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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뇌관 터질까?] 규모·건전성 모두 나쁘지 않은 수준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
가계부채 증가율 2016년부터 7분기 연속 떨어져 … 가계 연체율 2018년 1분기 1.37% 불과

한국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5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월에 발표한 ‘2018년 3분기중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1514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6월 말보다 22조원 증가한 규모다. 한 일간지는 “가계부채는 2005년 500조원을 넘어선 후 2013년 말 1000조원에 이르기까지 약 8년이 걸렸다”면서 “여기에서 500조원이 더 불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5년에 불과했다”고 비교하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1500조원이 넘었다고 해서 이전보다 더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 가계부채 500조원이 증가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에 바람직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위 기사는 특히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서 오류를 범했다. 500조원에서 1000조원에 이르기까지 걸린 기간 8년과 1000조원에서 500조원이 증가하는 데 걸린 5년을 비교한 대목이다. 두 단계의 연평균 증가율을 계산하면 첫째 단계는 9.0%이고 둘째 단계는 8.4%이다. 가계부채는 규모 1000조원을 경계로 증가 속도가 둔해진 것이다.

저성장이 정상이 된 뉴노멀의 시대에도 경제가 성장하는 한 가계부채는 증가하게 마련이다. 가계부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 관련 차입금을 생각해보자. 자기 돈만으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고 주택구입 자금을 조달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가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경제 성장에 따라 가계 빚의 절대 규모가 계속 증가하면 사상 최대치를 거듭 경신하게 된다. 한국은행의 분기별 가계부채 통계는 과거 61분기 동안 작성됐는데, 가계 빚이 줄어든 시기는 5번 밖에 없었다.

가계부채 사상 처음으로 1500조원 넘어

전에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놓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약 2년 전부터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완만해졌다. 가계부채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16년 4분기 11.6% 이후 7분기 연속 떨어져 3분기에는 6.7%를 기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가계부채 절대금액 대신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한 가계부채의 상대적인 규모를 비교한다. 이 점에서 BIS는 가계부채의 절대금액을 문제삼는 데 비해 조금 더 분석적이다. 한국의 2018년 3분기 말 가계부채는 2017년 GDP와 맞먹는 규모고, BIS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43개 주요국 가운데 7번째로 높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규모를 명목 GDP와 비교하는 방식 또한 경제학 측면에서 타당하지는 않다. 가계부채는 저량(貯量) 개념이고 GDP는 유량(流量) 개념이다. 유량은 일정 기간에 측정되는 양을 뜻한다. 기업의 매출과 이익, 한 나라의 GDP는 유량이다. 저량은 비축된 양으로 가계의 금융자산 잔액이나 부채 금액, 기업의 부채액과 총자산액 등이다. 저량인 가계부채가 상환되지 못할 위험을 추정하려면 가계의 저량 변수인 금융·실물 자산을 비교 대상으로 잡아야 한다. 또 유량은 유량과 비교한다는 측면에서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액을 현재와 미래의 소득에 비추어 따져봐야 한다.

가계부채를 건전성 측면에서 살펴보자. 한국은행이 지난 10월에 배포한 ‘가계부채 DB의 이해와 활용(조사통계월보 9월호 게재)’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의 질이 개선됐다. 가계부채의 질을 사후적으로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종합 지표는 연체율이다. 가계부채 연체율은 2010년 말 3%대에서 2018년 1분기 말 1.37%로 큰 폭 떨어졌다. 미국의 4%대에 비해 뚜렷하게 낮은 수준이다. 가계부채 연체율은 전체 대출에서 연간 소득이 많고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의 비중이 높아지고 분할상환 비율도 올라가면서 하락해왔다. 소득구간별 분포를 보면 ‘연간소득 5000만~8000만원 미만’ 대출자 비중은 2012년 1분기 26%에서 2018년 1분기에는 30%로 확대됐다. 고신용자(1~3등급)에 대한 대출 비중은 같은 기간 39%에서 57%로 높아졌다. 이 자료에서 주목할 부분은 가계부채 연체율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 시기다. 연체율은 가계부채의 질을 종합적·결과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가계부채 연체율은 2013년 이후 추세적으로 떨어졌다. 국내 가계부채 연체율은 2018년 1분기 말에 1%대로 나타났다. 국내 은행의 원화 가계대출 연체율은 더 낮다. 이 연체율은 2018년 1분기 말 0.25%로 집계됐다.

연체율로 가늠한 국내 은행 가계부채의 건전성은 2013년 이후, 특히 2016년 말 이후 개선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같은 자료에서 가계대출 연체율이 낮게 유지돼 온 요인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신용도 높은 차주 중심 대출을 들었다. 한국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이 확대된 2014~2017년에 LTV는 지역, 금융업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40~70% 규제를 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LTV는 국내에서 2000년대 초에 도입, 시행돼왔다. 이렇게 볼 때 가계부채가 위험하다는 걱정은 2016년 말 이후 기우에 가까워졌다고 분석된다.

가계대출은 절반 정도가 주택담보로 이뤄진다. 그래서 가계부채의 건정성에 영향을 줄 주요 변수로 금리 상승과 함께 집값이 꼽힌다. 두 변수는 가계부채를 통해 한국 경제에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돼왔다. 시스템 리스크는 개별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부실해지는 위험을 뜻한다. 가계부채의 시스템 리스크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금리가 오르면 빚을 갚지 못하는 가구가 증가할 위험이 커진다. 주택가격이 내리면 금융회사는 주택담보대출 금액 중 한도를 초과하게 된 금액을 회수하려 한다. 이 초과 대출금을 갚을 여윳돈이 없는 한계가구는 집을 팔아야 한다. 한계가구가 많아져 주택 매물이 대거 쏟아지면 집값이 더 하락한다.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가구가 속출한다. 집이 팔리지 않아 원리금을 연체하는 경우도 증가한다. 가계부채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이 되면 채권이 부실해진 금융회사들은 재무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대출을 줄인다. 그렇게 되면 신용경색이 빚어지고 돈줄이 말라 기업 경영이 어려워진다.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

집값 하락 위험은 크지 않다. 혹자는 국내 주택 가격이 거품으로 크게 부풀었다고 주장하지만 국내 집값이 버블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거품은 시간이 지나 정점에 도달한 후 제풀에 터지고 특히 경기가 꺾이면 붕괴할 수밖에 없는데, 국내 집값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작다. 또 주택 가격이 하락해도 우리나라는 담보여력 감소로 인한 상환 압박이 크지 않다. LTV를 과거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낮게 유지했고, 그래서 집값이 폭락하지 않는 이상 한도 초과 대출 금액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가 점차 개선돼 금리 상승에 영향을 덜 받게 됐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대출 비중이 2010년 이후 계속 높아졌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18년 6월)에 따르면 두 비중은 2017년 4분기 말 각각 44.5%와 49.8%를 기록했다.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커질수록 금리 상승에 따라 이자를 더 내는 부담이 줄어든다. 분할상환 대출은 비거치 분할상환 방식을 가리키며 이 비율이 높아지면 원금 상환 시기 도래에 따른 부담이 덜 간다.

한은 “시스템 리스크 발생 가능성 제한적”

채무상환능력이 탄탄하면 금리가 올라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채무상환능력의 기준은 소득과 자산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2018년 1분기에는 가계부채 증가율과 소득 증가율 사이의 갭은 축소됐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소득증가율보다 높은데, 그 차이가 줄어들었으니 이는 긍정적인 지표다. 또 가계부채의 금융자산 대비 비율은 같은 시기에 46%로 예년(2010~2014년) 평균인 45.7%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가계의 전반적인 채무상환 능력, 가계부채 질적 구조 개선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시점에서 가계부채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 발생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1466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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