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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미국·이란 갈등 속 불안한 균형 유지 전망 

 

두 나라 모두 전쟁 벌릴 처지 못돼… 주가 변동성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듯

▎사진:연합뉴스
1979년에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추방됐던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끈 혁명으로 친미 팔레비 정권이 붕괴됐고, 팔레비는 미국으로 도망갔다. 미국이 팔레비의 입국을 허용하자 테헤란 시민들이 미국 대사관을 점거해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억류했다. 궁지에 몰린 카터 대통령이 1980년 4월 특공대를 동원해 인질을 구출하고자 했으나, 요원을 태운 헬기가 중간에 사막에서 추락하면서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전쟁 변수보다는 경제 상황이 상수


이 사건으로 카터 행정부는 대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려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1980년 선거에 다시 나섰지만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에게 538대 0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참패했다. 1981년 1월 레이건 대통령 취임에 맞춰 인질은 풀려났다. 이란 인질 사태는 베트남전 패배로 좌절감에 빠진 미국인에게 국력의 쇠락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새해 주식시장을 뒤흔든 미국의 이란 군부지도자에 대한 공격은 이런 오랜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따라서 사태의 근원이 깊은 만큼 공격 후유증이 오래갈 가능성이 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란과 갈등이 나쁘지 않다. 묵은 감정이 있는 곳과 다툼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됐으면 됐지 깎아먹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란은 공격을 받은 입장이어서 유화책을 내놓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상황이 계속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조용해질 텐데, 두 나라 모두 전쟁을 할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1990년 걸프전 당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병력을 중동으로 옮겨 전쟁을 준비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선거를 열달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 이란도 대응카드가 마땅치 않다. 미국이 석유 수출국으로 올라선 상황에서 ‘원유협박’은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호르무즈 해협을 막아 세계 석유 유통을 방해해 봐야 이란만 욕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당분간 불안한 균형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주가의 반응은 약해진다. 시장 바깥에서 발생한 문제는 주가에 짧고 강하게 영향을 준 다음 빠르게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란에 대한 공격으로 급변했던 주가가 빠르게 균형을 찾고 이후 반응이 약해질 걸로 전망된다.

지난 30년 동안 중동문제로 주가가 요동을 쳤던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첫번째는 걸프전이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돼 1991년 2월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직후 주가가 하락했지만 미국이 다국적군을 결성해 전쟁 준비에 나서자 곧바로 회복됐다. 정작 눈에 띄는 주가 움직임은 전쟁이 끝난 후에 나왔다. 전쟁이 생각보다 빨리 미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주가는 그날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유가 움직임도 급변했다. 침공 직후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넘기도 했지만 당시 공급 과잉이 심해서였는지 곧바로 2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두번째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다.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군이 합동으로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그해 4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면서 끝났다. 미국 주가는 침공을 시작한 날부터 오르기 시작해 2007년 말까지 상승을 이어갔다. 종합주가지수 역시 700에서 출발해 2000이 됐다.

똑같은 지역에서 똑같은 상대와 벌인 전쟁인 데도 주가가 다르게 움직인 건 각 시점의 경제상황과 주가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걸프전은 우리 경제가 1989년에 고점을 치고 본격적으로 내려오던 시기에 발생했다. 주가도 1000을 넘은 이후 본격 조정에 들어간 때여서 악재를 견딜 힘이 없었다. 미국도 비슷한 이유로 경기 둔화와 주가 하락이 진행되고 있었다. 반면 2003년 이라크 침공은 경기가 바닥을 치고 6개월째 상승하고 있는 시점에 벌어졌다. 주가도 2000년 IT버블 붕괴와 2001년 9·11테러를 겪으면서 크게 떨어졌다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주가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우선 주가가 높고 경기는 조금씩 악화되고 있다. 대신 과거 어느 때보다 금리가 낮고 유동성이 많다. 호·악재가 맞서고 있기 때문에 중동문제는 주가를 한쪽으로 움직이기보다 변동을 크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반응은 좋지 않은 소식이 나오면 주가가 일시적으로 크게 하락하지만 기간이 길지 않은 형태가 될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주식시장 내부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네이버가 시가총액 3위가 되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10위권 내에 들어왔다. 반면 포스코는 10위권의 끝자리로 밀려났고 한전·KT는 아예 탈락했다. 전통 기업의 약화는 자동차·조선·화학·철강 등 우리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산업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다. 이들은 여전히 우리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성장성이 계속 떨어져 경제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 지난 2~3년간 조선업이 오랜 불황이 끝냈다느니, 자동차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느니 하는 얘기가 많았지만 주가 상승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성장성 있는 중소형주에 관심을

2000년대 중반에 해당 업종 경기가 정점을 지나 앞으로 경기가 회복돼 봐야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성장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평가가 후해지는 반면 한계가 보이면 평가가 박해지는데, 그런 틀에 갇힌 것이다. 앞으로 중후장대형 대기업의 주가는 가격이 싸졌을 때 주가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 말고는 뚜렷한 상승 동력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 대안으로 올해는 성장성이 있는 중소형주에 전념했으면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집중돼 있는 소재·부품·장비업종과 본격적인 투자가 예상되는 5G 관련주가 좋아 보인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세계적으로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 한계를 넘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에서 나온 것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였다. 더 이상 미국 경제의 미래가 IBM·보잉·포드 같은 거대 기업에 달려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한동안 이 얘기는 사람이 미래를 얼마나 어리석게 전망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꼽혔다. 전망이 나오고 상당 기간 초거대 기업이 여전히 미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측이 실현된 건 2000년무렵부터다. 지금 미국 경제는 아마존·넷플릭스 같이 30년 전에 없었거나 작은 규모였던 기업이 끌고 가고 있다. 우리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작점에 서 있다.

-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

1518호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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