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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5) 왜 사장실은 맨 꼭대기에 있을까?] ‘높은 곳에 있는 사람=높은 분’ 상징성 뿌리 깊어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신을 향한 갈망, 하늘 숭배 성향 등 작용... 1800년대 중반 엘리베이터 등장 후 대형 건물의 고층 선호

▎사진:© gettyimagesbank
우리나라 대기업 본사 건물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회장실이나 사장실이 맨 꼭대기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한 창업가들의 마음 속에 있는 ‘코너오피스(corner office)’라는 곳도 비슷하다. 이곳은 단순히 모퉁이에 있는 사무실이 아니다. 빌딩 높은 층에 있는, 그림 같이 멋진 뷰(view)를 자랑하는 CEO 집무실을 말한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의 사장실은 굳이 맨 꼭대기를 고집하진 않지만 가장 좋은 전망은 고집한다.

높은 층의 그림 같은 뷰

많은 기업의 사장실을 가 본 경험을 더듬어 보면 아래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전망이 펼쳐진다. 가슴이 탁 트이고 머리가 개운해질 정도다. 왜 회장실이나 사장실은 맨 꼭대기에 있을까? 이렇게 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는데 다들 똑같이 하고 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가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한 건 이런 현상이 생각만큼 그리 오래된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 안의 본성이 하게 하는 것이라면 대형 빌딩이 등장할 때부터 이런 현상이 있어야 하는데 대형 빌딩이 출현한 지 한참 후까지도 이런 현상은 없었다. 이유는 하나,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이 때의 사장실은 낮은 층의 중앙에 있었고 넓었다. 사장실이 하늘 높이 올라가게 된 건 1800년대 중반 미국의 엘리샤 오티스가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내면서부터다(엘리베이터라는 단어 자체가 오티스가 만든 브랜드다). 특히 1931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 들어선 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67개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한 열망이 본격화됐다. 걸어서 올라가야 했던 달동네가 재개발로 도로를 갖춘 전망 좋은 곳이 되면 더 이상 달동네가 아니듯, 높은 층의 가치가 확 높아졌다.

‘높은 곳’을 향한 우리의 열망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흔적을 볼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은 산꼭대기, 그것도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있고, 신탁을 받는 곳이었다는 델포이 신전은 높은 산 위에 있다. 유럽에 산재한 기독교의 수도원이나 우리나라의 유명 사찰들도 마찬가지다. 신이 있는 하늘과 가까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집트처럼 높은 곳을 찾을 수 없는 평평한 곳이면 신의 목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사막 한가운데가 그런 곳이 됐다. 이런 높은 곳은 높은 분과 만나는 곳이라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 갈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있는 존재=높은 분’이라는 생각은 인간 사회에도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렸다. 예를 들어 신의 대리인이자 지상의 신인 왕은 항상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됐다. 중국의 황제는 워낙 높은 곳에 있어 저 아래에 있는 신하들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황제의 말을 스피커처럼 크게 복창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조선의 왕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가 앉아 있는 용상 역시 신하들이 우러르는 높이에 있었다. 유럽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1428년 포르투갈 왕의 연회에 참석한 사람이 쓴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왕의 식탁은…(중략)… 3~4m 높이의 단 위에 있었고, 더구나 식탁의 중앙에 있는 왕의 자리는 주변보다 15cm 정도 높았으며 그 위로 황금빛 차양이 씌워져 있었다.’ 비슷한 시기인 15세기 말 프랑스 샤를 7세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그는 식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가 말할 때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로이 스트롱, [권력자들의 만찬], 넥서스북스, 2005년). 왕이 식사하는 곳이 높지 않으니 신하들이 높이를 낮췄던 것이다. 당시 유럽의 궁전에서는 왕이 식사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일종의 특권이었다. 당연히 왕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는 곳이 좋은 곳이었고 서열에 따라 배치됐다. 지금도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식탁의 자리 배치는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의 가장 비싼 호텔 스위트룸, 펜트하우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1801). 그림과 달리 나폴레옹은 백마가 아닌 노새를 타고 현지 주민이 길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고 한다.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일까?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호텔 스위트룸과 펜트하우스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비싼 곳이다. 올림픽에서 가장 잘한 선수 세 명이 메달을 받는 시상대 또한 절대 평평하지 않다. 금메달리스트가 가장 높은 단에 서고 은메달이 다음, 동메달은 가장 낮은 단에 선다. 이 뿌리 깊은 높이 선호 성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요즘 학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일반 진화 가설에 따르면 탁 트인 전망을 가진 높은 곳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 어디서 누가 오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에 뒤쪽에 커다란 산이 병풍처럼 자리하고 앞으로 강이 흐르면 금상첨화였다. 방어 기지로는 물론 농사를 짓기에도 좋은 최적의 생존 터전이었다. 우리나라의 풍수지리 또한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높은 곳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농경문화는 속성상 하늘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하늘 숭배 성향이 더해진 것이다. 특히 권력자들이 이 성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높은 분’이라는 상징을 자신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높은 하늘에 있는 존재=전지전능’이라는 개념을 통해 높이를 능력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유럽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기마상 조각이나 그림에는 이런 상징이 가득하다. 기마상의 주인공은 대개 영토를 넓힌 왕이나 장군들인데, 유럽의 군주들은 이런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 그 자체로 훌륭한 통치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가질 수 없는 귀족의 전유물인 말 위에 높이 앉아 세상을 호령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러르는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예전 참고서 표지에 등장해 프랑스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그림이 좋은 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0년 그린 이 그림 속 나폴레옹은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데, 백마는 용을 연상케 하고, 아이돌처럼 젊고 그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 하나 없는 표정은 신을 닮았다. 그들이 가야 할 저 높은 곳을 가리키는 손까지, 모두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다. 높은 분만 입을 수 있는 붉은 망토 또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보여준다.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사실은 다르다. 나폴레옹은 백마가 아니라 노새를 타고 넘었다고 한다. 말은 평평한 곳에서 잘 달리지만 이런 곳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진두지휘했던 것도 아니었다. 현지 주민이 길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사실대로 그리면 영웅답지 않으니, 영웅 이미지에 맞게 그린 것이다.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든 높이 선호 성향을 활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숙사를 쓰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넓이인데도 저층에 사는 학생들과 고층에 사는 학생들의 만족도가 달랐다. 저층 학생들은 자신들의 방이 너무 좁고 사생활 보장이 안 되는 곳이라고 여겼다. 같은 크기인데도 고층 학생들은 자신들의 방이 넓고 조용하고 밝다고 느꼈다. 요즘 전망 좋은 아파트 가격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리적인 높이만 선호 대상이 아니다. 직장인들의 새해 소망 1위가 언제나 승진인 건 더 높은 높이를 확보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회장실과 사장실이 맨 꼭대기에 있는 것도 이 연장 선상에 있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하늘 같은 분이기에 하늘이 그렇듯 가장 높은 곳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하늘 같은 곳에 있는 사장실은 어떤 곳일까? 천국일까? 아래에서 보면 그럴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사업이 잘 될 때에야 사실 천국이 따로 없고 구름 위를 떠다니는 신선이 부럽지 않지만, 사업이 안 될 때나 요즘처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일 때는 지옥이 따로 없다. 이곳은 아래에서 생각하던 것과 다른 게 많다. 높은 곳이라 햇빛을 빨리 받고 많이 받을 수 있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추위 또한 빨리 오고 자주 올 뿐만 아니라 강하게 온다. 바람은 아래보다 훨씬 거칠어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곳은 좁고 올라가는 길의 뒤쪽은 대개 깎아지른 절벽이기 쉽다. 삐끗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보다 좀 아래쪽에 있는 임원실은 괜찮을까? 연말연시에 임원이 된 이들은 피부로 느낄 게 많을 것이다. 일단 높은 곳에 오르면 좋은 게 많다. 연봉이 오르고 명함에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직함이 명시된다. 잡다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며 무엇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량권이 늘어나니 가슴 뿌듯한 순간이 제법 될 것이다. 대체로 독방을 쓸 수 있기에 회전의자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드디어 이 자리에 앉았구나’ 하는 만족감을 혼자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위험도는 높아진다. 높이에 취하면 큰 코 다칠 일이 많다. 일단, 구름 위로 올라서는 순간 넓은 전망 외에는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이 부서의 터줏대감이라 내가 다 안다’고 하는 순간 발을 헛디딜 가능성이 커진다. 지상의 직원들은 구름 위로 올라간 임원을 예전처럼 대하지 않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제 막 ‘승천’한 이들은 ‘내가 이겼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다 보니 불협화음이 일어나기 쉽다. 조사에 따르면 이직자의 83%가 이제 막 승진해 단위 조직을 이끄는 신임 상사와의 관계가 껄끄러워 회사를 떠난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는 식으로 하다 보니 ‘절이 싫어진 중’이 떠나는 것이다. 주로 인재들이 떠나다 보니 미국과 유럽 회사들은 이런 상사에게 책임을 가혹하게 묻는다.

높이에 취하면 큰 코 다칠 일 많아


▎페이스북이 2015년 3월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세운 신사옥은 축구장 7개 넓이의 단층 사무실로 이뤄져 있다. ‘높이’가 협업을 느리게 하는 벽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더 잘 알아’ ‘내가 승자다’라는 생각과 함께 오는 게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예전에야 따르는 사람들이 아는 것도 적었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기에 그래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이기에,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 필요도 없다. 어떤 일에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빨리 알아내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고, 그를 적시에 적절하게 투입해 그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리더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자신이 나서야 할 때는 스스럼 없이 나서야 하지만, 리더 본연의 임무는 ‘나를 따르라’고 하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 되고 있다.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은 당대에 영토를 상당히 넓혔지만 전쟁에 나가 싸운 적이 없다. 김종서나 최윤덕 같은 장군에게 맡겼다.

모른다고 하면 ‘그것도 몰라?’ 하는 눈길이 무서워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할까 두려워서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순간 위기가 시작된다. 능력이 없다는 걸 들키기 싫은 마음에 일을 밀어 부치다 보니 제대로 될 리 없다. 눈치 빠른 부하들이 몸은 따르는 척 하면서 마음의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상황은 악화된다. 결국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원맨쇼 같은 나날을 보내며 혼자 파김치가 된다. 에너지가 바닥나는 번아웃을 당한 후 결국 조직에서도 아웃되고 만다. 코너에 몰리다 보니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책임을 회피하거나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모면하려는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데 이거야말로 자살골이다. 수시로 회의를 열어 “우리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민주주의를 표방한 책임회피도 마찬가지다.

높이를 가졌으면 그 높이에 맞는 능력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구름 위로 올랐으면 구름 타는 법을 알아야 한다. 왜 요즘 탁월한 CEO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나는 모른다’이겠는가? CEO라고 다 알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모르기에 배우려는 것이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다. 리더 역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이유다.

미국의 페이스북은 2015년 3월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세운 신사옥을 높은 건물이 아니라 축구장 7개 넓이의 단층 사무실로 하고, 벽은 물론 사장실을 없앴다.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다른 직원들처럼 넓은 책상 하나를 쓴다. ‘높이’가 협업을 느리게 하는 벽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에서다. MIT대의 연구에 따르면 사무실 층수가 많을수록 직원들 간 협업이 줄어든다.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은 이렇듯 권위주의가 되기 쉬운 높이를 없애면서 수평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축구장 7개 넓이의 단층 사무실 만든 페이스북

그러면 높이는 필요 없는 걸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배 앞을 보면 멀미가 나지만 몇 백 km 앞을 보면 바다는 잔잔하다.” 높은 곳은 내리 누르거나 과시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멀리 있는 것을 보라는 것이고, 조직이 움직여야 할 때 구성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진두지휘하는 걸 구성원 모두가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것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높은 단상에 서는 것처럼 말이다.

잡다한 업무에서 해방되는 건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하라는 의미이고(그런데도 굳이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다. 사장이 임원 일을 하면 임원은 부장 일을 하게 된다. 부장은? 과장 일을 하게 된다. 하늘이 노래질 일이 벌어진다), 독방을 주는 건 숲에서 나와야 숲을 볼 수 있듯 조직에서 벗어나 조직을 보라는 것이다. 무리 성향에서 벗어나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지난 연말연시 인사에서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된 분들에게 축하를 드린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는 천변만화의 자리, 삐끗하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인 곳이지만 잘만 하면 천국이 부럽지 않은 세계에 들어서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렇다. 이제 본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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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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