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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18) ‘큰 소리 전문가’ 대처하기] ‘잘못 건드리면 큰 코 다친다’ 인식 심어줘라 

 

전격적인 선제 공격으로 제압 시도할 만… 감정적 언행은 절대 자제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1962년 10월, 쿠바 상공을 정찰한 정찰기가 찍은 사진 때문에 미국 백악관이 발칵 뒤집혔다. 턱 밑이라고 할 수 있는 쿠바에 당시 소련제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면 불과 5분 만에 미국 동부 거대 도시들이 불바다가 될 수 있었다. 완공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0~14일 정도. 지금이야 적대국이라 해도 서로 연락할 수 있지만 당시엔 그런 통로가 거의 막혀 있었던 시절이다.

기지 완공은 생각할수록 끔찍한 미래였다.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 같은 쿠바의 카스트로 사회주의 정부에 꼼짝 없이 덜미를 잡히는 건 물론, 그 뒤에 있는 소련에 휘둘릴 게 뻔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심각한 냉전 중이었고, 미국과 쿠바는 전쟁 중이었다. 바로 1년 전인 1961년 4월, 미국은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의 혁명정부를 전복하려고 병력을 보냈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다.

커티스 르메이 “망할 케네디 가문 놈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국가안보회의를 열고 있다.
즉시 대책회의가 열렸다. 격렬한 토론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니 즉시 공중폭격을 해야 한다는 이들과 잘못하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으니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을 쓰자는 온건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일각이 급한 상황인데 케네디 대통령은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회의를 끝냈다. 1년 전, 피그만 공격을 서두르다 실패했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당장 공중폭격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에게 케네디의 그런 행동은 우유부단하게만 보였다.

당시 상황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영화에는 회의장을 나오는 강경파들의 불만이 나온다. “난 나약한 게 가장 두려워”라면서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강경파들에게 신중함은 나약함의 증거다. “빨갱이들 때려잡을 수 있게 당장 명령을 내리십시오. 그들은 아무 짓도 못할 겁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의 불만은 좀 더 셌다. “망할 케네디 가문 놈들!”

알다시피 이 일촉즉발 상황을 해결한 것은 이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아니었다. 좀 더 신중했던 이들이 간접적인 실력 대응(해상봉쇄)과 긴박한 물밑 접촉을 통해 3차 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었던 사태를 막아냈다.

어느 조직에나 이런 상황이 생기면 다양한 의견이 생겨나고 대체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강경파라고 모두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들은 대개 상황의 한 면만 보는 성향이 있다. 상황을 극단으로 해석하고 해결도 극단으로 하려 한다. 더구나 이들 중에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자기 이익(권력욕)을 극대화하려는 이들까지 있어 사태를 가파르게 만든다. 그래야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기에 상황을 한쪽으로 몬다. 일도양단을 요구한다. 상대를 무조건 악으로 보는 그들에게 타협이란 겁쟁이들이나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는 적극적 성향과 공격적 성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비슷한 듯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둘 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주장도 받아들인다. 자기 의견에 좀 더 확신을 갖고 있지만 남의 의견이 무조건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공격적인 이들은 반대다. 다른 사람은 틀렸고 자기만 옳다고 한다. 자기주장만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이들을 능동적인 사람으로, 공격적인 이들을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사람으로 본다. 공격적인 성향이 수동적이라고? 그렇다. 이유가 있다. 방어적이란 쉽게 말해 상황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는 것이다. 적과 아군의 대치 상황에서는 밀리거나 지면 안 된다.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미리 공격한다. 공격성을 수동적으로 보는 이유다. 이들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 자신의 약한 존재감을 과시를 통해 유지해오다 보니,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타인을 누르고 지배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 한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고, 강한 존재로 인정 받고자 하는 행동을 공격성으로 표출한다. 자신을 성장시켜 존재감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작게 만들어 자신을 입증하려 한다. 지위에 대한 열망이 크고 독선이 되는 것도 이런 우월감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의견에 대한 반대도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제거한다. 설득보다 누르고 강요하는 방식이 빠르니 그렇게 한다. 힘이 있으면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처벌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의 미래만 보는 이상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완전 선 아니면 완전 악,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극단을 지향한다. 멋지게 싸우다 죽는 걸 명예로 여긴다. 자신의 숨은 불안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죽는 게 영광이라고 합리화한다. 연구에 의하면 이런 심리가 강해지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기피한다. 사실을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목소리 큰 사람 앞에서 조직은 의외로 순응적


▎ABC 드라마 [지정 생존자]에서 대통령 대행인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 분)은 사사건건 큰 소리를 내던 4성 장군을 단칼에 해임한다. / 사진 : 넷플릭스
왜 조직에서 이런 이들이 갈수록 힘을 얻는 일이 생겨날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조직은 예상 외로 순응한다. 위험하게 맞서기보다 별 일 없는 한 따르는 게 편하고, 가만 있는 게 안전하다는 생각에서다. 순응이 확대될수록 이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조직은 묵묵부답의 늪으로 빠진다. 이들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이유다. 성공률이 높은 것이다. 간혹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손을 들지만 듣지도 않는 데다 “다들 가만 있는데 왜 당신만 그러느냐”며 집중 공격을 하다 보니 버티질 못한다. 이런 사람들이 떠나면 결국 그 ‘일당’과 침묵하는 사람들만 남는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바라는, 자기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한 목소리’ 조직이 된다.

사람들이 이들을 스스로 선택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여러 리더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어떤 리더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능력이 아닌 권위적 요소를 가진 후보를 선택했다. 권위적 요소란 목소리가 크거나 외향적인 사람, 자신만만해 보이는 사람이다. 이런 태도를 능력의 결과로 보는, 그러니까 뭔가 있으니 저렇게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능력도 없으면서 큰 소리만 떵떵 치며 카리스마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끄는 리더로 뽑았다. 능력이 있는 이들은 10을 가졌어도 1을 가졌다고 할 때, 목소리 큰 사람들은 1을 가졌어도 10을 가졌다고 하니, 이들이 리더가 된 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불을 보듯 뻔해진다.

이와 달리 합리적이지 않는 줄 알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리더로 추대하는 일도 있다. 주로 이익단체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자신들이 앞으로 나서기 뭐 하니 목소리 큰 매파 골목대장을 내세우는 경우다. 이 골목대장이 말도 안 되는 걸 주장하고 내세우는 사이, 자신들이 원하는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목소리 큰 게 다 나쁜 건 아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목소리 자체에 죄가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분명한 건 목소리 크다고 다 옳은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좋은 조직을 만들려고 하거나 이런 이들에게 해를 입지 않으려면 이런 이들을 빨리 알아보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일단, 맞대응할 생각이 있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방법, 즉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게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이겨도 후유증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길 수만 있다면 ‘공공의 적’을 없앤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는 길이긴 하다.

이럴 땐 한 걸음 앞서는 전격적인 행동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선제 공격을 가해 큰 소리 치기 전에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 드라마 [지정 생존자]에서 사사건건 큰 소리를 내던 4성 장군을 우유부단한 듯하던 대통령 대행이 그 자리에서 해임시켜 버리듯 말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리 듯 큰소리 자체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선수 치기는 효과가 있다. 물론 즉흥적으로 하기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큰 소리 전문가에게 큰 소리 쳤다가 밀리면 지옥을 각오해야 하니 말이다. 사실 굳이 공격하지 않더라도 합당한 생각과 견고한 영향력을 가지면 의외로 쉽게 덤비지 않고 뒷담화를 하는 편이다. 겁이 많기 때문이다. 공개석상에서 이들에게 반대하는 건 앞에서 말했듯 적이 되는 지름길이다. 정 안 되겠다 싶을 땐 일대 일 대면을 시도하는 게 좋다. 자꾸 회피하고 밀려주면 상대는 더 밀고 들어온다.

하는 일마다 빈정거리고 반기를 드는 선배 과장과 함께 일해야 했던 한 과장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보라는 듯 그러는 통에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멘토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몇 가지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한 이 과장은 회식이 있던 날, “할 얘기가 있다”며 조용하게 둘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몇 가지 사례를 말하며 “다시 이런 식으로 하면 당신도 죽고 나도 죽을 거다. 사표는 써 놨다”고 결연한 선언을 했다. 심장이 쿵쿵쿵 뛰고 다리가 덜덜 떨렸지만 그렇게 말하고 헤어졌다. 그런 다음, 평소와 다름 없이 대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어떻게 됐을까? 거짓말처럼 ‘악당’이 변했다. 그에게 향하던 독설, 빈정거림, 반대가 없어졌다. 그의 결기에 움찔했던 것이다. 이들은 강한 사람에게 약한 면이 있다.

외나무 다리에서 ‘둘만의 대화’를 할 때는 침착하고 결연하게, 무엇보다 간결함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걸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한 다음, 가능하면 상대의 대답을 역시 조용하고 침착하게 기다리는 게 좋다. 말할 때는 ‘나’를 주어로 해야 한다. ‘당신’으로 하면 압박을 느낀 상대가 반발하기 쉽다. 그가 “알았다, 조심하겠다”는 식의 말을 하면 그대로 되풀이하는 게 좋다. “분명히 험한 말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이다. 확실한 마무리, ‘도장’ 찍는 효과가 있다. 상대가 대답을 회피하면 “이 선을 넘어서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다음, 평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정도가 심하다 싶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했다고 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평판에 대단한 신경을 쓰는 걸 활용하는 것이다. 어쨌든 ‘잘못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인식을 주는 게 중요하다. 물론 일에서 능력을 보여주어야 효과가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와 마주할 때는 침착하고 결연하게

이 과정에서 감정적이 되는 건 절대 지양해야 할 일. 감정을 무기로 하는 이들이기에 감정은 감정을 부른다. 상황만 악화된다. 지치고 힘들 때 이들과 맞딱뜨리는 게 좋은 일이 아닌 이유다. 쉬운 일이 아니니 맞대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양한 상황을 생각해 본 후, 실제처럼 말하는 연습을 해보는 게 좋다. 단, 살아있는 생물체를 앞에 두고 하는 게 효과가 있다. 사람이 없으면 고양이나 강아지라도 좋다. 살아있는 눈을 보면서 해야 실질적인 연습이 된다.

네 번째로는, 일종의 넛지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피뢰침을 발명하고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창안한 벤저민 프랭클린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의회 의원으로 있을 때다. 유난히 그를 보면 으르렁거리는 정적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를 만난 프랭클린이 뜻밖의 부탁을 했다. 구하기 힘든 책이 있다던데 혹시 빌려줄 수 있느냐고 말이다. 웬일인지 그가 선선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며칠 후 프랭클린은 감사하다는 쪽지와 함께 책을 돌려주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180도 변했다. 더 이상 으르렁거리지 않았고, 되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요즘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 성향이라고 하는 이 행동 전환은 자신이 한 행동에 일관성을 갖기 위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프랭클린에게 호의를 보여주었으니 그 뒤로도 계속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전환을 끌어내려면 프랭클린처럼 작은 호의를 유도하거나, 아니면 먼저 상대가 고마워 할 (작은) 호의를 베풀어 그렇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호의를 주고 받는다면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그들에게 적어도 적이 아니라는 걸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동 전환까지 유도할 수도 있다. 적이 많아서 좋을 일은 없다.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가져야 할 마음자세가 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은 흔하다. 어딜 가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다. 깊은 산 속의 절이나 고립무원 수도원에도 이런 고민들이 있다지 않은가. 그러니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좋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회가 올 때까지는. 물론 견디는 마음이 필요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작은 호의를 먼저 베풀어 행동 전환 유도

우리 주변을 보면 성격 좋은 이들이 있다. 상대가 예민하게 지적하거나 다그칠 때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라며 자기 행동을 인정해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쓱 넘어간다. 마음에 두지도 않는다. 수긍해 버리니 따지고 들던 사람도 할 말이 없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한 광물학자 같은 사람들이다. “어떤 야비한 일이나 어이 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고민하지 말라. 단지 아는 게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라. 인간을 알아가다 보니 새로운 지식이 하나 더 나타났다고 말이다. 광물학자가 연구를 하다 아주 이상한 광물 표본 하나를 더 발견한 것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마음에 상처만 되는 영양가 없는 얘기를 귓등으로 넘기는 것, 예민하게 쏘아 대는 화살을 퉁 치는 둔감함이 능력이 되는 시대다. 그러니 ‘이상한 인간 표본’ 하나가 나타나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호기심 있게 관찰해 보라.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나중에 또 나타났을 때 좀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95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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