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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폐지] 인터넷 문화의 한 시대 저무나 

 

여론 만들고, 부풀리는 등 명암도… 더 나은 공론장 가능할까

대략 1990년대까지는 뭔가 온 국민이 공유하는 일상의 루틴 같은 것이 있었다. 아침엔 조간 신문 헤드라인을 훑어보고, 밤 9시에는 습관적으로 TV 채널을 뉴스에 고정했다. 간혹 초대박 드라마가 나오면 방영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느라 거리가 텅 비었다. 생활의 많은 부분이 매스 미디어의 사이클에 맞춰졌다.

그래서 뉴스에 별 관심이 없어도,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챙겨보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이 모두 그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날씨 이야기나 식사 하셨냐는 인사처럼 신문과 방송은 사람들에게 공통의 화제를 던져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날의 이야기꺼리 목록을 공유한 셈이다. 공통의 화제와 문제의식을 나누는 사람들은 같은 공동체이다.

인터넷 확산과 함께 매스 미디어의 힘은 줄어들었다. 대신 사람들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에서 뉴스와 생활 정보, 엔터테인먼트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포털에서 여러 언론사 뉴스를 한번에 보고, 웹툰을 보고, 카페나 블로그에서 대화했다. 포털은 새 시대의 신문 1면, 뉴스데스크 첫 꼭지였다. 원하는 때에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고, 접속할 때마다 내용이 업데이트되어 있다. 궁금한 내용은 바로 검색해 해결할 수도 있다.

2000년대 초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급검) 서비스가 나오면서 우리들의 ‘프론트 페이지’는 보다 다이내믹해졌다. 실급검이란 최근 몇 초에서 1분 사이 등 특정 시간대에 입력되는 검색어 중 평소보다 입력 횟수가 늘어난 폭이 큰 키워드를 골라 순위를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전체 검색 회수가 많은 검색어가 아니라 검색 빈도가 갑자기 늘어난 검색어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 속마음 비추는 거울, 실급검

흔히 인터넷 검색을 ‘의도의 데이터베이스’라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과 욕망, 의도가 모두 검색어에 담겨 있다. 과거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엿보기 위해 신문과 방송에 의존했다. 하지만 매스 미디어가 전하는 세상은 보통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를 평균화한 후, 편집자가 취사선택한 결과물이다. 반면 실급검은 각자가 자기 관심사를 입력한 결과다. 실급검은 어떤 의미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의 관심과 생각을 가장 비슷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새 드라마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거나, 여배우가 너무 헐벗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영화제 포토라인에 서면 실급검 차트에는 드라마 제목이나 배우 이름이 오른다. 입사철에는 대기업 공채 일정 검색이 늘어난다. 유력 정치인이 수사를 받으면 ‘기소’ 같은 법률용어가 실급검에 뜨곤 한다. 실급검에 오르는 것은 연예인이나 정치인, 마케팅에 열심인 기업에 훈장이 되었다. 대중의 마음 가장 깊은 곳 욕망과 관심을 건져올렸다는 징표다. 실급검에 오른 것은 이제 관심 가질만한 사안이라는 보증이 되었으며, 한발 더 나아가 ‘당신도 알아야 할 내용’이라고 옆구리를 찌를 자격까지 얻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실급검을 가까이 했다. 연세대 정보대학원 이상우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는 하루 평균 실시간 검색어를 3.22개 클릭하며, 실급검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08점 정도였다. 최신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으며 재미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 조작, 상업적 악용 등 문제도 인지하고 있다.

이쯤 되자 언론,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등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분야는 실급검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언론사는 실급검에 올라온 키워드를 넣어 붕어빵 기사를 찍어냈다. 마케터들은 실급검으로 블로그를 찍어냈다. 네티즌이 실급검 키워드를 클릭하면 급조된 기사가 검색 결과에 등장했고, 언론사는 광고 수익을 올렸다. 국민 포털 네이버의 첫화면에 노출된 실급검은 클릭을 부르고, 이슈는 증폭됐다. 기사에는 열띤댓글이 달리기 시작한다.

연예인 사생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일반인 간 다툼처럼 공적 가치가 없는 사안도 단지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확대 재생산된다. ‘실급검-검색어 기사-여론 증폭’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3000만명 이상의 사람이 하나의 포털을 이용하고, 집과 사무실 PC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이들의 인터넷 접근성은 더 좋아져만 갔다. 이 거대한 악순환의 나선 속에서 수많은 연예인, 정치인, 기업,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입고 때론 목숨을 놓았다.

또다른 문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조직적으로 검색어를 입력함으로써 실급검에 대한 일종의 ‘해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이돌 그룹 팬클럽이 단체 행동으로 신곡을 실급검에 올리는 정도는 애교다. 기업은 적잖은 상금을 건 퀴즈 마케팅을 하며 “정답은 포털에서 OOO을 검색해 확인하세요”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일시에 검색하면 실급검 차트는 기업이 의도한 마케팅 키워드로 도배된다. 사용자 불만은 커진다.

정치적 의사 표현에 실급검이 활용됨에 따라 실급검은 정치적 논란도 일으키고 있다. 얼마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미심쩍은 사모펀드 투자와 자녀 교육 행태가 논란이 되자 문재인 정권과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집단 행동을 통해 ‘조국 힘내세요’ ‘가짜뉴스 아웃’ 키워드를 실급검에 올렸다. 야당은 네이버가 실급검 조작을 방치한다며 항의했고, 급기야 실급검 조작을 처벌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다음은 이미 폐지, 네이버도 총선기간 중단

최근 구하라, 설리 등 논란에 휘말린 연예인들이 잇달아 세상을 등지고, 정치적 논란도 커지자 포털은 실급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포털 다음은 20일 실시간 이슈 검색어를 없앴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연예기사 댓글도 폐지했다. 네이버는 실급검 폐지 대신 인공지능을 활용한 관심 정보 제공 방식으로 실급검을 개편했으나, 결국 총선 기간 중 실급검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인터넷 및 공론장의 뜨거운 감자였던 실급검은 결국 폐지 또는 비중 축소의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사실, 목적이 무엇이건, 검색어를 입력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시민의 자유를 불필요하게 억누르는 규제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집합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여론과 정보가 왜곡되는 상황은 도리어 자유를 억누를 우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실급검 폐지로 포털 뉴스, 실급검, 댓글 등이 상호작용한 여론 쏠림과 잠재적 여론 조작이 개선되리란 기대도 나온다. 반면 이미 이슈 발생과 여론몰이의 중심이 소셜미디어로 옮겨간 상황에서 실급검 폐지가 큰 변화를 가져오기란 어렵다는 비관론도 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보는 포털 실급검을 활용해 여론 쏠림을 일으키느냐, 저마다의 취향과 친구 관계에 따라 형성된 소셜미디어의 확증 편향으로 여론 양극화를 일으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여론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하게 된 인터넷 서비스가 여론의 왜곡을 부채질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을 안팎에서 꾸준히 추진하도록 감시하고 독려할 수 밖에 없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24호 (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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