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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의 1인 회사 설립·운영 길잡이(20·끝)] 가족의 지지와 응원을 먼저 얻으라 

 

초기에 겪는 식구들과의 갈등… 평소처럼 출퇴근하며 변신 꾀하길

▎사진:© gettyimagesbank
“당신 슬리퍼 끌고 동네 다닌다면서, 사람들이 물어봐. 휴가 기간이냐고.” “아버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지내는 것 보기 안 좋아요.” 지난해 6월 기대를 부풀린 가운데 글쓰기 강의를 주업으로 삼은 자영업자로 나섰다. 그러나 나를 부르는 고객은 별로 없었다. 나를 아는 고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강의하러 다니는 날보다 짬짬이 다른 일을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일하러 멀리 가는 대신 가장 가까운 구립 도서관에 갔다(내 법인 사무실은 공유 오피스를 주소지로서만 활용하는 조건이어서 내가 앉아서 일할 자리가 없다. 공유 오피스의 회의실은 기본 시간 쓸 수 있다). 여름이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슬리퍼를 끌고 다녔다. 점심 식사는 자주 동네 호프에 차려진 뷔페 식당에서 했다. 출근 시각이 강제되지 않으니, 집을 나서는 때가 들쭉날쭉했다. 꾸물거리다 보면 오전 시간의 주거공간을 가족들과 오붓하지 않게 공유하게 됐다. 결국 위와 같은 지청구를 듣게 됐다.

자영업자 초기의 달라진 근무여건과 그 여건에 적응되지 않은 시일은 당사자와 가족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나 역시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평소처럼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이전처럼 밤 늦게 들어오는 규칙적인 일상을 반복하면서 자영업자로 부드럽게 변신했어야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친구의 경험이 떠오른다. 그는 직장을 나와서 새 일자리를 알아보는 동안 공유 오피스에 자리를 얻었다. 월 수십만원을 부담하면서 평소처럼 집을 나와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라앉아 있던 관계의 앙금 올라와


경제적으로 악화되는 변화는 수면 아래 잠겨 있던 문제를 드러낸다. 남편과 아버지로서 내 점수는 둘 다 마이너스였다. 나는 벌이가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자주 직장을 옮겼다. 이직할 때마다 그에 맞춘 계획을 제시했지만, 계획은 번번이 빗나갔다. 또 오랫동안 수많은 자기 중심적인 행동으로 아내와 두 아들에게 상처를 줬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낸 후 시간 여유가 생긴 아내는 그 여유의 상당 부분을 숨을 돌리며 지나온 일을 정리하는 데 썼다. 아내의 마음에 가라 앉았던 앙금이 수시로 떠올라 부유하는 듯했다.

아내는 글쓰기 강사라는 내 인생 연장전 청사진을 못미더워했다. 글쓰기 강의 수요가 많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글쓰기는 직장인 교육 중 기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요가 많다고 주장했다. 아내의 다른 걱정은 나도 인정했다. 강의는 재미있어야 하는데, 나는 말이 유창하지도 않거니와 유머라곤 머리숱만큼이나 적다. 그러나 이런 약점은 우수한 콘텐트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내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였지만 “지방 강의를 다니려면 차가 필요하겠네”라고 말했다.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현실은 구상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글쓰기 강의 수요는 많았지만, 내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했다. 새로운 강의가 연결될 듯할 때마다 아내에게 말했다. 강의 초청 가능성은 상당수가 가능성에 그쳤다. 청사진이 점차 빛이 바랬다. 아내는 가능성의 열거를 듣기 귀찮아했다. 20여 년 동안 문제가 누적된 뒤 더 나빠진 관계는 당연히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장기 과제로 접근하기로 했다.

나는 일상생활을 바꿨다. 우선 구립 도서관보다 더 멀고 더 큰 A도서관을 고정적인 근무 장소로 정했다. A도서관이 휴관하는 날이면 더 먼 곳에 있는 B도서관에 간다. 식사는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약속이 없으면 저녁 식사도 도서관에서 하고 ‘야근’한 뒤 귀가한다.

주업보다 부업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업무는 다각화했다. 강의 주업보다 부업 비중을 더 늘렸다. 영어 책을 번역하는 일을 받아서 했다. 난생 처음 제안받은 공동 저술 작업도 수락했다. 책 원고를 편집하는 일도 했다. 이 밖에 짬짬이 책 원고를 썼고,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저서 리스트에 한 권을 추가했고, 올해 번역서 두 권과 연내 공저 한 권이 나왔다. 역서 한 권도 출간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원고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 한건에 착수했고, 다른 한건은 시작할 계획이다. 원고를 쓸 시간은 그리 빠듯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학기가 끝나면 대학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던 시간이 남기 때문이다. 식소사번(食少事煩). 현재 내 상황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다. 먹잘 것은 없는데 일은 많은 상황이다. 위나라 사마의가 촉의 제갈량에 대해 한 말이다. 제갈량의 일과 식사에 대해 사신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을 처리하시며 식사는 아주 적게 하십니다”라고 답하자 사마의는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많으니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이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은 순환에 빠진 결과다. 보상이 변변한 일거리가 없다 보니 대가가 박한 일거리를 추가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일의 가짓수가 많아진 것이다. 식소사번을 탈출할 계기가 될지 모를 제안이 최근 두 건 들어왔다. 특강 제안이다. 두 기회를 잘 잡으면 다른 강의가 연결되면서 식다사소(食多事少) 상태로 다소 옮겨갈 수 있을 듯하다. 과연 두 기회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박스기사] 재직증명서를 셀프 발급하는 마음

그동안 재직증명서를 두 번 발급했다. 1인 회사이므로 내가 작성해 나에게 발급한 재직증명서다. 말하자면 셀프 발급이다. 최근 발급한 재직증명서는 고용보험환급과정으로 진행되는 글쓰기 강의에 필요하다고 해서 보냈다. 주최 측은 고용보험을 환급받기 위해서는 나를 신규 강사로 등록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재직 기간 1년 이상인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직증명서는 어떤 사항을 담아 발급하면 될까? 나는 포털에서 검색해 최소한의 사항만 기재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소속, 직책, 업무, 근무 기간, 발급 날짜, 회사 이름을 적은 후 출력하고 법인 인감도장을 찍었다. 이 재직증명서를 스캔해 주최 측에 보냈다. 회사에 따라서는 재직자의 주소를 넣기도 하고, 회사의 주소를 쓰기도 한다. 나는 두 주소를 기재하지 않았지만, 내용을 보완해 재발급해달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 재직증명서를 작성하고 보내는 일은 다른 서류 작업에 비해 간단하다. 내 재직증명서를 스스로 발급하는 일은 사기를 북돋워주는 효과가 있다. 내가 회사를 차려 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이지 싶다.

※ 필자는 글쟁이주식회사 대표다. 동아일보·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1510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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