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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창업 활성화 해외에선 어떻게] 정부가 밀고 벤처캐피털이 끌고, 스타트업은 해외 시장 개척하고 

 

이스라엘, 군 정보기술 창업에 활용하기도… 중국의 AI 투자 세계 48% 차지

▎이스라엘 군의 보안 전담 8200 부대는 이스라엘 보한 기술 창업의 요람이기도 하다. / 사진:타임스오브이스라엘 제공
“사이버 보안과 인공지능(AI)이 10년 후 첨단기술 시장을 이끌 것이다. 이 분야에서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풍부한 서비스와 응용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하렐 이파르 아마존웹서비스(AWS) 이스라엘 지사장은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구축에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아마존을 비롯해 삼성전자·구글·애플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은 이스라엘에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기술 협력에 나서고 있다. R&D 센터는 이스라엘 기업 인수·합병(M&A)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도 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대기업, 유망 스타트업 잇따라 인수


최근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을 향한 글로벌 대기업들의 러브콜은 뜨겁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이스라엘 카메라 전문 스타트업 ‘코어포토닉스’를 1억5500만 달러(약 1740억원)에 사들였다. 코어포토닉스는 스마트폰 카메라 줌 기술에 경쟁력 있는 회사로, 갤럭시노트8 이후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듀얼카메라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올 초 이스라엘 반도체 스타트업 ‘윌롯’의 3000만 달러 규모 투자에 AWS, 에이버리 데니슨 등과 함께 참여했다. 윌롯은 사물인터넷(IoT) 애플리케이션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배터리 없는 블루투스의 소형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회사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이스라엘의 AI 기반 음성인식 시스템 스타트업 ‘오디오버스트’와 협력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2015년 설립돼 지난해 4월 삼성전자로부터 460만 달러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구글은 이스라엘 클라우드 하이브리드 솔루션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벨로스트라타’를 인수했고, 아마존은 클라우드 컴퓨팅 백업 서비스 전문 스타트업 ‘클라우드인듀어’를 2억 달러에 인수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원래 스타트업 강국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최근 들어 AI·보안 등 소프트웨어, 카메라·렌즈 하드웨어 기술 기업 매각이 부쩍 늘었다. 온·오프라인 경계를 허무는 데 필요한 기술들이다. 2017년 인텔은 자율주행차의 카메라·레이더, 데이터 분석 기술 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모빌아이’를 153억 달러(약 17조2000억원)에 인수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삼성SDI 등 국내 유력 대기업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국내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높은 기술력의 기업들을 내가 안 사면 다른 기업에 뺏기고 만다는 심리가 글로벌 기업들에게 깔려 있다”며 “거액을 주더라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차의 보안 기술을 개발하는 이스라엘 스타트업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코드라인이 100만개가 넘어 사이버 공격에 노출되기 쉬운데, 이 분야에서 이스라엘 보안 스타트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이스라엘 사이버보안 스타트업 시그니아를 2억5000만 달러(약 2819억원)에 인수하는 등 기업가치도 높다. CB인사이츠에 따르면 2013~2017년 세계 사이버 보안 거래 시장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AI·보안·센서·라이더 등 최근에 주목 받는 기술 창업은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보다는 대기업 R&D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이런 실험실 창업에 강한 까닭은 정부의 기술 지원과 벤처캐피털의 안정적인 자금 지원, 미국 등 충분한 배후 수요 확보 등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란·팔레스타인 등 인근 국가들과의 갈등 속에 1990년대 경제체제를 기술 중심의 창업 국가로 전환했다. 이스라엘혁신청·요즈마펀드 등 정부 및 준정부기관이 이런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이스라엘혁신청의 기술 인큐베이터 시스템은 정부와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의 R&D 비용을 각각 85%, 15%씩 부담하는 프로그램이다.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고위험 R&D 투자에 정부가 직접 참여해 기술 기업의 성장을 돕는다. 스타트업은 안심하고 2년 이상 기술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또 ‘대학 내 기술연구소(OTT, Office Of Technology Transfer)’를 통해 폭넓은 산학 협력을 펼치고 있다. 한국도 이스라엘 모델을 참고해 올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대학원생 창업팀 발굴, 창업지원 전문인력, 연구개발비 패키지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군이 스타트업 아이템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이버 정보부대 ‘8200 유닛’에서 5년 이상 복무하고 내부 경연대회 수상 경력이 있으면 군에서 얻은 지식을 창업에 사용할 수 있다. 군에서 50만 달러의 창업지원금을 연결해주는 한편 제대 4개월 전부터 스타트업 교육, 박사급 인력 지원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미국 실리콘밸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술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한편,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다.

중국도 AI 등 첨단 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이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발표한 2017 ICT 기술 수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1.4년으로 좁힐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AI가 신기술 체제 구축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하고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쳤다. 중국 공산당은 정부 지원 기금을 통해 중국 동부에 혁신 도시 및 공동 연구시설 구축, AI스타트업에 임대료 지원 등의 지원을 했다. 미국의 기술 전문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2017년 중국 AI 스타트업의 융자액은 전 세계의 48%를 차지해 미국(38%)보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I 설계에 필요한 빅데이터 구축을 위해 정보 수집과 관련한 대부분의 규제를 풀었다. 더버지는 중국이 AI 영역에서 축적한 데이터 양이 미국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도 지난 2~3년 전부터 기술 스타트업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의 유니콘은 13개로 미국·중국·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많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꼽혀온 인도는 스마트폰 보급 증가와 통신망 확대 등으로 제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창업 활성화를 통한 경제 성장을 위해 ‘스타트업 인디아’ 정책을 가동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 14만6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이 프로그램에 등록시켜 펀딩 및 인센티브, 인큐베이션 등 지원에 나서고 있다. 3년 간 법인세 면제, 특허 등록세 80% 감면 등의 혜택도 준다. 특히 더 좋은 스타트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별로 스타트업 환경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등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전체 36개 주 가운데 30개 주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기술 개발 가능한 생태계 조성해야

벤처 1세대로 티켓몬스터·첫눈 등 스타트업을 잇따라 성공시킨 노정석 아리나 대표는 “최근 트렌드는 AI 등으로 오프라인 생태계에 온라인을 접목하는 기술 창업이며, 패스트팔로워보다는 프론티어의 성공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도 대기업 R&D에 의존하기보다는 폭넓은 기술 개발이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기부에 따르면 기술집약형 창업은 일반 창업에 비해 평균 고용 인원과 5년 생존률이 3배가량 높은 등 고용창출 효과도 큰 것으로 조사됐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474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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