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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로제의 미학] ‘과도한 동기화’ 빠진 근로문화 개선될까 

 

직장상사만 위한 피곤한 대기 상태 강요돼… 노동생산성 높이는 충격 요법으로서 필요

▎사진:© gettyimagesbank
사장님들은 대개 주 52시간 근로 규제를 싫어한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 기업가나 마찬가지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주 40시간씩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했고, 알리바바의 마윈 전 회장은 “996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라고 했다. 996이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6일간 일하는 것을 말하는데, 초고속 성장의 중국 스타트업 위주로 퍼져나간 근무문화(工作制)다. 하지만 심지어 중국에서도 엄연히 노동법(주당 44시간에 월 최대 한도 36시간) 위반이다.

사장님들 본인이 창업할 무렵의 나날을 돌이켜보면 열정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처럼 열정을 가지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를 ‘허슬 컬처(Hustle Culture)’라 부른다. 워커홀릭의 순화어 같지만 이 문화는 선망의 대상인 미국 실리콘밸리 라이프스타일이라며 유행처럼 수입되곤 한다. ‘나 때는 말이야 몇 시간씩 일했다’는 이야기는 성공한 누구에게나 무용담의 도입부가 된다. 실제로 근로 시간은 승진 및 보상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하게 하라는 것.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반감을 사곤 하는데, 그 이유는 사장님의 일과 종업원의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갑의 시간과 을의 시간

현대 자본주의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일이 있다. 하나는 일을 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그 구조 안에 들어가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이다. 도구의 인간인 우리에게 그런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일이란 창조적이고 또 재미 있어서 주 40시간, 아니 52시간은커녕 100시간 이상을 태연히 해내기도 한다. 리더의 시간은 잘도 흐른다.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조정하는 자유재량권이 일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조직도 자신도 성장했음을 느끼곤 하니 그 시간 동안은 자기계발을 한 느낌이다. 왜 공부를 주 52시간 이상 못하게 하느냐는 반발은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진지하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그들이 만든 구조 안에 들어가서 자신의 시간을 팔아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월급·시급 노동자들이다. 이쪽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잘 흐르지 않는다. 참고 버티며 과하게 노동하게 되면 역량과 건강 모두 삐걱거리게 된다. 많은 나라가 법정노동시간을 주 40시간 이하로 설정하고 있는 이유는 노동자 개인으로부터 추출 가능한 노동량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을 자제하라고 어느 나라나 근로기준법을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마치 갑의 시간, 을의 시간이 따로 있는 듯 전자의 사장님 혹은 리더들은 후자의 노동자 입장을 모르거나 종종 잊곤 한다. 자본주의 최전선에 선 사업가들이 “상품 가치란 투입된 노동시간에 따른다”는 전근대적 마르크스 노동가치설을 신봉하는 것만 같은 넌센스가 펼쳐지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볼멘소리에는 중국과의 경쟁이 빠지지 않는다. 노동법마저 무시하며 996 문화를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자들에 이길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시급 노동자의 노동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일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구조 자체의 품질이다. 애초에 그 구조 설정에 경쟁력이 없었다면, 예를 들어 어떤 게임 회사가 리더의 취향에 따라 재미없는 게임을 기획했다면 아무리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해도 수습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실패한 사업들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다소 비겁하지만 후자를 탓하곤 한다.

52시간이란 굉장히 긴 시간이다. 실제로 주 52시간을 넘기기 위해서는 출퇴근 1시간의 도심의 경우 아침 8시에 집에서 나와 밤 11시에 귀가하는 생활을 매일 지속해야만 한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인생의 한때는 그 이상 일했던 시절이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축나기 시작한 신체를 젊음이 갚아주고 있었을 것이고, 어느 순간 노화와 병마는 그 빚을 받으러 찾아올 것이다(호주 국립대의 연구 결과 건강을 위한 마지노선은 주 당 39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들이 왕년에 주 몇 시간을 일했다는 노동 시간 자랑을 아무리 해봐도, 그 시간은 갑의 시간이었거나 을의 시간이었더라도 ‘멍 때리는’ 시간이나 겉으로만 일하는 척하는 ‘힘 조절’이 포함된 저생산성 함수의 분모였을 수도 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한심할 정도로 낮은 상태다. 늘 사랑과 낭만을 구가하며 태평한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도 낮다. 노동생산성이란 단위 노동 시간당 만들어낸 부가가치다. 우리는 부가가치 낮은 성과를 내면서 엄청나게 오랜 시간 일을 하는 척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영리한 경영자들은 자신의 경험상 이를 잘 알고 있다. 더구나 경영자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의 형사 처분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들의 다음 발걸음은 노동자들도 자신처럼 주 52시간 내내 노동만 하지는 않았음을 증명하는 길이다.

1년 전 외부 칼럼에서 주 52시간제가 도입될수록 인공지능 등 각종 기술을 활용,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파악하고 싶어질지 모른다는 예측을 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디지털 기술력이 되는 회사들은 한둘씩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근무시간에서 제하는 마이크로 근태 관리 시스템은 새로운 성장 시장에 속하게 될 것이다. 구조를 만드는 이도 그 안에서 일하는 이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디스토피아가 찾아오고 있다. 개인에게도 기업에게도 바람직할 리 없는 아슬아슬한 절충 상태다.

다들 모두 열심히 일했다지만 고용은 별로 늘지 않고, 창의력 있는 성장 산업이 특별히 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변화를 위해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덜 일을 해보는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의 시대, 오히려 이러한 규제의 제약조건은 고맙게도 결정적 산업 구조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업계가 자신의 사정을 봐달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판이 주 52시간제를 철저히 지켜 기생충이라는 명작을 내놓은 것처럼, 관성적인 종래 업무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명분으로 삼지 못할 일도 없다. 지금 한국 기업의 근로 문화는 과도한 동기화(Sync) 상태에 있다. 일을 주고받고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모두 피곤한 대기 상태를 강요받는다. 회사에는 있지만, 가치는 만들지 않는 멍한 시간이 다발(多發)하는 이유도 바로 이 강제적 동기 상태 때문이다. 얼마나 사무실에 버티고 있었느냐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조직의 산출물에 기여했느냐를 평가하고, 언제나 상사를 위해 ‘대기 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지어 집에서) 각자의 적성에 맞는 방식으로 집중해서 하는 비동기(Async) 업무 문화가 필요하다.

미래는 더 느슨하게 동기에서 비동기로

서로를 잠시 잊고 일에 매진하게 하는 비동기의 느슨한 일터는 주기적인 동기화 때만 서로를 체크한다. 시간적 여유는 창의력마저 자극할 것이다. 부지런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것으로 성실성을 평가하는 시대 대신, 진짜 일을 하는 일에 의미를 찾는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란 것이 있다면 그런 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나 생산직처럼 동기화가 필요한 업무도 당연히 있다. 이처럼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근로기준법을 지키게 하고, 그 구조를 만드는 사람은 허슬 컬처에 잠시 빠지게 해도 좋다. 그런데 후자를 구분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개중에는 분위기에 속아 자신이 주요한 설계자라고 착각한 채 시키는 일만 하다가 과로해 버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일을 시켜야 한다면 지분을 줘 임원을 시키면 된다. 아니면 일본처럼 연봉 1억원 이상이거나 평균 급여의 3배 이상을 받으면 고도 프로페셔널이라며 노동기준법의 규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특례를 만들어도 좋다. 의외로 이 세상의 많은 아리송한 부분은 대부분 돈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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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호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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