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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사업 밀어붙이는 한전] '예타' 피하려 사업 규모 축소, 이사회엔 '한전 사람' 포진 

 

편법 추진에 이사회 공정성 논란 대두… “위법 소지도 있어” 지적



▎사진 : ©gettyimagesbank
한국전력이 ‘사업성이 없다’는 예비타당성(예타) 결과를 받은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을 다시 밀어붙이고 있다. 한전은 예타 평가를 받지 않도록 사업 규모를 약 480억원(기존 600억원) 수준으로 축소하고 오는 2월 28일 이사회에 해당 안건 상정을 예정했다. 한전과 같은 공공기관은 사업 규모가 500억원을 넘을 경우만 예타 평가를 받는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한전은 “예타 조사에서 나온 사업성 없다는 결과는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은 데 따른 결과”라며, 지난해 11월 이사회 상정 무산 3개월 만에 재상정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한전은 해당 사업의 이사회 통과를 위해 이른바 ‘한전 사람’으로 불리는 인사까지 사외이사에 끼워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회에서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관련 의결을 보류하거나 부결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이사회 사외이사는 “사내이사 7명 사외이사 8명으로 구성되는 한전 이사회의 특성상 사외이사 한 명만 찬성표를 던지면 내부 추진 사업의 원안 가결이 가능하다”면서 “예타 평가로 이사회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외이사 한 명만 찬성하면 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임 사외이사 이해 상충 논란 커지나


문제는 해당 사업의 이사회 상정 및 추진이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난 1월 31일 한전이 새로 선임한 사외이사가 '한전 사람'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한전의 용역 발주 내역에 따르면 해당 사외이사는 한전과 한국전력거래소, 한전 그룹사, 한전출자회사 등의 기관에서 연구 용역을 꾸준히 수주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세부적으로 한국전력공사 6건, 한국전력거래소 4건,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15건, 한국가스공사 1건, 한국지역난방공사 1건, 한국에너지공단 2건 등 총 29건으로, 금액은 24억4920만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해당 사외이사는 이미 한차례 공정성 논란을 겪었다. 지난해 6월 확정한 ‘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다. 국가 에너지 대계를 그리는 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는 당초 추진했던 석탄화력발전소 감축이 빠졌다. 한전 용역을 수행한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3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민간 워킹그룹 전체 75명 위원 중 34명이 이해 당사자인 한전과 발전사 용역을 수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해당 사외이사 역시 용역을 수행했고, 그는 34명의 전체 용역비 240억원 중 10% 이상을 나홀로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외이사는 주요 전력 정책 관련 위원회에도 중복 참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에 따르면 해당 사외이사는 전력정책심의회(심의기구)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 위원장직을 겸직했다. 겸직 공정성 논란이 일자 그는 결국 지난해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다시 1월 31일 한전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한전 이사회 의장을 맡아 온 김태유 서울대 공과대 명예교수가 떠난 자리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김 교수는 2018년 10월 선임 이후 임기를 절반 가까이 남긴 채 사임했다.

전문가들은 용역 수행 인사가 한전 이사회에서 공정한 평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유승직 숙명여대 교수(기후환경융합학)는 “용역이라는 것은 발주자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갖는다”면서 “용역 발주사의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전은 2월 28일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추진 안건의 상정을 예정했고, 신임 사외이사는 신설 석탄화력 건설 사업 자문(2억4000만원 수령)을 지속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해 충돌을 막기 위해 3년 이내 관련 사업체에서 일했거나 연구개발 과제를 수탁한 경우 정책 추진·심의 관련 위원이 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위법 소지도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제19조 3항은 이사회의 안건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기관장이나 이사는 그 안건의 의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공공기관운영법 정관에 따라 한전이 규정한 한국전력공사법도 마찬가지다. 한국전력공사법 이사회 규정인 제8조(성립과 의결) 2항 역시 이사회의 안건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는 그 안건의 의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동일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김준익 건국대 교수(경영학)는 “법을 떠나 관련 연구를 진행해 온 사람은 기본적으로 배제하는 게 좋다”고 했다.

부결 우려에 ‘자기 사람’ 발탁 논란

전력업계는 한전이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추진을 위해 자기 사람을 앉혔다고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은 한전이 전기요금 중심의 재무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추진 중인 해외 사업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1GW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 2기(자와 9·10호기)를 짓는 것으로 전체 사업비만 약 3조5000억원(34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예타에서 해당 사업을 ‘그레이 존’으로 분류하며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사업을 추진할 경우 현재 가치가 이미 마이너스(-)라는 평가였다. 한전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전략 사업인만큼 이사회 통과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를 자기 사람으로 새롭게 선임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전 이사회 내부에서 커진 배임 논란도 한전이 신임 사외이사를 선임한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6월 한전 이사회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의결을 놓고 사상 첫 의결 보류 결정을 냈다. 이사회 내부에서 매년 3000억원 가까운 손실이 불가피한 사안을 찬성할 경우 불거질 배임 논란을 우려했다는 해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이사회 내부 인사는 “한전이 자와 9·10호기 사업 규모를 일부 축소했지만, 예타에서 이미 883만 달러(약 104억원) 손실이 초래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면서 “배임 논란이 우려돼 사외이사들의 부결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한전 관계자는 "해당 사외이사는 내부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공정하게 선임된 인사"라면서 "전문성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22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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