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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상담 | 미운 남편 갈등 극복] 동상이몽 부부 홀로서기 익히자 

 

변화무쌍한 관계는 노력한 만큼 발전… 사계절처럼 새로움 끝없이 추구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그녀는 서른다섯 나이에 동갑내기와 결혼했다. 더 미루다간 노처녀로 늙겠다 싶은 두려움에 열렬한 감정은 없었지만 결혼을 결심했다. 지난 20년 정신 없이 지냈다. 도움 없이 맞벌이로 아들 둘을 키운다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둘은 회사 일도 집안일도 잘 해냈다. 올 초 둘째 아이까지 명문대에 입학했다.

요즘 그녀는 남편이 정말 꼴 보기 싫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조차 싫다. 크게 잘못한 것은 없는데 미운 생각만 든다. 남편은 평소 화를 잘 낸다. 교육, 가사노동 분담, 부모 문제 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사사건건 역정을 내는 바람에 자주 다투게 된다. 급한 성격인데다 직장 스트레스가 많아 그러려니 이해하며 항상 져 주었다.

변화에 용기 있게 뛰어드는 태도 필요

지난 주말 남편은 부모님 문제로 또 화를 냈다. 안 그래도 미운데 화를 또 내는 바람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처음으로 이혼 얘기를 꺼냈다. 대화로 풀 수 있는 일에 화부터 내는 남편을 이해하기 싫어졌다. 화낼 때마다 상당기간 냉랭해지는 집안 분위기도 참기 힘들고, 애들 교육 상 나쁜 영향을 생각하면 화도 치민다. 언젠가부터 가족 여행은 아예 꿈도 못 꾼다. 가까워지기는커녕 기분만 망치게 될 게 뻔하다. 주말이면 하루씩 각각 애들을 책임지고 있다. 혼자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게 훨씬 행복하다.

남편은 다르다. 남편은 화낼 때뿐, 가라앉으면 아무 일이 없는 듯 지낸다. 그녀와 얘들에게도 잘 한다. 문제는 그게 더 싫다. 이런 갈등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정신 없이 살 때는 안 그랬는데 여유가 조금 생겨서 그런가. 남편을 떠올리면 밉고, 얘들 없이 둘만 있는 것은 끔직하다. 애들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 이혼하고 싶다.

한 조사에 따르면 아내 3명 중 1명은 ‘같이 살수록 남편이 싫다’고 한다. 통계상 남편은 아내에게 83% 만족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73% 만족한다. 배우자 만족도에서 차이가 있다. 남편은 적게 주고 많이 받지만, 아내는 많이 주고 적게 받는다. 아내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는 참고 견디지만,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 부부가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불만요인 순서는 이렇다. ①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다. ②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③소득이 적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어려서 기대했던 결혼이란 게 있었다. 누구나 행복한 결혼을 꿈꾼다. 그런데 나이 들어, 우리는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 남들이 하니까 한다. 결혼은 관습이다. 어릴 적 기대했던 사랑이란 게 있었다. 누구나 행복한 사랑을 꿈꾼다. 그런데 우리는 결혼하면서 사랑을 잃어버린다. 남들이 하는 만큼 한다. 사랑은 습관이다. 우리는 생각 없이 행동한다. 이게 아닌데… 결혼과 사랑은 다르다. 결혼하지 말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다.

부부란 무엇인가. 어려서 그렸던 부부란 게 있었다. 누구나 달콤한 관계를 꿈꾼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여행을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거꾸로 가는 현실을 발견한다. 남들 사는 대로 산다. 어릴 적 그렸던 가정이란 게 있었다. 누구나 화목한 가정을 꿈꾼다. 자식 낳고, 집을 구하고, 가구를 들여 놓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반대로 가는 현실을 발견한다. 남들 사는 만큼 산다. 우리는 욕망 없이 행동한다. 이게 아닌데… 부부란 함께 꿈을 꾸는 사람이다. 꿈에는 길몽도 있지만 악몽도 있다.

혼자라도 기뻐하면 함께 나눌 마음 솟아나

남자와 여자는 처음 사랑에 빠질 때 마법에 걸린다. 사랑에 눈이 멀고, 사랑의 열병으로 불타오른다. 다른 점에 끌리고, 같은 점에 하나 됨을 느낀다. 그런데 보통 신혼의 단꿈은 아무리 길어도 삼 년이면 막을 내린다. 남녀 간에 매력을 유지케 하는 ‘케미컬(chemical 화학반응 같은 관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점을 불편해 하고, 같은 점에 짜증이 난다. 금이 가기 시작한다. 뭔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원인을 찾아보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부 간에 생각하는 게 다르고, 기대하는 게 틀리다. 서로 다른 것을 요구한다.

부부관계는 인간관계다. 호르몬의 약발이 떨어지는 순간, 진짜 인간관계는 시작된다. 우리는 심리적·사회적·영적인 존재다. 인간관계는 변화무쌍하다. 여름이 있는가 하면 어느새 겨울이 오고, 비가 오는가 하면 어느새 햇볕이 난다.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고, 계곡이 있으면 산이 있다. 우리는 변화의 세계를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인간관계에서 한 계절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 불화와 화목과 고립이 바뀌는 것을 탓하지 않고, 매 계절마다 용기 있게 뛰어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 그녀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화(火)를 터뜨리자. 그녀의 미움은 화를 참는 데서 온다. 뒤틀린 관계가 누적되면 언젠가 폭발한다. 미움 없이 터뜨리자. 터뜨리지 않으면 삼자에게 간다. 직장에서 터지거나 아이에게 간다. 두려움 없이 터뜨리자. 터뜨리지 않으면 계속 반복된다. 해결 안 된 갈등이 악순환이 된다. 이어, 불화(不和)의 동기를 헤아려 보자. 내 잘못이나 네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서로 물리고 싫증이 나서, 은연중에 변화를 원하는 핑계를 찾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갈등을 피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비판하고, 내 잘못은 지적 받아야 한다.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자연한 순리다.

둘째, 환상을 버리자. 그녀의 미움은 사랑의 환상에서 온다.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 말자. 사랑은 강제가 아니다. 사랑해서 유익한 자는 자신이다. 사랑 못한 가책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랑할 수 없다면 그만 두자. 혼자라도 기뻐하자. 기뻐하면 함께 나눌 마음이 생긴다. 가지와 잎이 자라면 꽃이 핀다. 사랑하기 싫다면 그냥 두자. 그냥 두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부부관계는 놔두면 무관심해진다. 관계의 안정을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관계는 노력한 만큼 성장한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셋째, 홀로서기를 익히자. 그녀의 미움은 기대는 데서 온다. 홀로 선다는 것은 무엇인가. 둘이 만나서 서는 게 아니고, 홀로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 아무도 내 가슴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홀로 살아야 함을 아는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가. 혼자 사는 듯이 함께 사는 것이다. 혼자 사는 듯이는 무슨 뜻인가.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함께 사는 것은 무슨 뜻인가.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책임지는 만큼 자유롭다.”

※ 필자는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523호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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