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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기자의 ‘라이징 스타트업’(42) 필더세임] 소프트 센서 상용화에 도전장 

 

지난해 9월 ‘비욘드 팁스’에서 최우수상… 소프트 센서 장착한 가상현실(VR)용 장갑 선보여

▎지난 2월 중순 유니스트에서 만난 배준범 교수가 소프트 센서의 특징과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필더세임 제공
양쪽을 잡고 늘려봤다. 마치 젤리처럼 주욱 늘어난다. 실제로 만져보면 센서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리콘과 전도성 액체금속(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금속)을 이용해 만든 ‘소프트 센서’는 기존 딱딱한 센서와 전혀 다르다. 소프트 센서의 특징 때문에 쓰임새는 한계가 없다. VR 기기, 차량 등 웨어러블 기기부터 사물인터넷(IoT) 기기까지 센서가 필요한 모든 물체에 부착해 움직임이나 힘을 측정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소프트 센서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이 소프트 센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교수가 있다. 배준범(38)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기계공학과)가 주인공이다. 그는 2017년 7월 소프트 센서와 관련된 사업을 펼치는 ‘필더세임(Feel the Same)’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창업가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유니스트에서 만난 배 교수는 “우리의 기술력은 자체 개발한 3D 프린팅으로 좋은 품질의 소프트 센서를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며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 참가했는데, 전문가들이 좋은 평가를 했다”고 자랑했다.

필더세임과 배 교수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소프트 센서의 상용화를 가능하게 한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고, 딱딱한 센서로는 도전하기 어려운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소프트 센서의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안정적인 제작이 어렵다는 것. 소프트 센서를 상용화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좋은 성능과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에 성공한 기업이 없는 상황이다. 배 교수는 자체 개발한 프린팅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자체 3D 프린팅 기술로 센서 제작 난제 해결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 마련된 필더세임 부스에서 관람객이 소프트 센서를 적용한 VR용 장갑을 시연하고 있다. / 사진:필더세임 제공
그의 전공은 외골격 로봇 개발이다.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박사를 준비하면서 착용형 로봇, 즉 웨어러블 로봇 분야를 연구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내 전공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아이언맨’을 만든다고 이야기했다”며 웃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외골격 로봇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웨어러블 로봇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웨어러블이라고 해도 시제품을 착용하면 생각보다 많이 불편하다”면서 “웨어러블 로봇은 딱딱하고 무겁고, 사람의 관절 움직임과 맞추기 어렵다는 점이 한계”라고 분석했다. 배 교수가 소프트 센서로 눈을 돌린 이유다.

소프트 센서는 이름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다. 어떤 형태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굴곡이 많은 신체 부위에 부착해도 사람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소프트 센서가 미래 성장성이 큰 분야로 꼽히고, 세계 각국에서 소프트 센서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배경이다. “2008년 하버드대에서 소프트 센서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소개하면서 이 재료를 이용한 소프트 센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배 교수는 설명했다.

그 역시 소프트 센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기 때문에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소프트 센서를 제작했지만, 제품마다 품질이 균일하지 않았고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배 교수는 “소프트 센서 제작에 좋은 방법을 찾았다고 직접 도전해보면 성공보다 실패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면서 “소프트 센서를 상용화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3D 프린팅.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여기에서도 수많은 실패작과 성공작이 나왔다. 배 교수는 “우리는 소프트 센서를 상용화할 수 있는 프린팅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필더세임은 소프트 센서를 제작하는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착용형 시스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에 이와 관련된 16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배 교수가 창업을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나 상용화 등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필더세임이라는 학내 창업에 도전한 것은 유니스트와 MOU를 맺고 2017년 1월 학내에 자리를 잡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기반의 액셀러레이터 선보엔젤파트너스 덕분이다. 선보엔젤은 유니스트에서 특허 관련 성과가 좋은 교수와 미팅을 이어나갔다. 사업 모델이 괜찮은 이를 찾아 창업을 권하고 액셀러레이팅을 하기 위해서다. 소프트 센서 전문가로 꼽히는 배 교수를 찾아온 것은 당연했다. 선보엔젤은 미팅 이후 창업을 계속 권유했다. 배 교수는 “창업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니 선보엔젤 관계자의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고, 계속 거리를 뒀다”면서 웃었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배 교수는 울산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창업 교육을 받았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창업에 도전했다. 2017년 7월 법인을 설립하게 됐다.

한국·중국·미국 등에서 16개 특허를 출원

선보엔젤의 선택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창업 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필더세임은 벌써 21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17년 말에는 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 창업지원)에 선정됐다. 그는 “TIPS에 선정된 후 많은 벤처캐피털에서 나를 찾아왔고, 홍보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는 중기벤처부와 공학한림원이 주최한 ‘비욘드 팁스(Beyond TIPS)’에 참가해 최우수상도 받았다. 비욘드 팁스는 팁스에 선정된 우수 창업팀이 후속투자를 유치하고, 대기업과의 기술제휴나 인수·합병(M&A) 등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행사다. 지난해 연말에 열린 ‘팁스 그랜드 컨벤션(비욘드 팁스에서 수상한 스타트업들의 경진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면서 기술력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배 교수는 “매출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2등을 했다는 것은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요즘 소프트 센서의 상용화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VR 체험 기기를 만드는 기업과 시뮬레이션 관련 업체에서 소프트 센서가 장착된 장갑을 이용하려고 테스트 중”이라며 “그동안 VR 관련 게임이나 체험기기는 손 대신 조이스틱 등을 이용했는데, 소프트 센서를 적용한 장갑을 끼면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몰입감과 체험의 질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소프트 센서가 적용된 장갑을 이용해 재활 관련 연구를 부산대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1474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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