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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저축액 늘리는 법 

 

인간의 본능은 미래보다 현실에 충실... 신용카드 쓰지 말고 강제저축 수단 활용을

▎사진:© gettyimagesbank
한 해에 뱀에 물려 죽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이들이 더 많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동차 사고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1~2014년 동안 9명만 뱀에 물려 사망했다고 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평균으로는 3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자동차 사고로는 2013년 한 해에만 약 5000명이 사망했다(경찰청). 이번에는 질문을 바꿔 보자. 지금 당신 옆에 뱀과 자동차가 있다. 당신은 어느 것이 무서운가. 당연히 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이는 매우 잘못된 반응이다. 뱀에 물려 죽는 것보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에서 뱀으로 죽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움에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뱀에 대한 두려움은 지역·민족·국가·나이를 초월해 전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뱀과 자동차 그리고 신용카드

인간의 마음을 진화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진화심리학에서는 뱀에 대한 두려움을 현대인의 유전자 속에 아직도 사바나 초원을 달리던 원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단백질 섭취를 위한 사냥을 하거나 에너지원인 당분을 확보하기 위해 과일을 찾던 원시인의 입장에서 뱀만큼 치명적인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독이 있는 뱀에 물리면 생존을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원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뱀을 보는 순간, 신경을 쭈뼛 세워 경계심을 갖추고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원시인에게 중요한 건 내일이 아니라 현재였다. 언제 사냥에 성공할지, 언제 어디에서 과즙이 풍부한 과일을 만날지 알 수 없었다. 사냥에 성공한다면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 두어야 했다. 과즙의 당분도 만끽할 수 있을 때, 오늘 최대한 씹고 마셔야 했다. 내일 굶을 수도 있으므로 오늘의 풍족한 영양분을 체내에 지방으로 축적했다. 지방이 곧 저축이었던 셈이다.

유전자 속에는 구석기인의 마음이 있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때와는 완전 다르다. 예를 들어 선진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굶주림보다 오히려 비만이 더 문제다. 굶주림에 대한 신체적 대비책이었던 지방 과다가 오늘날에는 오히려 우리의 건강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돈과 관련된 신용카드, 주식시장, 금융시스템은 원시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인간의 마음에는 이런 제도가 낯설고 익숙치 않을 것일 수 있다. 미국의 유명 투자칼럼니스트 제이슨 츠바이크는 주식 거래를 예를 들어 이렇게 적고 있다. “인류의 모든 역사를 1.6㎞ 길이의 두루마리에 기록한다고 상상할 경우, 최초의 주식 거래는 뒤쪽 끝에서 약 10㎝ 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의 아이디어가 옳다면-필자는 옳다고 여기는 편에 속하지만-먼저 해야 할 것은 투자나 저축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투자나 저축은 현재의 만족을 미래로 연기하는 행동이다. 투자의 초점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한다. 인간의 이런 본성을 감안해 행태재무학자들은 저축액(또는 투자액)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소비와 관련해서는 신용카드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투자와 정반대의 논리를 지닌다. 신용카드는 미래의 수입을 담보로 현재를 소비하는 수단이다. 현금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플라스틱 화폐를 쓸 때, 돈에 대한 실감(實感)이 떨어져 씀씀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신용카드가 꼭 필요하다면 가급적 집안에 모셔 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게 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신용카드를 소지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이들은 다음의 조언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려는 순간에는 물건 가격만큼 돈을 현금인출기에서 뽑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래서 사고 싶다면? 그때는 사도 좋다(클라우디아 해먼드 작가 겸 심리학자).’

또 다른 권고는 자동이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돈이란 손에 닿으면 휘발된다. 휘발을 막기 위한 방어책 중 하나가 자동이체이다. 자동이체를 활용하면 선저축 후소비를 생활화할 수 있다. 돈을 쓸 때는 생생하게 느끼도록 현금으로 쓰고, 저축할 때는 저축한다는 느낌이 나지 않도록 자동이체 시키라는 것이다.

사이렌의 유혹을 이겨낸 오디세우스의 전략도 배울 만하다. 사이렌은 반은 여성이고, 반은 새인 바다의 마녀. 사이렌의 매혹적인 노랫소리를 들은 뱃사람은 넋을 빼앗기고 배는 좌초됐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반대에도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는 부하들에게는 밀랍으로 자신들의 귀를 막고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어두라고 명령했다. 자신이 어떤 행동과 말을 하더라도 절대 밧줄을 풀지 말라는 다짐도 해 놓았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안전하게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를 밧줄로 묶은 것처럼 저축을 강제하는 것이 자발적인 저축보다 효과적이다. 강제저축이란 목표 금액이나 일정 시점에 이를 때까지 돈을 인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필리핀 주민 대상 실험 결과, 저축 방법도 금융회사에 직접 가기, 자동이체하기, 집에 있는 저금통에 넣기 중에서 자동이체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다시 말해 자동이체를 통해 강제저축을 하는 것이 저축액을 늘리는 데 가장 위력한 방법이다.

현재 우리가 강제저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은 주로 세제혜택이 주어지는 것들이다. 연금저축계좌와 IRP(개인퇴직계좌), ISA(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 청약통장, 변액보험 등이다. 이들 상품은 중간에 해지하면 가산세 등 세제상의 강력한 벌칙 조항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일정기간 반드시 유지해야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강제저축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이렌의 유혹과 강제저축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강제저축 효과가 있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면, 매월 일정액이 대출 원금과 이자로 나가게 된다. 여기서 원금이 바로 강제 저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출금 상환 이후 부동산의 가격이 매입 시점보다는 올라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인간의 본능은 미래보다 현실에 충실하다. 인간은 현재 초점 편향(present focus bias)을 가진 존재다. 현재에는 프리미엄을, 미래에는 할인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현재의 미래가 미래의 현재가 된다. 우리는 지금도 현재에 살지만 미래에도 현재를 살게 될 것이다. 미래의 현재를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가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삶이란 아예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환경이 이렇다면 인간의 본능을 이해하고 목적의식적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의 방법이 될 것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리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491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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