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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나를 죽이지 못한 건 나를 더 강하게 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의 ‘호메시스 효과’… 아주 적은 양의 방사선은 이로울 수도

▎영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1931)의 한 장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높은 학식과 고결한 인성, 뛰어난 언변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지식인의 민낯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가 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한다. 150여 년 전인 19세기말 영국 빅토리아 시대도 다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의 존경이 보장된 유복하고 사랑받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악명높은 살인자, 교수대에 매달릴 사람이 되어 있었어.”

지식인의 위선 꼬집은 고전

헨리 지킬은 어느새 에드워드 하이드로 변해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기이한 이야기(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는 지식인의 위선을 꼬집은 대표적인 고전이다. [보물섬]의 저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1886년 단편소설로 썼다. 이를 원작으로 미국 브로드웨이는 [지킬앤하이드]를 내놨다. 1997년 초연된 이 뮤지컬은 스릴러에 원작에는 없는 로맨스를 가미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는 지킬 박사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의 시각으로 풀어나간다. 어터슨은 지킬 박사로부터 기이한 유언장을 받는다. 자신이 3개월 이상 행방불명되거나 설명없이 사라질 경우 친구인 하이드에게 1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전 재산을 물려주라는 내용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유언장. 하이드를 수소문해 보니 ‘어딘지 불쾌하고 아주 혐오스럽고 고약한 기분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혹시 지킬은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터슨은 골목에서 우연히 하이드를 마주치지만 답을 얻지는 못한다. 어렵사리 만난 지킬에게서도 의문점을 풀지 못한다.

1년이 지난 어느날 새벽 런던 시내에서 하원의원인 커루가 하이드에 의해 살해된다. 하이드에게 수천 파운드의 현상금이 걸리지만 그는 돌연 사라진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 사건은 지킬의 친구였던 래넌 박사가 ‘갑작스런 충격’으로 사망한 후 어터슨에게 보낸 편지로 다시 불지펴진다. 편지 겉면에는 ‘지킬 박사의 사망이나 실종 때까지 열어보지 말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칩거에 들어간 지킬은 만날 수도 없다. 도대체 지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신사다. 변호사 어터슨은 ‘몰락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최후를 지키는 명예로운 지인’으로 ‘성격이 좋아 두루 우정을 배푸는’ 사람이다. 지킬을 의심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몰아부치지 않는다. 그의 친척 엔필드도 ‘사교성이 좋아 런던 시내에 두루 알려진 신사’로 ‘남을 함부로 탐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지킬의 친구 래넌 박사도 ‘다정하고 건강하며 말쑥한, 혈색 좋은 얼굴의 신사’로 입이 무겁고 타인의 명예를 존중한다. 지킬의 비밀을 알게 되지만 끝내 발설하지 않는다. 지킬은 신사 중의 신사다. 최고로 예의 바른 사람, 명성도 있는 데다 선행도 하는 도덕가다. 수많은 런던 신사의 친한 손님이자 유쾌한 사람으로 알려진 저명 인사다.

이와 달리 하이드는 멀리서도 혐오감을 주는 ‘사탄의 이름이 적힌 얼굴’을 갖고 있다. 그의 미소는 불쾌하고, 말투에 목이 쉰 데다 과거에 느껴보지 못한 강한 혐오감과 공포감을 갖고 있어 야만인 같기도 하다. 영국 신사들의 세계에 갑자기 뛰어든 하이드는 아무리 봐도 연결고리가 없다.

지킬 박사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신사가 지향하던 이상적인 인물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 신앙심, 타인에 대한 자비심을 갖고 있다. 신사들은 높은 통제력으로 내면의 욕망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불명예는 한치도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 몸에서 악을 분리해버린다면 완벽한 신사가 될 수 있을까.

호메시스 효과라는 것이 있다. 방사선은 몸에 해롭지만 아주 적은 양의 방사선이라면 몸에 좋을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많은 양의 방사선을 쬐면 유전자 돌연변이나 암이 발생할 수 있지만 적은 양의 방사선은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되레 높일 수 있다. 몸이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저항하면서 더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메시스 효과는 미국 미주리대 러키 교수가 주창했다. 우라늄광산 주변에 있는 한 마을 주민들이 오래 살아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이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라돈온천이나 라돈침대가 한때 인기를 끈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니체의 말과 맥락이 같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통제에는 소량의 마약 성분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트라마돌이 진통제로 처방되지만 미국에서는 마약류로 관리된다. 벌의 독은 때로 인간에 치명적이지만 독을 추출해 잘 정제해 벌침(봉침)으로 놓는다면 약이 될 수도 있다. 자외선을 너무 많이 쬐면 피부암의 원인이 되지만 적당한 썬탠은 비타민D를 합성시킨다.

이덕희 경북의대 교수는 저서 [호메시스-건강과 질병의 블랙박스]에서 “더위와 추위 등 외부 기온의 변화는 생명체에 스트레스를 줘서 개체를 더욱 강하게 해준다”며 “좀 덥더라도, 좀 춥더라도 기온의 변화를 느낄 정도로 우리 옆에 두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여름에 겉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에어컨을 세게 틀고, 겨울에는 반발에 반바지로 지낼 정도로 난방을 빵빵하게 해버리면 호메시스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에도 호메시스 효과가 작동한다. 대부업은 흔히 고리대금업으로 취급받지만 경제 생태계 전체로 보자면 필요한 존재다. 제1, 제2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 못하는 경제 주체들이 마지막으로 급전을 융통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호메시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 재편, 금융시스템 개혁 등은 경제위기 때 단행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다만 유의해야할 점이 있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소량’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소량의 범위를 넘어버리면 치명적일 수 있다. 예컨대 만성 스트레스는 암을 유발시키고, 과도한 일교차는 노약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과도하게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대부업자는 시장경제를 망친다. 호메시스 효과는 독성 물질을 정당화시키는 데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는 호메시스 효과를 근거로 후쿠시마에서 방출된 소량의 방사선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위기가 때로 경제체질을 바꾸기는 하지만 서민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는 점에서 경제위기를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넌센스다.

긍정적 영향 줄 수 있는 소량이란…

지킬 박사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고 실토한다. 원래는 경박하고 참을성 없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명예롭고 훌륭한 미래가 보장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를 감추어야 했다는 것이다. 경박하고 참을성 없는 성격은 일반인에게는 허용된 악이지만 지킬 같은 지식인에게는 용인될 수 없었다. 하지만 영원히 봉인되는 욕망이란 없다. 명예를 지키면서도 일탈을 하고 싶었던 지킬은 선과 악, 둘을 분리해내는 약물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지킬은 분리해낸 선과 악이 제각기 자기 삶을 즐길 것으로 기대했지만 착각이었다. 지킬은 점차 하이드로 변해간다. 생각보다 하이드라는 절대악의 독성은 강했다. 지킬은 “선과 악, 둘 중의 하나가 나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나는 둘 다”라고 뒤늦게 깨닫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필요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지킬이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이드라는 절대악마를 불러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509호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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