬다.

신제품 개발 위한 방법론 소개


경영 마케팅 방법론에 철학이론을 도입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요강과 막걸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인식론의 큰 줄기로 실재론과 관념론이 있다. 요강에 막걸리를 담아서 외국인과 한국인에게 주면 반응이 다르게 나온다. 외국인은 마시고 막걸리의 맛을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왜 막걸리를 요강에 담아 주느냐며 항의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 못해 마셔도 불쾌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머릿속에 관념이 있어서다. 요강은 오줌을 담는 그릇인데 여기에 막걸리는 주니 머리가 거부하는 것이다. 관념이 막걸리를 마시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김 교수가 현대 마케팅 이론만으로는 콘셉트가 중심인 방법론을 쓰기 어렵다고 한 이유다. 마케팅 이론 대부분 실재론에 기인한다. 판매, 성장, 가격, 소비자 정보가 수치로 나타난다. 마케팅 지식 체계가 실재론적인 관점에서만 연구 기술돼서다. 콘셉트를 이해하려면 관념론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인간의 정신현상은 실재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이 책의 주제인 ‘인간의 창의적인 인식 능력’이 바로 그러하다”고 말했다.

책은 모두 3부 12장으로 구성됐다. 1부는 컨셉빌딩을 소개하고, 2부는 시제품을 만들기 이전 컨셉빌딩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3부에서는 시제품을 구체화하고 사업 기획으로 발전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작 과정에서 김 교수는 학생들과 다양한 실습을 하며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첫 학기엔 이해가 안 간다는 학생이 많았다. 함께 실습을 하며 내용을 수정했고 2년이 지날 즈음 학생들의 질문이 확 줄어들었다.

다른 마케팅 전문가들이 책에 대해 내린 평가를 묻자 “불편해 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답이 왔다. 김 교수가 기존 마케팅 방식을 혹평한 내용이 제법 있어서다. 대학가에서 마케팅 교과서로 사용하는 ‘신제품 설계와 마케팅’, 품질경영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던 ‘6 시그마’, 최근 주목받는 ‘디자인싱킹’과 ‘린 스타트업’ 모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창업가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디자인 싱킹은 외형이 기능에 영향을 미칠 때 적용하는 도구다. 디자인에만 매달리면 못 보는 현실이 많아진다. 김 교수는 “어떤 제품을 왜 만드는지 매달릴 시간에 외형에만 매달리면 길을 잃게 마련”이라며 “콘셉트 없이 개발에 매달리면 더 빨리 더 많이 실패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전엔 이렇게 보이던 것이 경험이 쌓이며 다르게 보이면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이 현실이 왜곡된 것인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과학은 사물을 검증한다. 하지만 정신현상마저 과학적으로 하다보면 모순에 빠진다. 김 교수는 “마케팅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뭔가 더 설득력있어 보이지만 관념론을 이해하면 사물을 더 잘 바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434페이지다. 편집 전 초교 분량은 600페이지가 넘었다. 출판 편집부에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몸집을 줄이자는 의견을 냈다. 동의한 김 교수는 시의성이 지난 사례를 정리했다. 집필 기간이 2년이라 신제품에서 철 지난 상품으로 전락한 제품이 있었다. 마케팅 기법을 비판한 내용 가운데 너무 공격적인 대목도 줄이거나 순화했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각장 뒤에 나오는 ‘컨셉 카페’다. 앞서 소개한 방법론에 대해 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지 도움이 되는 읽을 거리다. 이 부분만 따로 떼서 소책자를 만들까도 궁리했다. 고민하는 김 교수에게 연구실 제자가 의견을 냈다. 컨셉 카페는 책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콘텐트이기에 절대로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동의한 김 교수는 컨셉 카페의 내용을 대부분 살렸다. 그는 “출판 이후에 보니 살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컨셉 카폐를 읽으면 책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도구보다 적절한 도구가 필수

혁신을 위해서는 좋은 도구가 아니라 적절한 도구가 필요하다. 김 교수가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 주제다. 도구에 의존하지 말고 나에게 지금 필요한 도구가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라는 것이다. 최신 마케팅 이론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창업자가 이해한 시장의 흐름과 그가 고민하며 생각한 제품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어쩌다 낸 제품이 성공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을 확률은 낮다. 쥐를 잡으려면 고양이를 키우거나 쥐덫을 놓아야 한다. “학생이나 초기 창업자에겐 제 책이 어려울 겁니다. 반면 경험 있는 사람은 사례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어렵다고 놓지 말고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판단하는 힘,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콘셉트를 잘 잡고 성공 확률도 높아집니다. 제가 이 책을 쓴 목적입니다.”

1465호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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