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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편법 줄타기하는 담배 마케팅] 법 어겨가며 체험 판촉까지 강행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사전예약 받고 기기 대여는 기본… “담배 제품 중심 금연정책 펴야” 지적

▎정부는 담배회사 마케팅 등으로 주춤한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비가격 금연정책’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 사진:연합뉴스
“새로 나온 전자담배입니다, 이용해 보시고 사전예약하세요.” 급성장 중인 전자담배 시장에서 담배회사들의 마케팅 전쟁이 ‘치열함’을 넘어 ‘대담함’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전자담배 시장 1위 업체인 쥴랩스코리아가 ‘쥴’의 국내 판매에 나서면서 국내 주요 담배회사가 전자담배 시장 수성을 위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쥴과 같은 폐쇄형 전자담배를 내놓은 KT&G는 전자담배 사용을 권하는 ‘실사용 판촉’까지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증진법에서 담배에 관한 체험 등 판촉을 금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여기에 한국필립모리스와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는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를 대여해주는 ‘체험형’ 마케팅까지 진행하고 있다.

담배에 관한 체험 등 판촉 금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 규모는 2017년 7900만갑에서 지난해 3억3200만갑으로 1년 새 4배 넘는 수준으로 커졌다. 2017년 6월 한국필립모리스가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선보인 후 BAT코리아와 KT&G가 각각 글로와 릴을 내놓으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 기기 판매를 늘렸기 때문이다. 담배에 대해 원칙적으로 금지된 할인 판매도 전자담배 기기로 한정돼 이뤄졌다. 이들 담배회사 3사가 출시한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만 아이코스·아이코스멀티·아이코스 3·릴·릴플러스·릴하이브리드·글로·글로2 등 8종에 이른다. 특히 궐련형 전자담배는 신종 담배인 데도 금연 수단이자 덜 해로운 담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2017년 2.2%였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9.6%로 뛰었다.

최근 들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가 진행하는 전자담배 마케팅 규모는 더욱 커지고 대담해지고 있다. 미국 전자담배 시장의 75%를 차지한 쥴이 5월 24일 국내에 진출하면서 기존 담배회사의 최대 경쟁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쥴은 니코틴이 함유된 액상형 카트리지를 전용 기기에 꽂아 액상 가열 때 나오는 연무를 흡입할 수 있게 만든 이른바 폐쇄형 전자담배다. 쥴랩스는 쥴에 들어가는 니코틴 액상을 사용자가 주입하는 대신 기존의 궐련 담배 한 갑 분량에 해당하는 카트리지를 소모 후 갈아 끼울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편의성을 개선했다. 담배 업계 관계자는 “국내 궐련형 담배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국내 주요 담배회사는 전자담배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쥴에 대응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쥴이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쥴에 대응한 다른 담배회사의 마케팅이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흡연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시 2년 만에 미국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쥴에 대응해 폐쇄형 전자담배를 가장 먼저 내놓은 KT&G의 선점 전략이 대표적이다. KT&G는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시내 흡연 장소를 돌며 자사의 폐쇄형 전자담배 ‘릴베이퍼’를 사용해 볼 수 있게 하는 마케팅을 편 것으로 확인됐다. 마케팅을 통해 릴베이퍼 사전예약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KT&G의 이 같은 판촉은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에서 정한 담배의 광고 제한 및 담배의 체험 등 판매촉진을 금지한 규정에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건강증진법에서 허용하는 광고 외 모든 담배 판촉은 불법”이라면서 “KT&G가 실사용 마케팅을 통한 판촉을 했다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흡연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 담배회사는 담배 사업법에서 규정한 ‘담배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한다’는 점을 이용해 기기 판촉을 진행하고 있다. 전자담배 기기는 담배가 아니기 때문에 현행법에서 판촉을 할 수 있다. 이에 담배회사 영업사원은 흡연자들에게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 무료 사용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기기에 들어가는 연초는 편의점에서 바로 구매하도록 안내하거나, 영업사원이 자신의 연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담배 판촉을 제한한 국민건강증진법을 피하면서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가 전자담배 대여 마케팅을 진행한 지난 1분기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점유율은 지난해보다 2.2%포인트 늘어난 11.8%를 기록했다.

일각에선 2017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담배회사의 전자담배 마케팅이 이른바 ‘그레이마켓’으로 분류되는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의 성장까지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2009년 설립된 국내 전자담배 제조 업체 관계자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시장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2017년부터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도 늘어났다”면서 “정부가 금연정책의 일환으로 담배 값을 인상했을 때 액상형 전자담배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다시 궐련형 담배로 넘어갔지만, 국내 담배회사들이 궐련형 전자담배로 뛰어들면서 전자담배가 자체가 다시 주목받았고, 덩달아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이 급증한 지난해 액상형 전자담배 액상 수입 금액 역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액상형 전자담배용 액상 수입 금액은 1547만 달러(약 184억9000만원)로 2017년 698만 달러(약 83억4000만원)와 비교해 2배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금연정책 답보에 흡연율 목표치 수정

담배회사의 마케팅 강화로 정부의 금연정책은 답보상태다. 지난해 궐련 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를 포함한 전체 담배 판매량은 1.5% 줄었지만, 전자담배 이용자는 늘었다. 특히 청소년 흡연율 역시 2016년(6.3%)을 저점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청소년 흡연율은 2017년 6.4%에서 2018년 6,7%로 재차 증가했다. 정부가 그레이마켓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 판매 통계에 포함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금연정책 효과는 더욱 적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건복지부는 5월 21일 ‘금연종합대책’을 내고 전자담배 기기에도 경고 그림을 부착, 담배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담배회사의 마케팅을 억제하고 금연구역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다만 2016년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서 제시한 내년도 성인 남성 흡연율 목표치(29%) 달성은 2022년으로 미뤘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담배를 판매하는 소매점의 72%가 내부에 설치한 담배 광고를 외부로 노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금연정책이 흡연자가 아닌 담배 제품을 중심으로 나아가야 담배회사의 마케팅에 따른 흡연 조장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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