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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 바로보기] 고용 없는 성장에 자의 반 타의 반 몰려 

 

임시직이 정규직 대체하는 시대의 단면… 새 활력소도 돼 고시생 증가보다는 긍정적

▎사진:© gettyimagesbank
‘디지털 노마드’란 말이 있다. 인터넷과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유목민처럼 일하는 경우다. 디지털 시대의 일상에 말 그대로 유목민(nomad)이 등장하고 있다. 자크 아탈리(프랑스의 문명비평가) 등이 20여 년 전에 처음 언급할 당시만 해도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세계를 누비는, 그러니까 곧 다가올 21세기형 삶의 양태를 다룬 낭만적 단어였다. 그렇게 멋지게 여행하는 삶이란 필연적으로 정말 한줌의 글로벌 엘리트들에게나 허락되곤 하는 경우였다. 언제 어디서나 전 세계 방방곡곡, 마음에 드는 곳으로 날아가 어떤 제약도 조건도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여유와 권력이란 대다수에게 그저 부러운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디지털 노마드는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의 초상류층이 경제적 자유를 구가하며 여행하듯 사는 것만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정주처를 잡지 못한 혹은 의도적으로 잡지 않은 이들이 대안적 삶으로 선택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급부상하게 됐다. 정주인의 삶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새로운 환경 변화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이들을 노마드로 만들기도 했다.

‘디지털 노마드=프리랜스’만은 아냐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다운 일인데, 생산성은 대기업으로 집중되고 경제 성장도 점점 더 대기업에 의존적이 되어가지만 기업들은 그만큼의 고용흡수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구직자 입장에서 어찌 힘겹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중추적인 일은 자신 같은 젊은 세대에게 쉽사리 돌아오지 않으니, 조직 내 성장에 대한 불신과 실망 또한 커져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즈음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블로그 콘텐트 등에는 유독 퇴사와 관련된 주제가 유행한다. 한국이라는 거대한 실버타운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달관으로 풀어내려는 일종의 낭만성이 엿보인다. 즉 호텔방을 전전하며 짐 가방을 풀 듯 월세 방을 전전하며 이삿짐을 풀지언정, 지나치게 인생을 비장하게 보진 않는 ‘달관의 세대’가 노마드와 같은 삶의 양태를 실험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노마드의 삶이란 어찌 보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두고 벌이는 일종의 실험일지도 모른다.

우선 노마드의 삶, 유목민적 본능에 충실한 생활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수렵채집(hunter-gatherer)의 본능을 거스른 채 농경민적 조직 생활을 강요받았던 과거를 의심하는 일에서 보통 시작된다. 조금 더 자유로운 일, 아직 우리에게까지 남아있는 진짜 일을 조금 더 진지하게 찾아보면 내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낙관이다. 이를 함께 찾아줄 사회적 기반이나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기대 위에서 비장하지 않고 가볍게 나만의 일을 시작해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what), 근태 걱정 없이(when), 마음에 맞는 이들과(whom), 사명감을 가지고(why),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how)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일을 하자며 일의 육하원칙을 다시금 생각해보자고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노마드가 직장에 구속되지 않는 일의 방식을 이야기할지언정, 반드시 프리랜스(freelance,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와 같은 ‘탈(脫)직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조직을 떠나서 혼자 잘 먹고 살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도, 개인의 능력이 조직에서 충분히 운용되지 못하는 사회적 손실을 극복해보자는 ‘능동성의 회복 운동’에 가깝다.

물론 자유분방하게 독자적 스타일로 일하는 프리랜서가 노마드처럼 일하기의 전형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개개인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조직에 속해서 일하는 것도 수렵채집의 본능을 발휘하는 길이어서다. 시키는 대로 일하는 답답함을 경쾌하게 뛰어넘어 내 가치와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일을 진짜로 해내고, 이를 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자는 것이다. 이대로만 되면 사회적 생산성은 분명 올라갈 터인데, 각 개인이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 자신이 알고 있어서다. 창조적 인간은 규율에 스트레스를 받고 과한 단속에 생산성이 하락한다.

개별 작업이 분업을 넘어 규격화돼야


유목의 이동을 빼고 노마드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조직에 물리적으로 귀속되지 않는 것이 노마드라는 인식이 있기에, 노마드 워크는 원격근무나 재택근무와 동의어로 쓰이곤 한다. 더 저렴한 거주비와 더 따뜻한 기후를 찾아 노트북 하나 짊어지고 떠나는 이들의 모습은 분명 낭만적이다. 예컨대 발리(인도네시아) 등의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 협업 공간)에는 그렇게 떠나온 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대개의 일거리는 발리 밖에서 온 것들이다. 숨은 ICT 강국 에스토니아는 365일까지 일하고 여행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동하며 일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고, 이들의 거점이 되고픈 곳들은 이렇게나 많다.

그런데 이러한 유목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원격근무도 재택근무도 그 전제조건은 개별 작업이 분업을 넘어 규격화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음을 용납할 정도의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 신뢰와 규격화의 수준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일꾼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괜찮으려면 결국 ‘근태’와 ‘도열’이라는, 근대적 조직 문화조차 수긍할 만한 가시적 작업 흐름이 형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협업 환경이 오랜 세월 디지털화한 업종일수록 노마드화하기 쉽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콘텐트 크리에이터, 작가나 출판계처럼 일의 결과물이 디지털 친화적이고, 그 진척 상황과 의견 교환 또한 디지털로 완결될 수 있는 일들 속에서 디지털 노마드가 태어나기 쉽다. 쌍방이 납득할 만한 산출물을 평가할 수 있는 규격이 있기에 굳이 언제 어디에서 일하는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얼굴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보다는 요건과 과제를 디지털로 확인하고, 서로 체크 마크를 붙여 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협업의 길일 수도 있음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오픈 소스 문화는 입증했다. 이 극단적 효율의 문화를 조금 더 범용 회사 업무로 확장시킬 수는 없을지 기성 기업들도 고민하기 시작했고, 흔히 말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 등 기업마다 추진하려 애쓰는 변화 운동이라든가 슬랙(Slack) 같은 클라우드 기반의 팀 협업 도구의 유행은 이를 뒤따르게 되었다. 더 많은 일들이 그렇게 규격화되고 또 그 일처리를 신뢰하게 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은 올라갈 것이다. 또한 일이 일부의 일자리에 고착되는 대신 모두의 일거리로 자유롭게 나뉠 수도 있을 것이다.

출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떠나서 정해진 시간에 매일 출근할 수는 없는 이들의 사정이 있다. 잠재성과 역량이 있음에도 시간과 장소의 속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경력이 단절되어 버리고 마는 부조리는 우리 사회를 괴롭혀왔다. 육아 등으로 재택을 해야만 하는 명백한 경우도 있지만, 주거의 부담가능성(affordability)은 더 광범위한 문제다. 특히 한국처럼 경제 활동의 중추가 수도권 일극에 매립된 경우는 더하다. 편도 2시간의 출퇴근 지옥을 견딜 수 있는 체력도, 지근거리에 부동산을 얻을 경제력도 노동의 전제조건이 되어선 안 될 것 같은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 버렸다.

디지털 노마드는 시대적 필연


우리는 일본에서 목격되는 시골 노마드를 참고해볼 만하다. 지자체의 젊은 인구 유치 활동의 일환인데, 여백이 있는 시골에서 도심의 일을 가져다 하라고 유혹한다. 도심의 부동산, 교통, 불안감에 지친 이들은 생활의 질 향상이라는 시골의 유인책에 혹하게 된다. 지금의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란 분명히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단순한 고향으로의 유턴이 아닌, 생소한 지역으로 도심에서 역진출함으로써 타 지역과의 교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지자체는 폐교(閉校) 등을 활용하여 지역 활성화 센터를 꾸리고, 도심에서 스타벅스나 위워크(WeWork)도 꿈꾼 제3의 장소(3rd place, 집과 일터 이외의 사회적 공간)로 그곳을 포지셔닝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은 떨어져 일하는 것을 원격 근무 같은 유별난 어감의 표현 없이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정부 기관도 지방으로 분산되었지만 각종 첨단 네트워크 장비로 원격회의를 하는 대신 공무원이 KTX의 최우수 고객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을’은 ‘갑’의 눈앞에 보여야 한다는 오랜 전통은 쉽사리 깨기 힘들지만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그렇지만 유목민으로의 길이란 쉽지 않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안정적인 조직의 축사가 그리워지는 것 또한 사람 마음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귀속이 주는 안도감은 털어내기 힘들다. 집과 마을을 나서는 일은 쉽지만, 수렵도 채집도 쉬울 리 없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익숙해진 신체는 간헐적인 수입에 금방 피로감을 느끼고, 또 그마저도 끊기는 날에 대한 쇼크에 단련되어 있지 않다. 길을 나선 노마드에게는 마패도 자격증도 없다. 길에서 만난 조직이 떠돌이에게 꼭 일을 줘야 할 이유란 애초에 없다. 나를 왜 써야 하는지, 왜 내 보수는 높아야 하는지를 언어화할 수 있어야 하지만 대개 준비되어 있지 않아 좌충우돌하기 쉽다. 일을 하기 위한 정량적 기량과 경험에 더해 수시로 일을 따내기 위한 인맥과 인간적 매력과 같은 정성적 역량 또한 필요한 일이니, 일상적 직장생활보다 더 많은 준비와 경험과 지식이 든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디지털 노마드가 “나는 자유롭게 일한다! 봐라, 나 자유롭지?”라고 주장하는 일종의 패션 트렌드에 불과하다는 시각 또한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저 프리랜서의 또 다른 호칭일 뿐, 의식 있어 보이려는 이들의 잘난 척이라는 시각이다. 성공 체험의 사례화만으로는 이것을 하나의 범주로 볼 수 없기에, 디지털 노마드만의 보편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정주적 업무관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부정적이 되곤 하는데 손쉽게 아무나 벌일 수 있는 일은 아님에도 무책임한 퇴사 권유, 이민 권유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걱정도 이해는 간다.

특히나 보안과 같은 관리적 불안 때문에 결국 노마드들이 하는 일은 주변적 업무에 국한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팀의 결사(結社)가 필요한 일이기에, 노마드를 가치 있는 일에 영입하기란 기업으로서도 쉽지 않다. 자유가 남용 및 오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오해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단체 메일만으로 회의를 하면 높은 확률로 감정적 오해가 생긴다. 미국 실리콘벨리의 야후처럼 한때 리모트 워크를 권장하다가 그만둔 사례도 있다(그만둔 후 오히려 그 기업은 더 쇠락해갔으니 원인치료가 아닌 증상치료였었던 듯싶다). 많은 일류 ICT 기업들이 완전한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대신 회사를 집처럼 편하게 만들려고 애쓰며 어떻게든 직원들을 출근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물리적으로 함께 하는 일의 중요성과 가치가 엄연히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환상과 현실

페이스투페이스(face-to-face)파는 늘 대면의 가치를 역설한다. 사람과 얼굴 맞대며 일하는 건 생각하며 말하며 뇌를 쓰기 때문이고, 시너지는 그때 비로소 발휘된다는 것인데 설득력 있다. 또한 노마드는 주로 홀로 있다 보니 워커홀릭이 되거나 아니면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양극단으로 빠지게 되는 위험도 있다. 도 아니면 모가 아닌 중용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기 규율은 힘든 일이기에, 일한다고 해놓고 집에서 분명히 낮잠 자고 게을러지는 일도 실제로 벌어진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작은 시행착오부터 겪어보는 것이 좋다. 다행히 만약 현재 직장이 있다면 부업이나 재능기부로 자신의 가치를 ‘베타 테스트’해보는 것도 좋다. ‘저 사람과 일하고 싶다.’ 밖에서 이런 느낌이 안 든다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 광야의 삶이어서다. ‘저 사람과 엮이고 싶다.’ 이런 느낌을 만드는 것이 결국은 영업력이니, 사실 굉장히 잔혹한 행로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한번 책상을 비워보자. 여러 생각이 들 것이다. 노트북 한대로 내가 무슨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손꼽아 보자. 또 다시 여러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직장 내에서도 디지털 노마드의 마음가짐은 시대적 요청이다. 정말로 일을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일해야 일이 잘 된다면 그것이 바로 생산성 개혁이다.

새로운 만남이라는 자산, 밖에서만 생길 수 있는 기회란 것도 있다. 회사 사무실에서는 전혀 진척이 안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일이 있다. 아무리 해도 한 줄도 못 나가는 상황에서 기분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바다. 또한 모두 회사의 축사를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근래 이야기되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립을 통해 30~40대 등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것)’라는 트렌드도 내게 가능한 수준의 소박한 경제적 자유를 찾고 그 길을 먼저 가보자는 것이기에, 디지털 노마드의 철학과도 이어져 있다.

디지털 노마드는 달라진 ICT 환경에 의한 사회적 과제 해결의 일례가 될 수 있다. 대기업 취업과 공무원이 되는 길이 비좁은 것은 청년 각자의 책임이 아닌데 자신을 과하게 채찍질하며 독서실과 문제집에 파묻혀만 있다. 감사의 미소가 있는 현장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근래에 긱 이코노미, 즉 디지털화한 임시직과 일용직(=gig) 중심의 경제 현상이 줄곧 화두다.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모두 조금 쓰고 버리는 일거리의 시대가 된다 하니 곱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 추세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의 47%, 그리고 5700만 명의 국민이 어떤 형태로든 프리랜싱을 하고 있다고 하며 이들이 1조4000억 달러어치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생동감 있는 사회적 변화의 토양이 되고도 있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촉매

처음에는 누군가가 나눠준 긱(gig)에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렇게 작은 시작을 하고, 고객을 만들고, 언젠가 직원을 만들고, 이 사회의 중요한 조직으로 커가는 이 긍정적 순환이야말로 우리도 키워가야 할 창업가 정신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체험, 그 사고방식의 변화가 우리 각자의 라이프 워크(life work)를 찾는 길로도 이어질 수 있다. 고시생이 느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한국에서 노동 관련 논쟁은 벤처기업도 대기업도 모두 어떻게 이미 뽑은 한줌의 직원을 일터에 주 52시간(40시간도 아니고) 이상 붙잡아 놓을지에 대한 것뿐인 듯하다. 그 시간을 아예 재지 않는, 집에서 혹은 원하는 곳에서 마음대로 일하게 하고 그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노마드 워크의 길은 당분간은 요원해 보인다. 더 많은 이들과 일거리를 나누는 일도 이 단계에서 덩달아 막히게 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모든 구태로부터 떠나는 이들, 새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모두 지향하는 바는 하나다. 어떤 상황에도 우리에게는 회사 인간이 되는 길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여전히 있다는 것. 용기를 잃고 회사만이 전부라고 생각해온 우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발걸음이다.

-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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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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