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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 창출 제언] 2020년식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K워크’ 

 

동시진행형 다중경력 시대… 지역재생형 K워크의 가능성 키우자

사실 정보화와 세계화로 대변되는 21세기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연대를 약화시켰다. 많은 첨단 기업들이 무노조 경영을 할 수 있었는데, 성장 산업 특유의 초과 잉여를 급여나 주식으로 적극 환원하여 연대의 필요성을 애초에 무마시킨 실리콘밸리 모델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생산거점을 국외로 옮겨버리거나 아예 자동화를 통해 노동을 소멸시키며 노조의 가능성을 없앴다.

문제는 양극화된 노동자들 간에 소득 재분배의 길이 사라졌고, 대치해야 할 사측을 잃어버린 노동자의 좌절감은 트럼프 현상이나 극우적 행태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정보화와 세계화는 희망이 되기도 했다. 정규직이 못되면 ‘2등 시민’ 비정규직이 된다는 계급론 대신, 시장에서의 내 가치와 평가가 나를 굶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을 정보화와 세계화가 품게 했다. 정규직으로 일하더라도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고용 유연성이 높은 동네에서 태동한 동향이었다. 개인에게는 조직에서의 가치와 평가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가치와 평가도 있다는 발상.

병 주고 약 주는 정보화와 세계화

그 선봉은 정보화와 세계화의 첨병에 있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었다. 예를 들어 풀타임 직업과 동시에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 같은 이중생활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다. 한 회사에 매몰되는 리스크를 알고 있어서다. 유능한 인재는 사내에서의 충성심만큼이나 시장에서의 가치 또한 평가받기 시작했고 심지어 권장되기도 했다. 오히려 장기적 안정성을 위해 중요한 것은 후자였다.

어디에 취업했었다는 이력만큼이나 어떤 제품을 만든 이라는 평판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기록되고 공유되기 쉬운 정보화·세계화다운 일이다.

시장에서의 가치를 평가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은 엔지니어에게만 있지는 않다. 창작자들에게 유튜브가 하는 역할, 전 세계의 장사꾼들에게 아마존이 하는 역할, 풀뿌리 사업가와 아티스트에게 구글과 애플의 앱스토어가 하는 역할이 대표적 예다. 이처럼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이라는 플랫포머의 본질은 시장에서의 평가자 역할에 있었다. 직장에 속하지 않아도 혹은 속해 있어도 자신만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평가를 받는 시대. 공유경제, 긱 이코노미 모두 이런 트렌드의 아종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뭉뚱그려 ‘플랫폼 노동’이라 격하한다. 물론 기업에 직접 고용되어 할 수 있었던 시절이 더 좋았던 점도 있을 것이고, 플랫폼이라는 거간꾼 중에는 악질이나 저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어떤 기회나 터전이라도 제공해 주는 플랫폼 기업이라면 그 기업은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조금이라도 올린다. 경력은 동시 진행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생계를 주는 일과 꿈을 주는 일을 양손에 쥘 권리가 있다. 플랫폼은 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앞으로 기업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이 플랫폼 기능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정책적으로 재벌기업을 우대한 이유는 장남을 밀어주면 남은 동생들을 책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경제는 가족이 아니었다. 트리클다운, 즉 낙수 효과는 모두의 소득 확대로 이어지진 않음을 이제는 깨닫고 있다. 소득이전 효과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환을 일으키지 않는 재벌보다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어쩌면 국내 경기 활성화에 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건만 어째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많은 플랫폼들은 외래종 취급을 받으며 백안시되곤 한다.

기업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DX)이 화두다. 그 본질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했던 다양한 기업 사정을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해소하자는 것.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불가역적 변화는 시련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기회를 준다. 지금 한국은 극단적 양극화에 시름겨워하고 있다. 부동산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도 기회의 틈은 있다. 도심의 부동산은 급등해도 지방의 빈집은 급증하고 있다. 141만 가구로 4년 새 32.8%나 늘었다.

미래의 노동은 플랫폼과 노트북과 네트워크만 있다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 클라우드와 화상통화와 그룹채팅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일거리를 배분할 수 있는 플랫폼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능한 일이다. 일터가 강남이나 판교여야할 이유는 없다. 이들에게 일거리를 유통할 플랫폼만 기능한다면 산 좋고 물 좋은 곳도 좋다.

그렇게 젊은 인재들이 아지트를 찾아 지방으로 되돌아가게 할 수만 있다면, 지역 재생의 길이 열릴 것이다. 물론 대기업 공채로 사는 것보다 벌이는 훨씬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출퇴근의 스트레스에서도, 나이 든 아저씨들이 만든 조직의 불합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산지의 신선한 작물로 식(食)을 해결하고,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처럼 유행 패션을 거부한다면 의(衣)에 돈이 들어갈 일도 없다. 도심의 외로운 알바나 취준생보다 구체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다.

전 세계의 디지털 인재들을 유치할 수도 있다. 소득 수준으로는 유럽이나 북미에 이길 수 없지만, 한국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K팝에서 K드라마까지 한국에서 살아 보고 싶고 한국을 배워보고 싶은 이들은 많다. 이제 일하고 싶은 공간이 될 수도 있다. K워크다. 디지털 인재의 존재는 지역 사회와 청년들에게 다양성을 제공해 생산성의 자극을 줄 것이다.

궁극적 근로 문화 혁신이란 그저 주 52시간 제처럼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일하는 법의 다양성을 늘리는 데 있다. 다양한 경험을 지닌 인재들이 상황을 불문하고 함께 모일 때 동질의 일꾼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때워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다양성의 힘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다문화’라며 교육 대상으로 보는 대신 그들의 다양성을 배우는 세계화. 수주한 외지의 일을 지역에서 얼굴을 맞대고 인간미 있게 해내게 하는 정보화. 이 변화가 찾아온 사회는 적어도 모두가 공무원만을 꿈꾸는 자폐적 사회보다는 더 건강할 것이다.

일하는 법의 다양성 늘려야 일자리도 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있을 때, 종래와 신규의 방식이 있을 때,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는 선뜻 후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떤 지방에 젊은 조합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하청 관계로 끼리끼리 강하게 묶인 현재의 가치 사슬에 껴들어 가기 힘들다. 그 역할을 해 줄 플랫폼이 아직은 없다. K워크의 일거리는 일자리만큼이나 마땅치 않다.

하지만 세상천지가 변하는 만큼 그래도 어딘가에 방법은 있다. 예컨대 적어도 재정정책만큼은 클라우드와 플랫폼의 등에 타고 지역에서 정보화·세계화의 시험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허드렛일이나 맡기는 청년 인턴으로 취업률을 올리려 하거나, 나라장터를 기웃거리며 정부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에 정부 과제를 나눠 주는 대신에 말이다.

-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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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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