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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의 IT 사회학] 명의(名醫) 손발 돼줄 AI 의료 체계 도입 할 때 

 

코로나19 확산에 원격진료 추진 갈등... 외국선 기술 개발로 상용화 나서

▎명지병원 선별진료소에서 ‘RP-Lite V2’ 로봇을 이용한 원격 진료로 코로나19 선별진료를 하고 있다. / 사진:명지병원
코로나19 확산에 정부는 한시적 원격진료를 추진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협의 없이 이뤄진 만큼 책임질 수 없다며 즉각 반발, 철회와 사과까지 요구했다. 정부는 만성 질환자의 정기 검진 등을 위한 제한적 조치라고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이해는 간다. 갑자기 원격진료를 하라고 한들 시스템이 없는데, 보이지도 않는 전화로 어떻게 진료를 보라는 것이냐 말할 만하다. 대면진료를 하지 않았다가는 의료법에 따라 형사처벌과 자격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 온라인 결제도 마련돼 있지 않아 수금도 힘든데 처방약 배송도 금지돼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온라인 금지령의 틀에 갇혀 있는 산업은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오프라인 대면진료는 한국 의료의 굳건한 대원칙이다. 법은 사회를 반영한다. 의료진의 질과 양이 적절해 무의촌(無醫村)이 없는 반면, 살 빼는 약 광고나 향정신성 약물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 의료 자원의 오남용을 걱정하는 정서가 반영돼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존재는 의료의 보편성마저 보장해주니 한국의 의료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재난은 현실을 재조명해준다. 대구에서는 입원 대기 중에 사망한 사람들이 생겼다. 정말 절실한 순간에, 의료는 우리에게 충분히 가까이 있을까?

허드렛일은 IT에 맡기고 의료진은 처치에 집중을

불안은 가속화되고 있다. 유사 증상이 있는 이들도 나의 몸이 지금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지 더없이 불안하다. 기껏해야 감기나 몸살이겠지만 그리 생각하자고 해서 마음이 놓일 리 없다. 의료진의 한마디가 절실한 때다. 중국에서는 이미 의료 역량의 한계치를 넘긴 우한을 위해 전국의 의료진이 온라인 진료 사이트를 통해 메신저로 진단과 처방을 해주고 있다. 몸은 접근하지 못해도 지혜는 접근할 수 있다.

만성질환자 같은 무관련 환자를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이 큰 병원에 다니지 않도록 막는 일은 중요하다. 지역적 안녕의 입장에서도 전공과 식견을 지닌 이들의 적극적 의사소통은 불안과 풍문을 잠재울 수 있다. 후방 지원뿐만 아니라, 전방에서도 효과가 있다. 최근 방사선학(Radiology) 저널의 논문에 의하면 1000명 이상의 환자에 대한 연구에서 코로나19의 진단에는 국내에서도 일반적으로 취해지는 RT-PCR 검사보다 CT 영상 진단이 낫다는 주장이 실렸다.

물론 현재 진행형인 사안인 데다가 모수가 충분치 않으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미 중국 전자기업 ZTE와 차이나텔레콤은 중국의 병원들과 협력해, 원격지에서도 CT 등의 영상 의학 이미지를 5G로 대량 전송해 협진을 시도하고 있었다. 증상자의 검체에서 바이러스 유전자를 추려내는 방법 이외에도 바이러스가 환자의 몸에 남기는 특유의 병변 패턴으로도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일손을 도울 수 있다.

특유의 패턴을 발견하는 일은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인공 감각 기관의 전문 분야다. 인공지능은 환부 사진으로부터 이미 전문의보다 더 뛰어난 정확도로 유방암이나 당뇨병성 망막변성 등을 검출해 내고 있다. 정신 없는 의료진 대신 그들의 눈이 되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 중국 알리바바 산하의 연구기관은 환자의 CT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미세한 음영을 구분해 내는 인공 지능 판독 기술을 개발, 20초 이내에 96%의 확률로 코로나19를 확진해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치료는 의술의 몫이라도, 방역과 선별과 같은 통제는 기술에 의뢰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어떤 명의도 흉내 내지 못하는 IT만의 특성이 있어서다. 그것은 바로 규모확대성(Scalability) 즉 순간적 확장성,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게 하는 편재성(Ubiquity)이다. 아무리 화타라도 한 번에 한 명의 환자밖에 볼 수 없지만, 클라우드 기술은 그렇지 않다.

사실 원격의료는 한국에서도 효험을 알고 있다. 해양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지난해 2000여 명의 선원에게 1만 건 이상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지원했다. 그 중 응급처치도 649건이나 됐다. 그런데 지금 의사가 없는 곳은 바다 위뿐만이 아니다. 트리아지(triage)라는 말이 있다. 재해나 전시에 부상 정도에 따라 치료 우선순위를 선별하는 일을 말한다. 집단 생존에 필수적인 일이다. 처치는 의사의 권한이지만 일차적 분류, 일선의 스크리닝은 기술도 잘할 수 있다. 의료라는 블랙박스에 입력과 출력이 있다면, 그중 입력만큼은 이제 기술이 더 잘할 수도 있다.

센서 네트워크가 뒤덮을 미래 의료, 외국은 이미 시작

5G는 대역폭의 확장으로 화질의 개선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장비가 손쉽게 자신의 정보를 발신하게 해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열고 있다. 바야흐로 망라적 센서의 시대다. 카메라처럼 인간의 시각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웨어러블처럼 우리 몸의 생체신호를 읽어 들일 것들도 있다. 이는 수년 전부터 ‘자아 측정(Quantified Self)’이라는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데, 체중이나 BMI 등을 수시로 측정해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에 축적한다. 측정할 수 있다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은 피트니스를 포함한 헬스케어에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떻게 몸이 변한다는 과학적 인과 관계를 철저히 개인화해 실천해 보는 일은 일종의 자기계발 최전선이 되고 있다. 애플 워치 등에는 이미 심전도 측정 기능까지 들어 있다. 국내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혈압이나 혈당과 같은 조금 더 일반적인 측정 항목이 향후 신제품에 도입되는 날에도, 한국 소비자는 여전히 더 비싼 값에 제품을 사면서도 건강 기능은 비활성화된 채로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에 가서야 자신의 수치에 놀라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이처럼 원격진료를 넘어 건강 전체를 아우르는 텔레헬스(telehealth)라는 신 분야는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 무풍지대다. 주치의와의 대면이 100점짜리 진료임은 누구나 안다. 원격 진료는 10점짜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점짜리 10가지가 모인다면 100점이 될 수 있다. 문턱이 높아 100점 만점짜리 진료는 받지 못해도 10점이라도 선택할 권리가 소비자에게는 있다. 하지만 모두가 100점 만점을 받아야 한다는 완벽주의를 고집하다가 모두를 0점에 머물게 할 수 있다.

알리바바의 알리헬스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발을 맞추고 있다. 인공지능이 원격으로 진단해 처방하면 약까지 배송된다. 의료진과의 온라인 채팅을 통한 사후 서비스는 덤이다. 2월 말 4800만 달러 시리즈 C 펀딩을 조달한 미국의 K헬스는 이미 300만 명이 넘는 회원에게 ‘본인 부담금 미만’의 금액으로 온라인 상담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인이 창업한 이 회사는 흥미롭게도 25년간 이스라엘 건강 관리기관이 수집한 임상 의료의 익명 데이터베이스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중국이나 미국보다 뛰어날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기술의 힘으로 역전을 꿈꾸고 있다.

도서 지역이 많고 의료진이 부족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앱 진료 시장이 커지고 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데다 의료 공급 부족으로 10분 진료를 보기 위해 반나절이나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을 위한 기본적 ‘트리아지’ 역할을 화상통화 등이 대신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의료는 괜찮다지만, 더없이 완벽한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의료계의 선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의 진보는 선의만으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기술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도울 길이 있다. 우리는 재난 속에서도 늘 사회 혁신의 계기를 찾아왔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525호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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