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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부동산 다룬 연극 만든 문일수 젠티움파트너스 대표] 강남 아파트 값이면 뉴욕 부촌 집 사는데… 

 

지난해 브라질 국채 다룬 작품으로 포모 증후군 다뤄… 강남 재력가들의 행태와 종부세 등 꼬집어

▎뉴욕 맨해튼 전경. / 사진 : Wikimedia Commons
부동산 투자 열풍이 한국을 넘어 해외로 향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최근 올 상반기 해외 부동산 투자금액이 7조원에 달해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주로 국내 금융회사들이 투자 목적으로 유럽 등 저평가 지역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해외 부동산 시장 세미나’ 명목으로 개인투자자를 모아 베트남·미국 등에서 직접 부동산 매물을 보고 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태국이나 하와이, 필리핀 등 대표적인 관광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신규 분양하는 콘도 광고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민은행 부행장 출신의 금융 엘리트


▎문일수(왼쪽) 젠티움파트너스 대표가 직접 대본을 쓴 연극 ‘떠있는 섬’의 한장면. / 사진 : 두비춤
극단 두비춤이 지난해 8월 무대에 올린 [브라질]은 투자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가 어떻게 투자심리를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문일수 두비춤 대표 겸 투자회사 젠티움파트너스 대표는 지난해 대기업을 퇴직한 주인공이 안전하게 운용해야 하는 상가 보증금을 예금이 아닌 브라질 국채에 ‘몰빵’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공포((FOMO, Fear Of Missing Out)’인 포모 증후군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꼬집었다. 문일수 대표는 외국계 은행을 거쳐 국민은행 부행장을 역임한 금융 엘리트다. 취미로 시작한 연극이 이제는 본업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두비춤은 7월 11일부터 21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8번째 정기공연을 했다. 이번 [떠있는 섬]의 주제는 해외 부동산이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부동산을 우연히 찾은 한국인 택원이 한국과 전혀 다른 뉴욕 부동산의 종류와 세제, 교육, 사회구조 등에 관해 부동산 중개인 하비브, 비서 에밀리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택원은 강남에선 일반적이고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수)’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시가 20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자식을 미국 명문대에 유학 보낸 신중산층 가족의 가장이다. 택원은 적어도 포모 증후군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미국 대도시에 자녀를 유학 보내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수의 부모가 실제로 부동산을 사기도 한다. 현지 부동산 에이전트들이 자녀가 거주할 임대용 부동산을 알아보는 부모들에게 한달 월세로 들어가는 돈 대신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월세보다 훨씬 적은 돈을 이자로 내라고 조언하기 때문이다. 유학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올 때 집을 팔면 되고, 자녀가 미국에서 취업이라도 하게 되면 집 한 채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정말 택원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일까?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극단 산’의 윤정환 연출은 해외 부동산 얘기를 다룬 이번 연극에서 “투자와 같은 어려운 내용을 관객이 어떻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갈지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200만 달러, 2000만 달러가 우리 돈으로 얼마인지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것도 어려움 중 하나라며 “나처럼 매매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부동산 계약도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이라고 덧붙였다. 금융 엘리트인 문일수 대표를 제외한 두 배우도 역시 환율 계산이 머릿속에서 쉽게 이뤄지지 않은 점, 뉴욕 부동산 세제나 코업과 같은 주거용 부동산 개념이 생소했던 점을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으로 꼽았다.

연극의 주인공 택원은 사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강남 부동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뿐이다. 부동산 매매 계약 안 해본 사람도 많고, 연 1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가면서 자녀를 유학 보낼 수준의 재력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두비춤의 이번 작품은 지난해 문제를 제기한 포모 증후군 이후의 삶과 맞닿아 있다. 지난해 포모 증후군으로 어긋난 판단을 하는 중산층의 얘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포모 증후군을 겪는 이들이 부러워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남 부동산에 올라타 자산을 크게 불린 사람’에 대해 얘기한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맨해튼의 부동산에서 만난 하비브, 에밀리, 택원 모두 뉴욕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비브는 이스라엘에서 이민 온 이민자고, 에밀리는 미국의 소도시에서 뉴욕으로 ‘상경’했으며, 택원은 자녀 진학 문제로 미국을 찾은 한국인이다. 이들은 뉴욕 부동산 시장에서 주류가 될 수 없다. 에밀리 역을 맡은 김화영씨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극이 진행되면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진 택원을 향한 미국 부동산 업자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20억원짜리 택원의 아파트 가격은 뉴욕 맨해튼에서도 꽤나 좋은 집을 살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관객들은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뉴욕과 서울의 부동산 소유세나 돈이 있어도 주민들이 반대하면 집을 살 수 없는 ‘코업’, 최고의 건축기술을 가진 한국에서는 왜 30년 만에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으려고 하는지, 고가의 아파트를 가지고도 세금을 내려달라고 하는 이들은 집을 팔 생각은 왜 안 하는지와 같은 의문처럼 두 도시의 극명한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극의 막바지에서는 교육제도나 주류에 속하는 엘리트 계층의 특징, 노예제도가 사라진 어느 섬에서 벌어지는 부동산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에서 돌아가는 불평등의 고리처럼 비슷한 점도 발견했을 것이다.

문일수 대표는 실제로 지난해 9월 맨해튼을 방문해 아침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들어간 어퍼이스트(맨해튼 센트럴파크 우측에 있는 고급 주택가)의 부동산에서 직접 나눈 대화에 기초해 극본을 집필했다. 강남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는 뉴욕 맨해튼에서도 최고가 콘도와 코업(집이 있는 건물의 지분을 매입해 입주하는 콘도) 가격에서 부동산과 소유권의 문제로까지 극을 발전시킨 것.

기자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좋은 콘도 매물로 꼽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타워 40층의 200평짜리 매물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방이 11개, 화장실 6개짜리 대저택이었다. 거실 마루는 프랑스 샤토 지방의 한 저택을 바닥을 뜯어와 시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샌트럴파크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이 타워 매물은 2015년 이후 지금까지 평균 30% 이상 하락했다. 2008년 당시 가격은 300억원이었다. 하지만 현재 약 200억원 정도다. 평당 1억원 수준이다. 뉴욕시 센서스(인구통계) 조사에 따르면 두비춤의 이번 작품의 주무대인 맨해튼 어퍼이스트 지역 거주자들의 평균 연봉은 31만 달러가 넘어 뉴욕시에서 가장 높았다. 이 지역 코업, 콘도 가격은 트럼프 인터내셔널 타워가 있는 컬럼버스 서클 지역 매물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지난해 국내 부동산 관계자들의 관심은 반포 한강변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평당 매매가가 1억원을 돌파하는지 여부였다.

-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1495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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