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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22) 지성언 ㈜차이나다 공동대표] 작아진 배역이라도 역할에 충실하세요 

 

대기업 임원 지내고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전직... 소문난 시니어 패셔니스타로 핫한 셀럽이 꿈

▎사진:전민규 기자
“인생 2막 무대에서 주연이나 큰 배역을 기대할 순 없죠. 하찮은 역할이나 지나가는 행인이면 어떻습니까? 거리 풍경을 맡은 나무도 당당할 수 있어요. 은퇴했다고 눈이 부시게 빛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성언 ㈜차이나다 공동대표는 “인생이란 무대에서는 눈 감는 날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역이 작아졌으면 작아진 대로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됩니다. 은퇴했다고 이 사회에서 퇴출된 거 아닙니다. 가로수도 무대 위 멋진 풍경이 될 수 있는데 분리수거 대상이라도 된 듯 시니어들이 풀 죽어 지내는 게 안타까워요.”

지 대표는 중국어 교육 스타트업 차이나다에서 오프라인 학원 사업 ‘차이나탄’을 맡고 있다. 중국 전문 강사이자 기고가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레이트 그레이(great grey)’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고, 지난 봄 같은 이름의 책을 냈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어른을 위한 안티에이징 라이프 플랜’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무엇보다 그는 소문난 시니어 패셔니스타이다. 백팩을 메고 발목이 드러나는 바지를 입는다. 양말 색깔은 크레파스를 방불케 한다. 패션은 이 시대 명함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이라고 주장한다.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강의료보다 강의시장에서의 포지셔닝을 고려해 수락 여부를 결정한다.

중화권 31년 근무한 1세대 중국통

그는 1세대 중국통으로 대만·홍콩·중국 등 중화권에서 31년 반 일했다. 그중 29년 남짓 LG상사(반도상사의 후신)와 LG패션(LF의 전신)에 근무했다. 임원을 지낸 후 상임고문으로 있으면서 봉급쟁이로서는 ‘천수’를 누렸고 그 후 미국계 여성복 회사로 옮겨 중국 사업을 총괄했다. 어느 날 상하이 푸단대 출신 젊은이들이 차린 차이나다가 중국어 온라인 교육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서 이 회사 김선우 대표에게 격려의 마음을 담아 손편지를 보낸 것이 인연이 돼 2016년 사실상 인턴으로 이 회사에 몸담았다. 그때 나이가 환갑이었다. 이 편지에 그는 자신이 중국에서 광고 모델을 한 경험이 있고 패션 화보도 찍어 무료 광고 모델이 되어줄 수 있다고 추신을 달았다. “사실 스토리텔링 광고를 한다면 중국통인 제가 적임일 거라 생각했지만 애초에 중국에서 유명 여배우 슝다이린과 TV 광고를 찍고 남성복 화보 촬영을 했기에 이런 이야기를 편지에 쓸 수 있었죠.”

차이나다 측의 합류 제의를 받고 그는 5분 만에 수락했다고 한다. LG패션 상하이 법인장으로 있다가 예상 못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을 땐 3초가량만 언짢고 슬펐다고 했다. “드디어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 신바람나게 살고 싶었거든요. 어디에 몸담든 봉급쟁이는 유효 기간이 있는 대체재 신세일 수밖에 없어요. 잘나가던 대기업 주재원 시절엔 미처 몰랐죠. 한때 묘비명을 ‘평생 주재원으로 살다 갔다’라고 쓰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객쩍은 생각을 다 했었습니다.”

그는 중국 시장 공략은 마치 서너 개의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는 게임과 같다고 말했다. “시시각각 변해 영점 조준이 잘 안되는 시장입니다. 그런 만큼 긴 호흡으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돼요. 술 실력과 비례했던 전통적 꽌시보다 중국 메신저 위챗방을 활용한 디지털 꽌시가 더 유용하죠. 저는 한국에 있으면서 지금도 회원수가 각각 400명, 200명인 위챗방에서 현지인들과 소통합니다. 은행, 세관, 외국계 기업 등 다양한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모인 덕에 잡종 강세 같은 힘을 발휘하죠. 문제가 생기면 이 방에서 솔루션을 구하는데 길어야 하루이틀이면 해결돼요.”

올해 예순넷인 그는 내년이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가 된다. 하지만 그때가 돼도 공짜 승차권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지하철을 타면 웬만해선 자리에 앉지 않는다. 손잡이를 잡지 않고 서서 지하철의 움직임에 몸을 내맡기는 ‘지하철 서핑’을 즐긴다. 지하철 노약자석은 10년 후의 자신에게 양보하기로 일찍이 마음먹었다. 중학교 때까지 그는 지독히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남들 앞에 서면 몹시 떨었다. 초등학교 시절 늘 성적이 좋았지만 그래서 반장을 해 본 적이 없다. 중 3때였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책상 줄 사이에 누워 눈을 감았다.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친한 친구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너의 이 웃음이 참 좋구나.” 누군가에게서 처음으로 확실하게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래, 나는 웃음이 멋진 사람이야.’

그 후로 말이 많아졌다. 친구들 앞에서 처음 노래도 불렀다. 그 시절 트로트를 곧잘 불렀는데 그 다음부터 친구들이 노래를 시키면 피하지 않았다. LG상사 취업 후 첫 야유회 땐 심지어 오락부장 노릇을 했다. “중국에서 TV 광고 촬영 제의를 받고서 ‘난 얼굴이 커 광고 모델감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저를 픽업한 왕 감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눈을 믿어야 돼요.’ 그 말에 용기를 냈죠. 그랬기에 스물일곱 연하의 김선우 대표에게 편지를 띄웠고,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있습니다.”

LG패션 상하이 법인장 경험은 오프라인 학업 사업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학원은 패션 매장처럼 수요자가 많은 입지를 고르는 게 핵심이었다. 수강자에 대한 서비스는 매장의 고객 응대와 차이가 없었다. 차이나다는 온·오프라인 강의를 결합한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확실한 차별성이고, 아직은 경쟁자도 없다. 캠프는 위워크 등의 공유 사무실이나 그에 준하는 공간에 입주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중국어’를 표방하고, 교실 수업 외에 게임, 드라마 등을 활용하는 2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코끼리 등에서 떨어진 행복한 벼룩


▎사진:전민규 기자
차이나다로 옮기면서 그의 연봉은 전 직장의 5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6분의 1보다야 낫죠. LG패션 고문으로 물러날 때 와이프가 나중에 귀국하면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물어 마땅치 않으면 문화센터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월 200만 원만 벌어오라고 했는데 그보다는 훨씬 많이 받아요.” 그는 대기업 생활을 코끼리와 벼룩에 비유했다. 대기업은 코끼리이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코끼리 등의 벼룩이라는 것이다. 50세 안팎에 코끼리 등에서 떨어지면 상실감도 상실감이려니와 다시는 코끼리 등에 오를 수 없다. 그때부터 벼룩은 기본적으로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아야 한다. “30대 후반~40대가 되면 코끼리가 몸을 흔들어 퇴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행복한 벼룩으로 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되죠. 일찍 착수할수록 코끼리 등에서 떨어졌을 때의 추락감이 덜합니다.”

그는 책을 쓰는 동안 가족에게 원고를 일절 보여 주지 않았다.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라 LG패션으로 옮긴 이래 그의 패셔니스타 ‘행각’을 불편해 했던 부인은 두어 시간 만에 그의 책을 읽고서 “당신 옷 사러 가야겠네”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제가 이런 류의 사람인 걸 그제야 안 거죠. 본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동안 너무 말렸구나 싶었던가 봐요. 저도 그렇지만, 배우자의 진면목도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가 20여 년 종사한 무역과 결별하고 LG패션으로 옮겼을 때의 일이다. 호기심도 돋았지만 실패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상하이에서 자체 브랜드를 론칭해 성공한 LG상사 후배에게 조언을 들어 보려 점심약속을 했다. 상사맨 특유의 감색 양복에 튀는 색 넥타이를 맨 그 앞에 나타난 후배는 긴 머리에 몸에 착 달라붙는 빛바랜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가 던진 충고는 “넥타이부터 풀라는 것”이었다. 지 대표는 군말 없이 넥타이를 풀었다. 상사맨에게는 소총수의 소총과도 같은 넥타이를 풀고 스스로 무장해제한 것이다. 그의 결심을 확인한 후배는 마침내 패션 내수 시장에서 쌓은 천금 같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지 대표에게 시니어 패션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믹스 앤 매치가 기본입니다. 재킷을 산다면 집에 있는 어느 바지와 매치해 입을 건지 생각해 봐야죠. 그러나 패션의 완성은 액세서리입니다. 나만의 에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죠. 단적으로 스니커즈를 한 켤레 사서 거기에 맞는 패션을 시도해 보는 겁니다.”

지 대표의 인생 2막 좌우명은 “흐르는 물은 서로 앞을 다투지 않는다”(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다. “2막엔 선두에 서려 속도 경쟁을 할 게 아니라 같이 어우러져 큰 바다로 나가야 합니다.” 그는 환갑을 맞았을 때 ‘거꾸로 살아보는 실험’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신발을 신을 때 먼저 신는 발, 계단을 오를 때 먼저 내딛는 발을 바꿨다. 신체의 불균형을 의식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시도이다. 그는 오른쪽 어깨가 왼쪽보다 1㎝가량 넓다. 중고교 시절 야구를 즐겨했을 때 투수를 맡은 것의 영향일 것이다. “거꾸로 살려면 처음엔 불편하지만 하다 보면 재미가 있어요. 우기면 소확행이죠. 제가 본래 ‘호기심 천국’입니다. 성격도 밸런싱할 수 있습니다. 욱 하는 성질이 있다면 인생 2막엔 반대로 유순하게 살아보는 거죠.”

그는 이 시대에 시니어들이 제대로 대접 못 받는 건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쌍방향의 조화로운 소통을 통해 젊은 세대와 세상의 변화를 공유해야 합니다. 슬퍼할 일도 노여워할 일도 아니에요. 도전 정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세, 열린 사고 등은 되레 젊은 세대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도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서로 앞을 다투지 않는다

그의 버킷 리스트엔 잡지 표지 모델로 데뷔하기가 들어 있었다. 중고교 시절 친구 두 사람이 당시 최고의 학생 잡지였던 학원의 표지 모델을 했는데 내심 부러웠었다. 지난 봄 책을 낸 후 여기 저기 그의 스토리가 기사화되면서 그는 이 꿈을 이뤘다. 취재 온 잡지 기자에게 “표지 모델 되는 게 버킷 리스트”라고 어필했는데 난색을 보이던 기자가 나중에 사진을 한번 보내 보라고 하더니 표지에 실었다. 연기, 자작곡 취입,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는 디지펀 아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등도 그의 버킷 리스트에 올라 있다. 무엇보다 시니어 대상 방송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되어 전국노래자랑의 송해처럼 나이들어가는 게 그의 꿈이다. “코칭과 나눔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핫한 셀럽이 되고 싶습니다. 이 나이에 저의 심장이 뛰게 하는 일이죠.”

그는 심장이 뛰게 하는 일을 찾고 싶다면 스스로 부딪쳐 경험해 보라고 권했다. 자신과 맞는 일이면 심장이 자동으로 뛰게 돼 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심장이 자주 뛴다면 건강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오늘은 우리 생애 가장 젊은 날이자 가장 성숙한 날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나름의 퍼스널 브랜딩을 해 보세요.”

1498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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