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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마완 카르타자야 마크플러스 회장] 신뢰·생태계 구축이 아세안 진출의 관건 

 

장기적 안목에서 현지 기업과 연대 강화해야… 소비재 부문에서 6억 인구의 욕구 파악 필요

▎헤르마완 카르타자야 마크플러스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아세안에서 성공하려면 생태계 구축을 위한 중장기 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사진:김현동 기자
정부가 11월 24~27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신남방정책을 항로에 올렸다. 아세안(ASEAN) 국가들과 경제적으로 협력을 강화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안보적으로는 북핵 대응 공조에도 나선다. 아세안 국가들도 중국·일본 경제로의 종속을 피하기 위해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이에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에 연 25만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짓기로 하며 협력 강화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는 일본이 이미 선점한 시장이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의 경우 일본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98%에 달한다. 여기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내세운 중국 자본의 공습도 무지막지하다. 이에 헤르마완 카르타자야 마크플러스 회장을 만나 한국 기업이 아세안 시장에서 필요한 점과 승부처는 어디인지 물었다. 마크플러스는 마케팅 컨설팅 기업이다. 헤르마완 회장은 세계적 마케팅 석학 필립 코틀러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와 [마켓 4.0]을 함께 쓰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창조경제부 아시아·태평양 총괄국장이기도 하다. 헤르마완 회장은 “현지에서 신뢰를 쌓고 자신만의 공급사슬을 구축하는 장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세안 국가들이 집중하는 산업 분야는.

“소비재다. 아세안 시장의 인구는 6억 명에 달하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모두 잘 되고 있다. 한국·일본처럼 성장하는 산업에 모두 뛰어들어 경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시장이 크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유니콘기업도 나오기 쉽다.”

많은 한국 기업이 아세안에 진출하지 않았나.

“일본이 가장 오래됐고, 지배적 사업자 위치에 올랐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파죽지세로 들어오고 있다. 한국은 주로 선진국의 문을 두드렸지, 아세안을 중요한 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메콩강 5개국(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에 한강의 기적을 만들길 바란다.”

최근 아세안 경제의 트렌드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욜로’다. 젊은 세대는 소유보다는 경험에 투자한다. 최근 젊은층의 소비 패턴은 5A(Aware·Appeal·Ask·Act·Advocacy)로 정의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제품을 접하고 매력을 느끼면 주변에 물어보고, 지지행동을 펼친다.”

인도네시아는 왜 수도를 이전하나.

“자카르타에 집중된 인프라를 분산시키기 위해 수도 이전을 추진 중이다. 칼리만탄주에 현대적이고 기술집약적 스마트시티를 지으려 한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을 목표로 잡고 있다.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비즈니스에 필요한 점이 있다면.

“현지 기업들과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수도 이전과 관련해 현대건설이 이미 계약을 한건 따냈는데, 현지 하청 기업들과 연대하면 연쇄 계약 체결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기업은 ‘빨리빨리’ ‘톱다운’ 문화가 있어 단기 성과에 집중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바로 떠나버리는 경향이 있다.”

일본, 현지 기업 육성해 동반성장

일본 기업들은 어떤가.

“의사결정이 느린데 비해 한번 정하면 약속을 칼 같이 지키고 일관성이 있다. 현지 기업들과의 강한 네트워크로 생태계를 구축했다. 정부도 좋아한다. 또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 도요타가 만든 ‘KIJANG’은 인도네시아의 국민차다. 일본에서 만들어 온 게 아니라, 일본의 기술과 제조 방식만 들여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체형과 지형지물, 문화 등을 반영해 만들었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현지화 전략이 부족했나.

“한국이나 인도에서 잘 팔린 차를 들여와 판매하기 바빴다. 고가인데 비해 시장성은 떨어졌다. 중국은 후발주자임에도 현지에 맞는 품질 좋은 차량을 합리적 가격에 팔고 있다. 삼성과 LG가 잘 되는 것은 이들을 이길 경쟁사가 없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판세가 뒤집힐지 모른다. 물론 CJ나 포스코처럼 인도네시아에서 잘 하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차가 동남아에서 도요타의 아성을 깰 수 있을까.

“도요타가 아스트라인터내셔널이라는 현지 파트너를 가진 것처럼 현대차도 판매, 부품 등과 관련한 강고한 현지 동맹이 필요하다. 또 전기자동차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현지인들이 무조건 싼 것을 좋아한단 생각을 버려야 한다. 소비자들의 어려움과 갈망을 분석해야 한다. 단기간에 승부를 내려고 해서는 일본을 이기기 어렵다.”

일본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같은 전략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나.

“한국 기업의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많다. 개발도상국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을 현지 제조, 판매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또 큰 인기를 누리는 K팝을 활용할 수 있다. 일본은 늙은 이미지인데 비해 한국의 이미지는 젊다.”

한류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일본 산업이 동남아에서 급팽창하던 1974년 제국주의란 비판이 일며 큰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일본 기업 빌딩에 불을 지를 정도로 격렬했다. 그렇지만 일본은 소프트파워와 강고한 가치사슬을 통해 인도네시아 시장에 스며들었다. K팝의 인기가 많지만, 너무 한국적인 것을 내세우면 시장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개인적 선호가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국과의 경쟁도 치열하지 않나.

“중국의 울링(Wuling)이 인도네시아 진출 3년 만에 자동차 시장점유율 4~5%를 달성했다. 저렴하고 제품 수준도 좋다. 다만 반중정서가 강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경계심이 있다.”

아세안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화교들이 중국 자본과 손잡지 않나.

“물론 화교와 중국 본토 자금이 연대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중국 자본이 화교 기업을 밟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 영역 싸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화교들의 정체성은 중국과는 다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이미지가 좋아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베트남 편향 벗어나 아세안으로 눈 돌려야

한국 기업들은 아세안보다는 베트남에 매력을 느끼지 않나.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정치적 위험이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어딜 가든 정부 고위 관료들과만 친분을 쌓으려고 한다. 당이 한국 아닌 다른 국가 기업을 선택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도 아세안 진출 기회가 있나.

“물론이다. 현지 소비자를 이해하고 시작해야 한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DNC라는 벤처캐피털(VC)가 한국의 한 사이버 보안 회사에 투자한 바도 있다. 한국 스타트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때 현지 투자를 받으면 시장에 안착하기 좋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유니콘은 성장 가능성이 큰가.

“이익이 없는 성장 중이다. 매출 증대와 밸류에이션에만 신경 쓰기보다 수익이 발생하는 내실 있는 성장을 해야 할 때다. 유니콘이라도 기업공개(IPO)를 하면 다 떨어진다.”

아세안 진출을 염두에 둔 한국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중국과 일본에는 악감정이 있지만, 한국에는 악감정이 있을 이유가 없다. 현지 시장을 이해하는 먼저다. 그리고 약속을 꼭 지켜 신뢰를 쌓아야 한다. 한국의 자금력이나 기술력이 높다고 교만해서는 안 된다. 친한 감정을 강화해야 한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13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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