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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21세기 흑사병 ‘인포데믹스(information+epidemics)’ 

 

SNS로 빠르게 전파되는 ‘카더라’ 정보… 속도 못 따라잡는 검증시스템

▎사진:중국 신화망, 슝치
“새벽에 산들바람이 여전히 인적이 드문 도시를 훑고 지나가고 있다. 밤에 죽은 자들과 송장처럼 낮을 지내는 자들 사이에 잇는 이 시간, 페스트는 한순간 작동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듯 하다. 모든 가게가 닫혀있다. 하지만 몇몇 가게 위에 달린 페스트로 인해 문을 닫음이라는 팻말은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그곳들이 잠시 후에 열리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페스트로 인해 폐쇄된 프랑스 오랑시의 모습을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묘사했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을 때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폐쇄된 지금의 우한의 상황이 딱 이렇지 않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소설 [페스트(The Plague)]를 소환시켰다.

역병 자체보다 역병이 주는 공포감이 더해

무대는 알제리 해변가에 있는 프랑스의 도청소재지 오랑으로, 밋밋한 상업도시다. 1940년대 4월 18일. 의사 리외는 진료실을 나오다 때아닌 쥐를 목격한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열흘이 지난선 수백 마리의 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다. 물컹한 쥐 사체가 마구 밟히던 4월 28일 리외의 빌딩을 지키던 수위가 탈진해 쓰러진다. 이틀 뒤 ‘몸이 타는 것 같다’던 수위는 고열과 두통, 목의 통증에 시달리다 사망한다. 역병의 시작이었다.

의사들이 “아무래도 페스트같다”고 말하자 시장은 펄쩍 뛴다. 그러면서 ‘페스트’라는 단어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한다. 시장은 페스트가 확실해질 때까지 발표를 미룬다. 환자가 병실을 가득 채우고 사망자가 40명을 넘어가는 날, 비로소 시는 페스트 발병사실을 공표하고 도시를 폐쇄한다.

의사들은 “늦게 대응하다가는 주민의 절반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시는 즉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시가 두려워 한 것은 대중의 공포였다. 시는 페스트 창궐을 공식화하는 순간 빚어질 혼란과 정치적 부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전염병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일이 아니다. 역병은 역병 자체도 무섭지만 역병이 주는 막연한 공포감이 더 무섭다. 두려움에 대중은 뜬 소문이나 괴담, 혹은 가짜뉴스에 기대고 공포감은 급속도로 확산된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다보면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근거 없는 뜬소문들이 인터넷이나 IT기기를 통해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되며 개인의 사생화를 침해하거나 정치·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인포데믹스라고 부른다. 인포데믹스는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s)을 합친 단어로 파괴력이 원채 커 ‘21세기의 흑사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2003년 5월 미국 컨설팅 업체인 인털리브리지의 데이비드 로스코프 회장이 [워싱턴포스트]에서 처음 사용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정보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위챗, 카카오톡 등을 통해 몇 분 안에 전세계에 퍼진다. 문제는 전파되는 정보의 속도를 검증이 따라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은행이 약간의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고 가정해보자. 한 트위터 계정에서 ‘그 은행이 곧 망한다’는 글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전파되고 예금자들이 일제히 은행으로 몰려들며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 추후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트윗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은행은 피해를 피하기 힘들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파는 주식시장도 인포데믹스에 취약하다. 특정 바이오업체가 출시했던 신약이 검증에 실패한 것 같다는 글이 트윗에 올라오는 순간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 인포데믹스는 국가 경제를 흔들기도 한다. 그리스가 위험한 것 같다는 미확인 루머만으로도 그리스의 환율은 치솟고 주가는 폭락했다. 인포데믹스는 공공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때 기승을 부리게 된다. 대중은 당국의 공식발표보다 온라인에 떠도는 설에 귀를 귀울이며 각자도생을 시도한다. 당국은 때로 정보를 통제해 질서를 유지하려 하지만 정보통제는 되레 불안감을 자극시킬 수 있다. 오랑시 당국도 공식발표를 미루면서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설왕설래로 인해 모든 것이 과장되고 있습니다”고 흉흉해진 민심을 인정한다. 시민들에게 페스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전염병일보]가 창간된다. 하지만 당국의 협조 없이는 신뢰성 높은 정보를 얻기 힘들다. 신문은 결국 페스트 예방에 효력이 있다는 신상품을 설명하는데 그친다.

우한의 의료진에게 응원의 박수를

코로나19 사태도 인포데믹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한의 의사인 리원량은 지난해 말 신종 바이러스를 인지하고 외부에 공개했지만 중국 공안당국은 공권력으로 그의 입을 틀어 막았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정부 불신감이 커졌고, 중국인들은 위챗을 통해 알음알음 정보를 찾고 있다. WH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많은 주장들은 인포데믹스를 부를 수 있다”며 경고했다.

도시가 전염병으로 폐쇄되면 경제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까. 카뮈가 묘사한 도시는 이렇다. 여행객들이 끊기면서 관광업은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았다. 전차를 제외한 모든 공공 교통수단은 끊긴다. 전차에 올라탄 사람들도 상호 전염을 피하기 위해 등을 돌린다. 물자공급이 부족하면서 물가가 치솟는다. 경제활동이 붕괴되면서 상당한 실업자가 발생한다.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사체를 치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위험한 일인만큼 품삯은 크다. 카뮈는 한탄한다. “빈곤이 공포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항상 보게 됐다.”

[페스트]의 시점은 의사 리외다. 리외는 위생보건대를 조직하고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페스트에 맞선다. 그는 페스트와의 투쟁을 ‘영웅주의’가 아니라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도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구원이란 저에게는 너무 거창한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멀리 안 가겠습니다. 제 관심은 인간의 건강입니다.” 페스트는 신이 인간에게 대적한 결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라던 파늘루 신부의 설교에 대한 리외의 반박이다. 그러면서 리외는 덧붙인다. “어쩌면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지 말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이듬해 1월 오랑은 9개월 만에 페스트에서 해방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카뮈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남겼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히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카뮈의 우려는 우한에서 현실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중국에는 의자인심(醫者仁心)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병을 고쳐주는 사람에게는 어진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한에는 수많은 의료진들이 목숨을 걸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과 싸우고 있다. 중국판 ‘리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522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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