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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경제(끝) 소확행의 시대] 작지만 소중한 행복은 아니다? 

 

확실하게 소비할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일 뿐... 빚 안고 사회생활 시작하지만 월급은 적어

▎사진:© gettyimagesbank
스물여덟의 한 청년이 어느 봄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집 근처 호숫가의 숲 속으로 들어간다. 청년은 집터 바로 옆에서 자라던 백송나무들을 한 그루씩 베어 넘긴다. 그는 이 나무들을 사방 여섯 치의 각목으로 만들고, 양면만 다듬은 통나무로 기둥을 만들었으며, 한쪽 면만 다듬어 나무껍질을 그대로 남겨 놓은 것으로 서까래와 마루에 깔 널빤지를 준비했다. 청년은 4월 중순엔 근처 빈농의 낡은 집 한 채를 사서 해체해 판자까지 확보한다.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도끼를 든 지 석달도 안 돼 청년은 지붕을 올리고 유리창을 달아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집 한 채를 온전히 완성한다.

'월든'은 소로우의 가계부이기도

그는 7월 4일 이 집에 입주한다. 100일 만에 미국 코네티컷주 콩코드 인근 월든 호숫가에 집 한 채를 지은 청년의 이름은 핸리 데이빗 소로우다. 그는 서른살이 되던 1847년까지 이 집에 살았다. 이 경험을 담은 책 [월든]은 출간까지 7년이 걸렸다.

우리는 [월든]이 대자연에서 혼자 살면서 문명사회를 비판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일종의 자연예찬론이자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원조쯤으로 기억한다. 책 전체를 보면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로우가 집을 지은 건 그저 문명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경제적인 이유로, 그러니까 돈이 없어서 혼자 집을 짓고 살 생각을 했다.

실제로 책에는 집 짓는 데 쓴 못 하나에 얼마가 들었고, 판자는 얼마인지 등 전체 건축비를 자세히 밝히고 표로 정리해놓기까지 했다. 소로우는 총 건축비가 28달러12.5센트라며 뿌듯해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소로우는 자신이 하버드대학을 다닐 때 학교 기숙사 방보다 조금 더 큰 방을 월세 2달러50센트에 빌렸었다며 으쓱거린다. [월든]은 소로우의 경제생활을 자세히 기록한 가계부기도 하다. 그는 입주 후 8개월 동안 쌀, 설탕, 2센트짜리 수박 등 식비로만 모두 8달러74센트를 썼다. 1년 동안 이 호숫가의 집에서 살면서 쓴 돈은 총 61달러였고, 감자 옥수수 등을 경작해 팔아서 번 23달러를 포함해 36달러를 벌었다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가 2년 2개월을 살고 호숫가를 떠난 이유 중에는 (비록 책에서는 집을 한 채 마련한 비용이라고 합리화 하지만) 1년에 하버드대학 기숙사 방세 이상 적자를 냈던 것도 속해 있을 것이다. 돈을 벌고, 아끼고, 건축비를 치열하게 아껴가는 사이 사이 소로우는 문명사회의 사치를 비판하고 호숫가 생태계의 아름다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혼자 산다는 것,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을 고민한다. 소확행을 꿈꿨지만 이를 자신의 인생에 정착시키진 못했다. 사회와 자연, 자립과 경제적 독립을 목표로 버텨낸 몇년이라고도 읽힌다. 그래서 [월든]은 현대 ‘솔로경제’의 순환도와 닮은 부분이 있다. 소확행은 확실하지 못하고, 대확행은커녕 중확행도 이루기 힘든 그런 삶 말이다.

비혼과 미혼이 오직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론 무책임한 해석이다. 비미족(비혼·미혼족)의 선택은 경제적인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어느 시점에선가 현 경제시스템 아래서 더 큰 빚을 만들어가며 3인, 4인 혹은 5인 가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은행과 저축은행, 대부 업체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로운 (한마디로 빚을 덜 만드는) 1인 가구가 될 것인지 강요 받는다. 부모의 도움이 없는 사회초년생들은 일단 학자금대출이라는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가장 많은 일자리가 있는 서울 시내에서 스스로 벌어서 적절히 쾌적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은 선택 받은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결혼을 선택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건 (운이 좋다면) 30대와 40대를 통째로 갈아서 만든 작은 집 한 채, 그리고 느닷없이, 준비 없이, 그리고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소득의 절벽과 노년기다.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미 나의 꿈을 꾼다는 것조차 불경스러워 퇴사라는 옵션조차 없는 삶에 푹 빠져있을 것이다.

평범한 청년이 기적적으로 취업에 성공해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스스로 일궈낼 수 있는 수준의 자산이라는 건 과연 실존하는 것일까?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올 8월 전국 417개 대학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에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대학생 수는 46만267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재학생 중에서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학생의 비율은 13.9%였다. 학자금 목적을 제외하고 대학생들이 은행권에서 받은 대출금은 2017년 말 현재 1조원을 넘겼다(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2014년 말에는 6193억원이었는데, 3년 만에 무려 77.7%나 늘어났다. 2018년 7월에는 더 늘어나 대학생들의 빚은 1조1000억원, 대출 건수도 무려 10만건을 넘겼다. 연체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연체액은 2014년 말 21억원에서 2018년 7월 55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연체 건수는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일궈내는 부의 수준을 측정한다는 게 무의미해 보인다.

유럽화된 청년실업률을 격파하고 신입사원이 되는 이들은 이제 30대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취업 사이트 사람인이 올해 신입을 뽑은 기업 431곳을 조사해 보니, 신입채용에 30대 지원자가 있었다는 응답이 77%를 넘겼다. 전체 지원자의 42%가 30대 이상 지원자였다. 2018년보다 무려 37.9%나 증가했다. 특히 중소기업(39.9%)과 중견기업(32.6%)에 몰려있었다. 다른 취업 사이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올해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4060만원이었지만, 중소기업은 2730만원에 불과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수출 대기업 입사에 실패하고 나이는 이미 30을 넘은 신입사원들은 이제 노후 대비 저축조차 하기 힘들다. 신한은행은 ‘2018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서 직장인의 26%가 노후 대비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나마 저축을 해도 월 평균 26만원에 불과했다. 이 은행이 조사한 대한민국 ‘보통사람’들의 평균 월급은 285만원이었다. 저축을 하지 않는 이유는 20대, 30대, 40대, 50대 모두 “돈이 없어서”였다.

“돈이 없어서” 노후 대비 못하는 이들의 선택

그래서 나온 게 소확행이다. 우리는 어쩌다 마음에 드는 필기구 하나를 사거나, 아침마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는 정도의 확실하게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의 행복이다. 어쩌다 좋은 취향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 좋은 책을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읽고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취향 서비스’를 큰맘 먹고 결제할 수도 있다. 소확행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그 정도에서 만족하라고 사회의 경제 시스템으로부터 강요 받는 삶이 아닐까?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얘기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맛있는 빵집을 발견하는 수준의 낮은 난이도면 만족한다는 별것 아닌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미혼과 비혼들에게 소확행은 확실히 소비할 수 있는 정도의 행복이다.

-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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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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