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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22) 상사에게 호감 받는 몸 사용법(2) 혼나기] 적당히 고개 숙이고 어쩔 줄 몰라 하라 

 

변명하지 말고 ‘복종행동’ 보여야… ‘자백한 약자’에게 선의 베풀게 마련

▎사진:© gettyimagesbank
지난 3월 5일 일본 NHK 방송에 이색적인 대학 강의실이 등장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18명이 듣는 수업 제목은 ‘잘 혼나는 법’.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강사가 신입사원처럼 정장을 입은 학생들을 혼 내는 상황을 만든 후 대응자세를 고쳐주고 있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도시마구 다이쇼(大正) 대학이 2년 째 진행하고 있는 이 수업은 졸업생들의 하소연에서 시작되었다. 직장에 들어간 졸업생들이 상사로부터 혼 나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입을 모아 토로했던 것이다. 사실 혼 나는 게 별 일 아닌 사람이 있을까마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제대로’ 혼 나본 경험이 별로 없는 젊은 세대에게 이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영혼이 나가는 듯 ‘멘털’이 탈탈 털리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한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고 좌절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니 작은 일로 넘어갈 것도 불거진다. 이날 강사는 “특히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야단 치는 상사의 얼굴을 똑바로 볼 것과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말로 반응하라는 것이었다(우리 문화와는 약간 다르다. 뒤에 살펴볼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밀레니엄 세대들이 직장인의 30%를 넘어서면서 이전에 없던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다. 상사들이 팀원을 혼내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젊은 세대들 또한 대처법을 모르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회사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사가 기대하는 게 있다


▎사슴벌레 수컷은 나무에서 만나면 사생결단 하듯 싸운다. 그러다 땅에 떨어진 녀석들은 대체로 꼼짝하지 않는데, 그렇게 땅에서의 예상치 못한 위기를 넘긴다. / 사진:© gettyimagesbank
혼 내고 혼 나는 이유와 방식이야 세상의 모래알만큼이나 많고, 대처하는 방법도 그러하겠지만 여기서는 지금까지 다루어온 몸짓에 초점을 맞춰 알아보도록 하자. 누누이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도 모르게 하는 무의식적 행동이 끼치는 영향이 예상 외로 큰 까닭이다. 기본을 알면 응용력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상사들의 혼 내는 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룰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에 이름을 떨친 오다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았던 모리 란마루라는 소년 장수가 있었다. 어른이 되지도 않은 그가 총애를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오다가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귤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린 모리가 그 귤을 소반에 가득 담아왔는데 너무 많이 담았던 것 같다. 그걸 본 오다가 한마디 했다. “조심해라. 떨어뜨릴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귤이 떨어졌다. 오다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모리의 실수가 아니었다. 주군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겨울에는 회의에 참석하러 마지막으로 들어온 오다가 “아, 내가 들어오면서 문을 안 닫고 온 것 같다”고 했다. 모리가 가보니 닫혀 있었다. 닫았는 데도 헷갈렸던 것이다. 우리라면 어떨까? “잘 닫혀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을 것이다. 모리는 달랐다. 주군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리기 위해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가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쿵 하고 닫았다. 평소에도 이 정도였으니 다른 일에서는 어떠 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그는 10대 소년이었음에도 봉록 5만석에 이르는 어엿한 영주가 되었다.

입안의 혀처럼 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상사가 어떤 말을 할 때, 특히 혼을 낼 때는 기대하는 게 분명 있다. 그런데 원하는 신호나 반응이 없거나 시원찮으면? 문제가 생기기기 시작한다. 상사는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보고 싶어 또 다른 뭔가를 시도한다. 팀원 입장에서 보면 원치 않은 상황이 자꾸 생긴다. 우리는 보통 이럴 때 말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되려 상황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말과 몸짓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어는 7%만 전달되고 나머지 93%가 몸짓으로 전달되다 보니 상사는 말보다 몸짓을 더 믿는다. 불일치가 커질수록 불신은 커지고 엎질러진 물이 된다.

상사에게 혼 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천국에나 있을 테니 알아두면 좋을 게 이럴 때 필요한 복종행동이다.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우리 본성에 깊숙하게 깃들어 있어 필요한 것이니 알고는 있어야 한다(자세한 내용은 이전 회를 참조). 다만, 일본의 혼 나는 법 강사는 ‘얼굴을 똑바로 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다. 상사를 똑바로 보는 건 우리 문화에선 공격적인 표현이다. 적당히 잘못했을 때는 상사의 턱이나 목과 가슴 사이 정도를 보는 게 무난하고, 상당히 잘못했을 때는 무릎 정도를 보는 게 좋다. 시선을 옆으로 두거나 발끝만 보는 것 같은 시선 외면은 상사가 기대하는 행동이 아니다. 되려 감정을 고조시킨다. 몸을 가능한 작게 해야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은, 잘 듣고 있다는 작은 반응을 보여야 한다. 변명은 물론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건 기본, 당장 해야 할 말이 아니라면 한 템포 늦춰서 하는 게 좋다. 태풍이 불 때는 일단 엎드리는 법이다. 필요한 행동 외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위 같은 커다란 턱을 갖고 있는 사슴벌레 수컷은 나무에서 만나면 사생결단 하듯 싸운다. 마치 외나무 다리에서 결투를 벌이는 것 같다. 밀린 녀석은 나무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땅에 떨어진 녀석들은 대체로 꼼짝하지 않는다. 떨어진 충격으로 죽은 걸까? 그럴 리 없다. 녀석들의 몸은 예상 외로 탄력성이 좋다. 1, 2분쯤 지나 안전하다고 느껴지면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 툴툴 털며 일어나 갈 길을 간다. 땅에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항상 있다 보니 일단 죽은 척하는 것이다. 녀석들 만이 아니라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뿔도마뱀을 비롯 몇몇 설치류와 물고기들도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생명체는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동작을 ‘일단 정지’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외출한 사이 몰래 케이크를 훔쳐 먹던 아이들은 예기치 못한 인기척이 들리면 일제히 동작을 멈춘다. 얼음이 된 듯 숨까지 멈춘다. 심리학에서 정지반응이라고 하는 이 행동을 상사 앞에서 하면 상사는 앞에 있는 상대를 약자라고 느낀다. 약자이니 경계심이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이나 신입사원들은 다른 행동으로 불안을 발산한다. 몸을 비비꼬거나 거북처럼 웅크리고 다리를 달달달 떨기도 한다. 의자에 앉은 이들은 의자 다리에 자신의 다리를 꼰다. 자신도 모르게 하는 이런 행동(전이활동)이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보일까? 사실 상사가 기대하는 행동은 따로 있다.

당황스러워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라?

동물행동학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데스몬드 모리스가 [털 없는 원숭이]라는 책에서 전하는 일화가 있다. 모리스는 동물 행동과 인간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주창한 사람인데, 이걸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교통법규를 위반해 그때마다 어떤 복종행동이 가장 효과적인지 실험했다. 사소한 위반이기에 “나는 안 했다”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건 효과가 없었다. 되려 화를 불렀다. 비굴하게 “한번만 봐달라”고도 해봤다. 그것도 별로 였다. 가장 좋은 건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었다. ‘용의자’의 순순한 자백으로 한껏 우월한 느낌을 갖게 된 경찰은 가끔 ‘자백한 약자’에게 선의를 베풀었다.

물론 거저 주어진 혜택이 아니었다. ‘반드시 적절한 자세와 몸짓을 덧붙일 때’ 주어지는 혜택이었다. 적절한 자세와 몸짓은 지금까지 말해온 것들인데 여기에는 바로 앞에서 말한 전이 활동도 포함된다. 단, 다리를 달달달 떠는 것 같은 부정적인 몸짓이 아니라 뒷머리를 긁적이는 것 같은 긍정 행동일 때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사실 더 효과적인 건 당황스러워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당황스러워 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라고? 그렇다. 심리학자인 대처 켈트너에 따르면 잘못한 사람이 이런 행동을 보이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실수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집단의 문화에 적응하려고 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신입직원이 그러면 집단에 합류하려는 노력으로 여긴다. 평소에 점수를 따 놓으면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라는 격려까지 듣는다. 켈트너의 연구에 따르면 모의재판에서 마약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용의자가 당황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자 생각보다 적은 형량을 선고하는 경향이 짙었다.

사실 혼나는 과정에서의 몸짓도 중요하지만, 끝난 후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바람처럼 획 돌아선다거나 불만 가득한 느낌을 주는 뒷모습을 보이면 혼은 혼 대로 나고 개운찮은 뒷맛까지 남긴다. 진지하거나 무거운 표정과 몸짓을 유지하는 게 좋다. ‘나 지금 멘털 나갔음’ 같은 표정까지는 괜찮지만 ‘나 지금 기분 엉망, 건드리지 말 것’ 같은 ‘오만 가지 인상’은 ‘내 성격 별로임’을 동네방네 소문 내는 것이다. 평판만 나빠진다. 소셜미디어에 하소연하는 것도 참는 게 좋다. 괜한 오해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상사의 꾸지람과 지적이 항상 옳은 게 아니기에 억울할 수 있다. 직장은 정의로운 곳이 아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도 있어야 한다. 죽은 척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털고 일어나는 사슴벌레처럼 훌훌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상사가 쿨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내가 쿨한 게 차라리 낫다. 물론 마음 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몸의 맷집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다져지듯 마음의 맷집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혼 내는 대로 다 받아주고 끌려가라는 게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 ‘정당한 반론’을 제기할 필요도 있다. 감내한다고 모든 일이 풀리는 건 아니니 말이다. 부하들을 이용 대상으로만 보는 고혈 채취 전문가인 상사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물론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반론 강도가 셀수록 삶의 많은 걸 걸어야 한다. 위계서열이 가득한 조직에서 위를 향해 눈을 치켜 뜨는 건 ‘아니면 말고’일 수 없다. 잘못하면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는 위험한 승부다. 사악한 상사일수록 더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전력을 다해 아래에서 올라오는 기세를 누른다. 아니 누르는 정도가 아니라 말살시키려 한다. 그러니 용기가 전부가 아니다. 기술이 필요하다.

상사를 향해 눈을 치켜 뜨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일에 대한 반론과 절차 같은 방식에 대한 반론이다. 몇 년 전 신제품 프로젝트를 맡았던 팀장이 있었다. 4개월 동안 탐색한 후 사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발표했다.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분위기는 싸늘해졌고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알겠습니다. 다시 준비하겠습니다”라고 하려다 문득 만의 하나 준비했던 게 생각났다.

“예. 알겠습니다. 사실 사장님께서 관심이 없으실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사장이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 왜 그렇게 생각했지?”

“혹시 7분 정도만 시간을 주시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딱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구차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7분? 진짜 7분이지? 좋아, 그럼 말해 보게.”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제안은 통과됐다. 성격 급한 사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안정된 몸짓으로 ‘기술적으로’ 대처한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어떤 부정적인 표현이나 몸짓을 사용하지 않았다.

친절함이 앞서야 옳은 말이 대우 받는다

일이 아니라 팀 운영 같은 절차에 대해 야무진 소리를 할 때에는 좀 더 ‘한약 같은’ 방식이 필요하다. 쓴맛을 약화시키기 위해 달콤한 당의정을 입히 듯 쓴소리를 하기 전에 상사를 띄우는 것이다. 누구나 하는 얕은 수 같지만 사실은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해야 하는 기본이다. 입에 발린 말은 안 한만 못하다. 합리적인 장점을 찾아야 한다. 이런 걸 잘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앞으로 크게 되실 분이” 세상에, 팀장님이 그걸 모르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와 같은 약간의 아부와 농담이 섞인 멘트들이다. 대들고 싶을수록 공손해져야 한다. 대체로 총대를 메고 용감하게 나선 이들이 희생양이 되는 건 용기만 있고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옳은 말만 하는 것이다. 정의가 언제나 살아 있지 않듯 옳은 말이 언제나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게 회식 자리에서 술 기운에 한마디 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뒤끝이 없지만 듣는 상사는 뒤끝이 진하게 남는다. 더구나 다음날 아침 숙취와 함께 그 말이 자꾸 떠오르면 괘씸죄는 맡아 놓은 당상이 된다. 대드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인데, 그것도 만인이 보는 앞에서 잘못을 공론화한 자살골을 넣은 죄다. 반론은 조용히, 둘만 있을 때, 상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친절함이 앞서야 옳은 말이 대우 받는다.

어떤 상황에서건 상사를 향한 ‘반격’은 의견 개진 이상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지난 회에 말했듯 상사를 이기려는 부하는 생존가능성이 작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절반은 어떨까? 이것도 위험하다. 20~30%만, 그것도 가능한 긍정적인 용어로, 핵심만 하는 게 좋다. 표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나, 그게 아니라’ 이런 표현보다는 ‘그보다는’ 같은 표현이 낫고,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라는 제안 형태가 무난하다. 지적하는 게 아니라 상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상사에게 혼이 나건, 예의 바르게 대들든 상사를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사실 잊지 말아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만 상사와의 관계를 좋게 하려면 상사를 알아야 한다. 특히 상사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게 좋다. 희로애락애오욕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패턴을 파악하면 대처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사람은 자신이 이성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 사실은 감정적으로 움직인다. 요즘 같은 때에는 불확실성이나 불안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에 그의 면모가 들어있을 때가 많다. 상사를 어떻게 지켜보는 게 좋을지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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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호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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