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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공포는 나의 힘 

 

눈앞의 위험 알려주는 더듬이 역할… 변화 이끌어내는 에너지 되기도

▎코로나19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난 1월말 서울 중구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현재 동아시아를 감싸고 있는 가장 뚜렷한 감정은 공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를 움켜쥐고 있다. 공포감은 인간이 가진 가장 본능적인 감정 중의 하나다.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서 6개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분노, 혐오, 공포, 놀라움, 슬픔, 그리고 즐거움이었다. 이들 기본 정서는 각각 인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해왔다. 그 중에서 공포의 역할은 위험으로부터의 회피다. 인류의 조상들은 두려움이 있었기에 위험한 곳을 피하고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뇌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부위는 편도체 주변에 있다. 보통 진화심리학자들이 ‘파충류의 뇌’라고 부르는 뇌의 가장 원시적인 영역이다. 이는 공포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감정이며, 그만큼 가장 원초적인 생존의 동반자였음을 의미한다.

인류의 진화 역사에 가장 먼저 나타난 감정

공포는 지능의 일부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보다는 두려움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 더 지능이 높다. 실제로 적절한 공포를 느끼는 건 매우 중요하다. 2015년 한국의 메르스 대유행을 돌이켜보라. 당시 보건당국은 적절한 수준의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 질병의 전염력을 과소평가해서 첫 번째 환자가 거쳐 간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전염을 막는 것보다는 사회 혼란이나 병원의 피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겼던 모양이다. 그 결과, 단 한명의 환자로부터 180여명의 감염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방역 실패가 벌어졌다.

감정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감정은 비이성적이라는 편견이다. 실제로 감정은 뇌가 다양한 채널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합리적인 결론의 종합인 경우가 많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를 ‘블링크(blink)’라고 불렀다. 그의 책에 인용한 실험을 간단히 살펴보자.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4 묶음의 포커 카드 중에서 아무 거나 한 장을 뒤집을 수 있다. 카드 뒷면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뉜다. 참가자는 자신이 뒤집은 카드의 패에 따라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 물론 연구자가 평범한 카드 묶음을 줬을 리 없다. 빨간 뒷면의 카드들은 크게 딸 수 있는 패가 몇 장 있고 나머지는 잃는 패인 반면, 파란 뒷면의 카드들은 크게 따지는 못해도 별로 잃지도 않는 패로 구성됐다. 요컨대 이 게임을 여러 번 한다면 파란 뒷면의 카드를 뒤집는 게 돈을 버는 길이다.

실험 결과, 보통 사람들은 한 50번쯤 카드를 뒤집어보면 대충 파란색 카드가 더 낫다고 막연히 느끼기 시작했다. 80장 쯤 뒤집어보면 왜 파란카드가 더 유리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었다. 흥미로운 결과는 전문 도박사들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을 때 나타났다. 도박사들에게 혈압, 맥박, 땀분비를 측정하는 센서를 달아 놓고서 이 카드 뒤집기를 시키자, 그들은 대략 카드 10장을 뒤집은 시점부터 빨간색 카드를 뒤집으려고 할 때마다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지고, 땀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공포감을 느낀 것이다. 그 이후로 그들은 빨간색 카드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빨간색 카드가 좀 이상하다’고 말로 표현하는 시점은 50장 정도를 넘긴 이후부터였다는 점이다. 즉 전문 도박사들의 뇌는 카드 10장을 뒤집어본 시점부터 두 색깔 카드의 차이를 알아챘으나, 그것은 말로 표현되지는 못하고 공포감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블링크다. 막연한 느낌, 육감, 불길함, 살기 뭐 이런 것들로 표현되는 비언어적인 감정들이다.

그러니까 공포는 비합리적인 감정이 아니며, 극복의 대상도 아니다. 내 앞에 닥친 위험을 알려주는 아주 고마운 더듬이와 같은 것이다. 창업을 하는 많은 사람이 이 공포를 무시하는 실수를 범한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 내가 치를 댓가의 무게를 생각해보면 공포심에 귀 기울이는 건 내 자산과 미래를 보호하는 비결이다. 마찬가지로 평소 대인관계에서 별로 불안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거슬린다면 그와 동업을 하거나 한 팀으로 일하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세심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당신이 놓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공포감에만 귀를 기울이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공포감은 그 수준만으로 위험의 수준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막연할 때도 많다. 실제로 주방은 사람들이 자주 다치는 곳으로 꼽히지만, 우리는 야외 활동을 할 때 더 부상을 두려워한다. 2015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산재사망자 비율은 영국의 20배로 지금도 한국은 터키와 산재사망율 1, 2위를 다투는 최악의 산재국가다. 매년 1000명 정도가 일하다가 사고로 죽는다. 결핵 사망자도 매년 2000명 이상 발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국내에서는 단 한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은 코로나19를 더 두려워하며, 정부에 더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위험성을 따지자면 코로나19보다 산업재해나 결핵이 더 심각하겠지만, 우리의 공포심은 그 무게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포는 위험이자 동시에 기회이기도

어떤 대상이 주는 공포의 깊이와 무게를 정확히 이해하는 건 이를 합리적으로 다루는 첫발자국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공포를 다루는 여러 가지 수단을 발명했다. 보험이 대표적이다. 보험회사는 당신이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준의 불행을 겪지 않는다는 쪽에 돈을 걸고, 당신은 자신의 불행에 돈을 건다. 그 결과 위험성은 돈으로 환산되고, 보험사와 당신이 이를 나누어 가지게 된다.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옵션도 공포의 대응이다.

공포는 위험이자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작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는 많은 사업자들에게 재앙일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예상 밖의 이익을 실현하는 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방역마스크와 소독제 업체들, 온라인쇼핑 업체들, 각종 배달업, 그리고 손해보험사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린다. 무엇보다 기후 변화와 인류의 자연환경 침투가 계속되는 한 신종 감염병이 계속 나타날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번 일은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국가적으로 인식하고,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정착시킬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내는 에너지는 결국 공포심에서 나온다. 모쪼록 공포심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도록 하자.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22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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