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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럴과 인포데믹] 오염된 정보는 사회를 마비시킨다 

 

통제 국가에선 나쁜 소식을 악으로 취급... 내부 다양한 목소리가 정화력의 원동력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에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전자제품 부품이 하나 있다. 춘절이 지나면 발송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휴가는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존과 애플 제품 대부분을 중국 심천에서 생산하는 대만계 폭스콘도 제대로 가동을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의 도미노 효과를 가져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미 IT 업계에 바이러스의 여파는 퍼지고 있는데 LG, 에릭슨에 이어 엔비디아 등의 기업들이 모바일 업계 잔치인 MWC 참여를 고사하고 있다. 이 전염병은 세계의 교역과 생산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중국에 하청을 준 수많은 기업은 생산 계획과 출시 일정에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모든 공장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외국 하청 공장이 아닌 중국제조 2025 전략의 핵심 물자에 해당하는 곳들은 멈추지 않았다. 한 LCD 공장은 한국의 협력사들에까지 당장 복귀하라고 엄포를 놓아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펄펄하다. 심지어 현재 완전 봉쇄 중인 우한 근처의 메모리 공장도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물류까지 움직인다.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사회이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정보 전염은 경제 마비의 또 다른 주범

바이럴(viral)에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 정확히는 한가지 의미가 새롭게 현대적으로 준용된 것일 텐데, 바이러스성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는 사람들의 관심도 있다. 그리고 전염력은 이쪽이 더 강하다.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같은 관심은 한국에서도 바이럴해지기 시작했다.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될 때마다 공포는 확대 재생산된다. 언론도 나서서 동참하고, 민간 앱까지 만들어져 바이럴 현상에 양분을 공급한다.

모두 병마의 피해자임에도 병에 걸린 딱한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졸지에 기피 인물을 넘어 민폐 요인으로 격리해 버린다. 마녀사냥 및 지역회피의 효과란 불분명하다. 동선이 겹쳤다고 한들 이미 지나가 버려 상황 종료된 장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별로 많지 않아서다. 동선의 업소 이름이 공개돼 방역과 함께 폐쇄되곤 하지만 대부분 사후적인 일일 뿐. 그렇지만 그 동선에 재수 없게 거론된 동네는 사실상 영업을 접어야 한다. 또 그 주홍글씨는 상당히 오래간다. 지역 경제에 타격을 주고, 업주는 존폐의 갈림길에 선다.

재난 영화에서 꼭 나오는 설정이 하나 있다. 밉상 캐릭터가 자기 혼자 살겠다고 선의의 피해자를 배척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야 타인의 일이니까 얄미워하지만 우리는 나 스스로가 감염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인류애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그 병의 정체를 모르는 현재 진행형의 창궐 상태면, 사람들은 쉽게 패닉에 빠지고 좀처럼 통제되지 않는다. 이는 본능이다. 질병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 외래물에 생리적 거부감을 보이도록 우리는 진화됐다. 모든 정보가 열려 있는 개방적 사회에서 이런 생존 본능에 아마추어 대중의 판단이 결합하면 생활과 경제의 마비를 불러오기도 한다. 바로 인포데믹(infodemic, 정보전염)의 우려다. 실제로 가짜 뉴스는 약해진 사람들의 심리를 노린다.

인포데믹의 바이럴에 사회는 흔들린다. 두려운 일이다. 원래 중국 우한시 당국도 감염력도 약하고 사람 대 사람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루머를 퍼뜨린다며 40여 명을 구금하기도 했다. 그 중 8명이 의사였다. 하지만 사람간 감염은 물론 잠복기에도 감염될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팩트가 곧 밝혀진다. 대처에 대한 지금까지의 전제가 뒤집어지는 정보다.

통제의 가치를 믿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나쁜 뉴스를 전하는 전령이 되기 싫어한다. 그것은 스스로 통제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일이라서다. 나쁜 뉴스를 은폐하려는 충동은 모든 인간 조직의 본질이기도 하다. 모든 조직은 치부를 덮어야 할 수만 가지 이유를 지니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피하고 싶은 일은 당장 피하게 되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다. 인간 조직의 이런 본질을 교정하는 것이 사회와 제도이련만, 중국에서는 사회와 제도가 곧 당이라는 조직이었다. 곧 총동원 사회가 아니면 벌어지지 않는 일이 이어서 벌어진다. 1100만 도시 우한이 완전 봉쇄돼 버린 것이다. 이 모두 1월 한 달 안에 일어난 일이다. 지역이 봉쇄되면 그 내부의 자체 정화 능력, 즉 의료 기관의 수용력은 한계에 도달하기에 그 지역의 안녕을 생각하면 내리기 힘든 결정이지만 중국에선 가능했다.

시험대에 오른 중국식 사회 통제력

이제 국면은 감시와 검열의 총동원 봉쇄 작전으로 접어들었다. 실제로 전시와 같은 긴장감으로 충만하다. 그물망 같은 최첨단 인공지능 CCTV가 맹활약 중이다. 감염 지역 근처를 거쳐 간 차량 번호를 기억해뒀다가 당국과 심지어 직장에 알리기도 한다. 이미 중국식 통제기술의 전시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데, 적외선으로 0.3도의 체온 차이도 감지해내 마스크를 써도 신원을 확인하고, 기차 등 대중교통에서 감염자 주위의 신원도 역산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술들이 거리낌 없이 현장에서 시운전중이지만, 병마가 아닌 사람을 감시하기 위한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위챗은 인공지능으로 실시간 모니터링되며 ‘가짜’ 뉴스를 차단 중이다. 하지만 중국의 최첨단 검열도 바이러스를 최초 폭로한 의사 리원량의 사망 소식이 바이럴 되는 속도 만은 막지 못하고 있다. 지난 일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의 말을 들었다면 우한이 역병의 온상이 되는 일도, 500만 명이 우한을 관통해 퍼져 나가게 하는 일도 막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30대의 젊은 의사도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수 있는 병이기에 다시금 놀라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이 잘하고 있다며, 중국 편을 들었다. 국영 신화통신은 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뿐만 아니라 중국 시스템의 효율성을 칭찬했다며 자랑했다. 중국의 도움으로 자리 잡은 친중 인맥은 이처럼 세계에 퍼져 있다. 통제란 이렇게 입체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시진핑으로서는 그의 통제력의 효용을 검증 받는 전례 없는 시험대에 서게 됐다. 정적을 숙청하려는 것일지언정 반부패 운동은 성공적이었고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입지도 다진 지난 나날들. 인민의 생활은 나아졌기에 지금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져도 그저 강 건너 일로 여기고 말았다. 국민의 당사자 의식이 결여될 때 독재는 허락된다. 하지만 역병만큼은 내 집 앞에 찾아오는 날 모두를 당사자로 만든다. 1월 중순까지만 해도 시진핑은 일대일로의 중국몽을 위해 미얀마를 국빈 방문해 대만은 중국의 영토라고 말하게 하는 등 세계를 양분할 듯 강한 통제력을 발휘했다. 이번 전면전 또한 효과적으로 통제될 수 있을까. 그리고 실패의 경험은 다시 한 번 위대한 사회주의의 무용담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은 잊을만하면 동물로부터 전염병을 소환해 내는 신기하게 미련한 종이다. 전쟁보다 많은 사망자를 배출하는 역병을 주기적으로 불러낸다. 그렇기에 이 정도의 역병은 오고도 또 가겠지만, 그 상흔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규정하는 법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남기게 될 것이다. 리원량은 잡지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건강한 사회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사망자 수는, 초기에 은폐를 거듭해 중국식 통제의 한계를 상징하는 사건이 된 사스(SARS)의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1523호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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