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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이 세계 경제 불안 도화선 될까?] 브릭스 성장률 전망치 잇단 하향 조정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새로운 성장동력 미비하고 정치 불안도 잠재… 미 금리 인상, 미·중 무역전쟁도 악재

▎2017년 브릭스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제이콥 주마 전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2000년대를 전후로 빠른 경제 성장을 거듭해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신흥국인 ‘브릭스(BRICS)’가 좀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분쟁 장기화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중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러시아 정부는 종전 2.1%였던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하반기 들어 1.8%로 하향 조정했다. 루블화 가치 폭락, 미국의 러시아 제재 정책 등 악재가 겹쳤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등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장기간 유지한 탓에 외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6년 기준 석유·가스 수출로 국내총생산(GDP)의 23%가 발생했다. 2019년에도 험로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남미의 맹주 브라질 역시 고전 중이다. 2015~2016년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가 2017년 간신히 1.0% 성장으로 돌아섰던 브라질은 2018년 성장률 예상치가 기존 2.4%에서 최근 1.2%로 하향 조정됐다(세계은행 발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라질의 2019년 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2.5%에서 2.1%로 낮췄다. OECD는 브라질 경제가 최대 현안인 연금개혁안을 놓고 여전히 큰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고 분석했다. 브라질 정부의 개혁 추진에도 브라질 연방의회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연금개혁안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지속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따르는 재정 상태가 연금개혁 등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계속 고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정 나은 인도도 고성장은 벅찰 듯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인구 규모로 무장한 인도는 그나마 브릭스 국가 중 상황이 나은 편이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도는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이후 꾸준히 7%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경제 잠재력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다만 2018년 역시 다른 신흥국 대비, 특히 중국에 비해서도 고성장한 것으로 추산됨에도 2019년까지 이어지는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일단 미국 경제매체 쿼츠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최근 루피화 가치 하락과 이에 따른 긴축, 국제유가 상승 등의 요인으로 내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인도의 2018년 성장률이 7.3%로 기존 예상치보다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 금융권의 부실 채권, 유가 상승에 따른 부담 가중(인도는 원유 소비량의 80%가량을 수입에 의존), 신흥국 전반의 금융 불안 도미노 현상에 따른 경제심리 악화 등 불안 요소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프리카의 맹주 남아공은 2016년 0.5%, 2017년 1.3%의 저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2018년에도 0.7% 저성장이 예상된다(9월 남아공 중앙은행 발표). 2019년 성장률 전망치는 1.9%로 유지됐지만 역시 저성장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남아공은 경제 성장이 둔화했지만, 통화는 글로벌 무역 긴장으로 타격을 입고 미국의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긴축 통화정책을 유지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브릭스가 아니더라도 신흥국 중 터키와 아르헨티나가 201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신흥시장 경제 전반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감을 증폭시켰다. 전문가들은 한때 두 나라의 금융위기가 재정 건전성이 취약한 신흥국 전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다행히 아직 다른 신흥국으로 위기 자체가 확산되진 않았다.

이 같은 부정적인 신흥국 경제 전망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화폐 가치의 하락’이다. 러시아의 루블화, 브라질의 헤알화, 인도의 루피화 등이 2018년 모두 가치 하락으로 가뜩이나 쉽지 않은 상황과 마주했던 신흥국들에 깊은 고민을 안겼다.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 소비와 투자 모두 위축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당장에 금융위기까지는 아니어도, 2019년 위기를 유발할 수 있는 ‘금융 불안’은 화폐 가치 하락에 따라 이미 조장된 상태라는 얘기다. 가뜩이나 2018년 터키의 리라화 폭락 사태 이후로 주요 신흥국의 화폐 가치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9년 금융 불안이 쌓이고 쌓여서 위기로 터질 경우 신흥국이 세계 경제 불안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한국은행은 11월 18일 ‘과거 사례와 비교한 최근 신흥국 금융 불안의 특징’ 보고서에서 신흥국 전반의 금융 불안 장기화 가능성을 지적했다. 최근 신흥국의 화폐 가치 하락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환율 외에도 주가와 금리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에서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흥국 주가(MSCI 신흥국지수 기준)는 2018년 2~10월 전년 동기 대비 23.4%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신흥국 환율은 14.4% 하락했고 외국인 증시 투자 자금의 순유입 규모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 채권 시장에선 신흥국 채권에 대한 부도 우려감이 증폭되면서 채권값이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은행은 신흥국 금융 불안이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 유지로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졌기에 촉발된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18년 4차례나 정책금리를 0.25%씩 인상했다. 약세였던 달러화가 4월 이후 강세로 전환한 것도 그래서였다. 자연히 신흥국에 유입된 해외 자본이 유출 압력을 받으면서 금융 불안이 가속화했다. 달러화 강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달러화 표시 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신흥국의 대외 취약성을 키우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통화 정책 정상화(금리 인상과 자산 매입 축소)로 인한 신흥국 자본 유출 규모가 2019년까지 900억 달러(약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도 2019년 신흥국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대목이다. 중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신흥국 대부분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신흥국일수록 원자재나 중간재 수출이 많다. 무역분쟁 장기화가 세계 교역량과 투자 감소, 글로벌 공급망 훼손 등으로 이어지면서 원자재와 중간재를 납품하는 신흥국들의 성장도 그만큼 둔화할 전망이다. 이 외에 브라질의 경우에서 보듯 만성적인 재정·경상수지 적자와 낮은 성장률도 신흥국이 대외 악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분석된다. 브라질은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77%를 넘으며,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만 7%대에 달한다. 인도처럼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신흥국도 있지만, 인도조차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목표치인 3.3%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터키·남아공 불안

신흥국 중 2019년 직접적인 금융위기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는 이미 위기를 겪은 아르헨티나와 터키, 그리고 대외 악재에 한층 취약한 모습을 보인 브라질과 남아공이 거론된다. 러시아와 인도는 금융위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태국·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주요 국가나 중남미의 멕시코 등도 시장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분석이다.

1466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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