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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계속 이어질까?] 세계 패권 둘러싼 지루한 장기전 전망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미, 중국 경제의 근본적 변화 요구...세계 경제에 큰 피해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12월 1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많은 전문가는 미·중 무역분쟁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분쟁의 강도가 변할 수 있고, 언뜻 보기에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국면도 조성될 수 있다. 그러나 양국 간 무역분쟁의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 가지 이유를 중요하게 거론할 수 있다.

첫째, 미·중 무역분쟁은 세계 질서의 지배적 위치를 둘러싼 패권경쟁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과 같은 공식문서를 통해 중국을 ‘수정주의 강대국’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도전자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중국의 꿈’의 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미국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을 지금까지처럼 그대로 두었다간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게 될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미국의 무역제재에 굴복했다간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사실에 강한 불만을 갖게 됐다.

둘째, 국내 정치적으로도 양국 모두 물러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와 제조업 공동화로 보호무역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높다. 특히 중국 경계론은 공화·민주 양당 모두가 지지한다. 중국에서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초강대국을 건설하려는 중화민족주의의 꿈이 솟구치고 있다. 이런 중국이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중국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이라는 어려운 시기이지만,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미국의 압박을 경제 침체의 구실로 전가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기도 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들의 자존심 싸움이 미·중 무역분쟁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대중국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당연히 유리하다고 계산한다. 2017년 미국의 대중 상품 수출은 1298억 달러, 수입은 5055억 달러로, 상품교역수지는 3756억 달러 적자였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무역제재가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초래해 중국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악화시키지 않으며 무역분쟁이 서비스 교역과 투자 분야로까지 확대되면 미국에 비해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관세 부과로 미 무역적자 줄지 않아


셋째, 미국의 대중국 무역제재가 중국 경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양국 무역분쟁이 쉽게 해소될 수 없다. 미국의 공격은 결코 중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축소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오히려 ‘중국제조 2025’가 주요 공격 대상이다. 중국 국무원이 2015년에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2015년부터 2045년까지 10년 단위로 중국 제조업의 세계적 위상에 관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국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계획이다. 물론 이는 중국을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려는 비전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이 계획은 매우 불공정하고 미국의 이익을 해치는 방법으로 추진되도록 돼 있다. 무엇보다 미국 기업의 기술 이전을 강요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느슨하게 하고 있으며, 기술 도둑질을 부추기도록 한다고 인식한다. 또 미국 기업의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거나 합작투자의 형태로만 허용하면서, 중국 기업이 미국 기술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데는 갖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런 조치가 자국의 기술혁신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중 무역분쟁에서 타협적 해결책은 없는가. 무역분쟁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면, 다음의 세 가지를 조기 타협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미·중 무역분쟁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다. 무역수지는 국내 저축률이 투자율보다 낮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계나 정부가 저축보다 소비를 많이 하는데 비해 기업의 투자가 활발하면 무역수지의 적자는 당연하다. 거시경제 균형공식에 따른 자동적인 현상이다{(수출-수입) = (저축-투자) + (정부세입-정부지출)}. 무역정책은 단지 무역수지가 어느 나라와 발생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따름이다. 즉,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심지어 위안화의 평가절하까지 고려하면 중국과의 무역수지에도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최근 미국의 상품교역수지 및 대중국 적자 규모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무역분쟁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멸의 길이다. 중국의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의 소비자가 손해를 보게 되고, 중국 상품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미국 생산자의 경쟁력도 떨어진다. 더욱이 중국이 지금처럼 미국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의 수출업자도 피해를 입게 된다. 무역분쟁의 결과로 미·중 교역량이 감소하면 미국과 중국에 수출하던 제3국의 기업도 수출 감소를 겪어야 한다. 미·중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된다.

또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적 규칙에 기초한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세력들이 증가함으로써 무역분쟁과 국제경제 질서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미국과 중국의 수출업자들과 수입업자들은 미·중 무역분쟁에 반대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 양국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도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를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역분쟁은 금융시장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무역 분쟁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미국 금융시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 압도하게 마련

그런데 이런 요구와 목소리가 세계 질서의 향배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미·중 패권전쟁의 함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 지속과 조기 중단을 예측하는 이유들 중에서 어느 쪽이 우세할 것인가. 지속을 주장하는 쪽은 정치적 요인을 중시하고, 중단을 예상하는 쪽은 경제적 요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전자를 정치적 설명, 후자를 경제적 설명이라고 칭할 수 있다. 필자는 전자의 입장을 택하고 싶다. 정치와 경제가 다툼을 벌이면 항상 이기는 쪽은 정치 쪽이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데니 로드릭이 한 말이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E.H.카의 유명한 경구도 있다. “경제학은 정치질서가 주어진 것을 전제하고 있고, 정치와 분리돼서 제대로 연구될 수 없다.” 이런 시각을 우리의 문제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무역수지 적자의 총 규모를 줄이는 것 못지않게 적대국과의 적자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득을 보는 것보다 인도나 동남아가 중국을 대신해서 득을 보는 것이 낫다. 손해를 보는 경우도 비슷하다. 모두가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입는 손해보다 상대가 입는 손해가 더 크면 여전히 해볼 만한 게임이다. 자유무역과 다자적 질서를 지지하는 세력이 존재하지만, 정치적 결속력은 보호무역과 상호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더 강하다.

1466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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