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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0) 승진하면 왜 변할까(1)] 성공경험·자신감이 부른 ‘통제감 환상’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현재에 맞춰 생각… 공감 주파수 꺼버리기도

▎사진:© gettyimagesbank
“자, 회의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다들 자기 임무 잊지 맙시다.” 회의가 끝났다. 다들 조용히 각자 자리로 향했다. 예전 같으면 휴게실로 몰려가 한바탕 떠들고 난 후, 자리로 돌아갔는데 얼마 전부터 약속이나 한 듯 자리로 간다. 조용히, 고개를 갸웃하면서.

한 회사의 국내영업1팀 팀원들은 요즘 적잖은 혼란을 겪고 있다. 회의만 끝나면 다들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들이 혼란을 느끼는 대상은 얼마 전부터 팀을 이끌게 된 김 팀장(상무급)이다. 팀장은 낯선 사람이 아니다. 중간에 마케팅팀으로 2~3년 나갔던 것을 제외하고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영업팀에 있어온 ‘토박이’나 다름없다. 누구보다 영업팀을 잘 알고, 일도 잘 하며 대인관계도 무난했기에 일찌감치 미래의 팀장으로 꼽혀온 사람이다. 지난해 11월 말, 경영 쇄신 차원으로 앞당긴 인사에서 그가 팀장이 되었을 때 다들 박수를 치며 환영했던 것도, 그가 팀을 좀더 잘 이끌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도 “최고의 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세 달이 된 지금, 팀은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들이 기대했던 팀장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팀장이 되기 전, 일 잘 하고 대인관계 무난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미처 생각지 못했던 팀장의 모습을 보며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우리 팀장도 역시 마찬가지인가?”

개선 외치던 팀장의 ‘원위치’에 내부 반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취임 후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던 것들이 하나둘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자. 회의를 대폭 축소하겠다”던 약속은 간 곳 없고,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사장님 특별 지시사항” 등의 이유로 하나둘씩 원상복구되더니 이제는 거의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다.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간단하게 정리하고 처리해주던 그의 말 또한 점점 길어져 이제는 회의시간의 3분의 1 이상을 혼자 말하는 날이 많다. 일주일에 두 번만 하자고 했었는데 이 또한 그가 필요로 할 때마다 수시로 열린다. 이유는 역시 “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다.

요즘 세상이 워낙 천변만화하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 실망하는 이들이 많다. 직원들이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얼마 전부터 그가 하는 답변이 있다. “여기까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여러분은 이 정도만 알면 됩니다.”

정말로 알면 안 되는 기밀사항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몰라서 그러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이러니 의견을 내놔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겉돈다. 누군가의 푸념처럼 “다시 원위치”한 느낌이다. 예전 팀장들처럼 말이다. 원활한 소통이나 정보 공유 없이 목표만 강조하고, “왜 내가 말한 대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게 좋은 예다. 지금이야 한 마디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경험으로 볼 때 그런 그의 말들은 곧 질책과 닦달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짜증과 호통으로 변할 것이다. 실무자들이 요즘 시장 상황을 말하면 “그래 가지고 어떻게 남다른 성과를 올리겠느냐”고 어깃장을 놓는다. 자신은 말끝마다 ‘요즘 시장 상황’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아마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1월 초에 인사를 한 곳은 이제 곧 다가올 미래일 수도 있다. 승진한 리더들이 전부 이렇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낯선 모습도 아니다. 팀장에 오르기 전에는 합리적이고 괜찮던 이들이 왜 그 자리에만 가면 달라질까?(사장은 말할 것도 없다) 회사마다 시장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조직 구성이 다른데 왜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날까? 특히 앞의 영업팀처럼 모두가 다 잘 아는 사이일 때, 그러니까 내부승진일 때 실망의 정도는 훨씬 깊어진다. ‘이게 아닌데’ 하는 갸웃거림이 심해지고, 팀장과의 사이 또한 곱절로 멀어진다. 기대했던 대로 안 되면 더 실망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충정심에 애써 자리를 마련해 하소연을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다들 “내가 뭘? 뭐가 변했는데? 왜 그래? 나는 그대로야”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한 마디 더 한다. “야, 이 자리 올라 보니 정말 보이는 게 달라.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야. 그러니 더 열심히 해야지.” 한 마디로 도로아미타불이다. ‘괜히 말했다’는 불안과 함께 ‘팀장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걱정이 싹튼다. 다들 알고 있고 그 혼자만 모르는 걸 알려주는데도 인정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럴까?

몸 속 호르몬이 ‘그’를 바꾼다


▎사진:© gettyimagesbank
이유가 있다. 한 마디로 그 자리에 있는 무언가가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도시의 체스클럽 회원 16명이 경기를 벌였다. 시라큐스 대의 앨런 마주어 교수의 연구팀이 이들의 신체 상태, 그러니까 경기를 하기 전과 후의 타액을 채취해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두드러지게 변한 게 있었다. 테스토스테론의 수치였다. 이긴 사람의 수치가 확 높아진 대신 진 사람의 것은 그만큼 낮아졌다. 특히 경기전 테스토스테론 분출이 높은 사람은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테스토스테론은 근육과 뼈, 털의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공격 성향 또한 높이는 호르몬이다. 승리할 때 많이 분비된다. 신체 운용 시스템에서 이번에 이겼으니 다음에도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종의 보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이긴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왕성해져 다시 이길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겼던 경험이 많을수록 또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에 주목받지 못하던 팀이나 사람이 가까스로 이겼든, 운이 좋아 이겼든, 이기면 계속 이기게 되는 ‘승자 효과’가 생기는 이유다. 한 번 분출되면 효과가 몇 달이나 지속되어서다.

싸움이나 경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이길 때’도 이 호르몬이 쏟아진다. 하는 일마다 잘 되고, 그래서 승진하게 된 사람은 혈액 속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해서 또 이길 수 있다는 의지로 충만하게 된다. 네덜란드 라드바우드 대학 파멜라 스미스 교수팀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권력을 가졌다고 여기면 (단순히 실험이라 할지라도) 신체 시스템이 문제 해결을 긍정적으로 여기게 하고 집중력을 높여 실수를 줄인다. 한 마디로 자기 확신과 낙관적인 성향을 두드러지게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잘 된 덕분에 승진해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목표를 더 빨리 이룰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실무자들이 3개월 이상 걸린다는 프로젝트를 2개월 만에 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밀어부치는 게 이래서다.(대체로 자기 주장대로 데드라인을 정해버린다) 목표에 집중하는 능력이 목표를 실제보다 가깝게 여기게 하는 까닭이다.(마리오 와익과 애나 귀노트 연구) 남들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자신감이 넘쳐 흐르기에 주사위를 던져도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여긴다. 당연히 조직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른바 ‘통제감 환상’에 휩싸인다.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이들의 자신감은 목표로 하는 일이 가져다 줄 잠재적 보상을 더 크게 보는데서 생겨난다.(구성원들은 반대로 손실에 주목해 자꾸 몸을 사리게 된다) 한마디로 승리와 이로 인해 갖게 된 힘(권력)이 테트토스테론을 분출시키고, 이 테스토스테론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출을 촉진시켜 동기부여라는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도파민은 분비될수록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모험을 선호하게끔 하는, 그러니까 행동하게 하는 물질이다.(파킨슨 병은 이런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는 것인데, 움직이는 게 느려지고 어려워진다)

자신도 모르게 ‘예스맨’을 만드는 리더들

왜 이런 일이 우리 몸에서 일어날까? 자기 확신이 있어야 어려운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 없이 어떻게 생각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미지의 곳을 개척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반대급부가 있게 마련이다. 이 또한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자신도 모르게 ‘내 생각이 맞다’고 강조하게 된다. 이걸 전체 조직에 확실하게 전파해야 하니 자꾸 강조하게 되고, 현장 직원까지 알아야 하기에 자꾸 확인하게 된다. 더구나 아랫사람들 눈치 볼 필요가 적어지니 지위가 높아질수록 모든 걸 편(리)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운용하고 말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잘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또 일하게 하니 자신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여기게 되고 그 결과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갈수록 긍정성을 강화시킨다. 물론 이 ‘긍정성’은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볼 때는 갈수록 자기중심적이 되어갈 뿐이다.

이상하게도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이런 성향이 강하다. 이유가 있다. 진심이 진실이 아니듯 자기 확신과 옳은 것 또한 다름에도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이 가속화되면 두 가지 행동 패턴이 나타난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과 남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더 확신하게 된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나는 높고 너는 낮다’ ‘내가 낫고 너는 별로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확신이 강해질수록 확신을 지키는 것, 그러니까 허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 의식도 강해진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반대로 받아들여 배척하게 된다. ‘다른’ 의견인데도 ‘틀린’ 의견으로 치부한다. 자신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권위주의까지 발동하게 되면, ‘옳은 일’을 하기 위해 ‘틀린’ 것들을 억누른다. 강조가 강요가 된다. 앞에서 말한 ‘통제감 환상’이 작동해 ‘혹시 안 될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가능성을 ‘쓸데없는 생각’으로 몰아부쳐 입도 뻥긋 못 하게 한다.(더대니얼 패스트 연구)

결과적으로 예스맨이 나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스맨을 만든다. 권력에 중독되는 것이다. 권력 중독은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다. 침략을 받아 무너지는 나라보다 스스로 무너지는 나라가 많듯 리더도 마찬가지다. 보통 권력 중독의 징후는 직원들의 마음에 먼저 포착된다. 직원들이 ‘재수 없는 상사’라고 여기면 거의 틀림없다. 일에 대한 집중력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눈가리개로 작용하는 까닭이다.

당연히 구성원들과의 사이가 멀어지는 세 번째 징후가 나타난다. 상대의 주파수에 맞추는 공감능력이 서로를 가까워지게 하는데 이런 기능을 스스로 꺼버리기 때문이다.(물론 본인들은 ‘결코’ 그렇다고 하지 않는다)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대문자 ‘E’를 써보라고 했다. 다들 영문을 몰라 하며 썼는데 그룹 별로 차이가 있었다. 1그룹에서는 앞에 있는 상대가 보기에 반대로 보이게 쓴 사람이 33%였다. 같은 곳에서 같은 지시를 받았는데도 2그룹은 12%만 그렇게 썼다. 두 그룹의 차이는 딱 하나, ‘E’를 이마에 쓰라고 하기 전, 무엇을 떠올리라고 했는지였다. 1그룹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에게 명령하거나 지시했던 경험을 떠올리라고 했다. 2그룹에는 누군가로부터 명령이나 지시를 받았던 경험을 떠올리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두드러진 차이를 만들어냈다. 명령이나 지시했던 걸 떠올렸던 이들은 상대방이 읽기 편하게가 아니라 자신이 쓰기 편한 방식으로 썼다.

이 연구를 진행했던 미국 노스웨스턴 대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이 실험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권력을 가지면 상대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거울뉴런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거울뉴런은 타인의 말을 듣거나 표정·몸짓을 보면서 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다.(제레미 호기븐, 마이클 인츠리트 연구)

자기 확신이 강해질수록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저하되기에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걸 읽어내는 능력도 떨어진다. 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에 상대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어떤 일을 처음 하는 사람은 당연히 서투르기 마련인데도 ‘그것도 못해?’ ‘이게 그렇게 어려워?’라는 평가를 내린다. 자기 중심적이 되어 자신에게 쉬운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하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듯, 자신이 서툴렀던 걸 까맣게 잊고 모든 걸 지금에 맞춰 생각한다.

여성 리더들이 흔히 실수하는 것

스타 선수가 스타 감독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런 성향은 의외로 여성 리더들에게서 좀더 많이 나타난다. 남자 천하인 곳에서 어렵게 유리 천장을 뚫은 성공 경험이 거꾸로 작용해 자신과 같은 여성 구성원들과의 사이를 멀게 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난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눈치 볼 필요가 적어지니 자신의 행동 방식을 수정하려 하지 않고, 이로 인해 누군가 조언을 해주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지위가 높아질수록 사람을 잘 알아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거꾸로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상대에게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 전문가인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이안 로버스튼 교수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어 자기 파괴를 스스로 재촉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정작 자신은 모르거나 알아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려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떤 흐름에 휘말리는 까닭이다. 뛰어난 리더들이 하나 같이 자기 성찰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차 하는 순간 옆길로 샐 수 있어서다.

안타깝게도 승진한 상사가 변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히기 때문에 쉽게 인식하기도, 고치기도 힘들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이들을 흔히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어떤 이유가 있을까? [계속]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25호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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