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반도체 호황 이어질까?] 수출 이끌던 수퍼 사이클은 끝나고…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반도체 가격 약세로 돌아서 … 국내 기업의 초격차 전략 기대할 만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딜라이트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반도체 관련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수출은 2018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가 수출을 이끌었다. 전체 수출액의 5분의 1가량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전체 수출액 가운데 반도체 비중은 2016년 12.6%에서 2017년 17.1%로, 그리고 2018년(1~10월)에는 21.2%로 커졌다. 반도체는 특히 2018년 단일 품목으로는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반도체 경기가 2016년부터 이른바 ‘수퍼 사이클(초호황)’을 맞은 덕분이다. 특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면서 메모리반도체(데이터 저장 반도체) 가격이 크게 올랐고, 이 같은 가격 효과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사상 최대 실적으로 이어졌다. 2018년 두 기업은 반도체에서만 6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수요가 늘고 가격이 오르는 ‘초호황’이 끝나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경제에서 일고 있는 ‘반도체 위기론’의 실체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번지고 있는 반도체 위기론은 ‘반도체 시장 초호황’에 대한 우려의 시각 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중국이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는 등 악재가 많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급격히 위축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업 서버 증설 등에 따른 반도체 수요가 여전하고, 기술력에서는 중국이 감히 넘보지 못할 수준이다. 2016~2018년 이어진 초호황은 아니더라도, 2019년에도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반도체 위기=한국 경제 위기


다만 반도체 가격은 약세로 돌아섰다. 낸드플래시(NAND Flash, 영구저장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2018년 상반기부터 이미 하락세를 보였다. 2018년 말에는 하락폭이 더 커졌다. 메모리카드 등에 사용하는 ‘128Gb MLC’는 2018년 9월 전달에 비해 3.8% 떨어진 데 이어 10월에도 6.51% 하락하며 4.74달러를 기록했다. 이 제품이 4달러대로 떨어진 것은 2017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최저점이었던 2016년 5월 3.51달러에 근접한 것이다. IHS마킷에 따르면 2019년 3분기 기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0.8%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시장점유율이 11.3%로 도시바(16.4%)·웨스턴 디지털(13.5%)에 이어 4위다. 낸드플래시 가격이 더 떨어진다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력 상품인 D램 가격이다. D램 가격은 2018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2016년 이후 ‘무섭게 오르던’ 상승세는 꺾였지만, 그런대로 가격이 버텨준 것이다. 하지만 D램 역시 2018년 10월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개인용 컴퓨터 등에 주로 사용되는 D램인 ‘DDR4 8Gb’ 제품 가격이 10월 말 개당 7.31달러로, 한 달 전(8.19달러)보다 10.74%나 하락했다. 7.31달러는 정확히 2017년 10월 말 가격으로, 한 달 만에 1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D램익스체인지는 월간 시황보고서에서 “2019년 1분기에도 계절적인 비수기 경향으로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최근의 시장 수급 상황에 미뤄보면 2019년 D램 가격은 20% 안팎의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가격의 추가 하락을 예상하는 주된 이유는 중국의 반도체 양산이다. 기술적인 면이나 완성도 면에서 아직은 국내 기업 제품에 비할 수 없지만, 중국이 저가·저사양 낸드플래시 생산을 시작으로 반도체 생산을 늘리면 공급이 늘어나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2018년 8월 6일 ‘반도체 본고장’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2세대로 불리는 32단 3D 낸드플래시 시제품을 선보였다. 그해 10월부터 시험 생산에 들어갔고, 2019년부터는 대량 생산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푼다는 계획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력 상품(4세대로 불리는 64~72단 3D 낸드플래시)과는 성능 차이가 크지만,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반도체를 본격적으로 양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 요인이 2019년부터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국내 반도체 기업 때리기에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를 겨냥한 반독점(가격 담합) 조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18년 11월 중순 중국 당국자가 “반도체 반독점 조사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메이저 3사의 가격 담합을 입증할 자료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외에서는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반도체 업황이 악화돼 이들 기업의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니 주식을 매도하라는 의미다. 씨티 역시 “앞으로 한국은 반도체 수출 둔화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씨티는 반도체 단가 하락의 영향으로 한국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2018년 말 “반도체 수출이 2017년이나 2018년과 같은 붐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시장 자체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2018년 말 ‘반도체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시장이 2018년 1651억 달러(약 185조원)에서 2019년 1645억 달러(184조원)로 0.3% 역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도 2019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5%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2018년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30%대였다.

한국 반도체 수출액 증가율 한 자릿수에 그칠 듯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2019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보다 9.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8년 두 자릿수 증가율에서 둔화한 모습이지만 나쁘지 않은 전망이다. 연구원 측은 “미·중 통상갈등으로 미국이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며 “반도체 치킨게임으로 가격 하락 우려가 컸는데 오히려 한국이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의 초격차 전략도 기대해 볼 만하다. 반도체 기술의 난도를 감안할 때 중국이 아무리 자본을 투자하더라도 단시일 내에 한국을 따라오기는 쉽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 격차를 더 벌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두 기업은 2019년부터 공장 증설 등에 50조원을 차례로 투자한다. 정부도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선다. 2019년부터 10년 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1466호 (2019.01.0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