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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선을 넘어야 하는 이유] ‘진정한 자존감 경험의 순간’이 필요하다 

 

과감하게 세상이 내게 그어준 선을 넘었는데, 혼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받는 순간

▎사진:© gettyimagesbank
자존감(Self esteem), 18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빗 흄이 처음 썼다고 알려져 있는 이 단어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평가, 그리고 그 평가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자존감은 심리학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자존감 수준을 알면 그 사람이 학교나 직장에서 얼마나 잘 해낼지, 얼마나 행복할지, 대인관계나 결혼생활에 얼마나 만족할지, 심지어 범죄에 빠져들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동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더 발전시키고,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동기가 강하다. 그러니까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는 당신이 가진 자존감의 높낮이에 따라 당신의 행동을 이끄는 동기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단 몇 개의 표제어로 인간의 동기를 요약했다. 그에 따르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원하던 우리는 일단 생존 자체가 보장된 다음에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태가 유지되기를, 즉 안전을 원한다. 그 다음에는 공동체 동기가 눈을 뜬다. 어디엔가 소속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되면 그제야 비로소 자아를 향해 동기의 방향을 돌린다. 자존감을 키우고 인정받으려 한다.

순응적 자존감 vs 경쟁적 자존감

매슬로우 이론은 우리의 자존감이라는 것이 결국 사회생활의 토대 위에 건설된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킨다. 이것이 자존감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자존감은 나 혼자만의 능력이나 의지만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성인(聖人) 아니면 망상증 환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아무리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 여길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내 자존감은 높아질 수 없다. 물론 주변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혹은 정반대로 드높은 자존감을 보유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상인 범위 밖에 있음을 독자여러분도 경험을 통해 아시리라.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모든 직장인의 자존감은 그가 일하는 조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사와 동료로부터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얼마나, 어떻게 인정받느냐에 따라 자존감이 결정되는 것은 모든 직장인의 운명이다. 하지만, 그 운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자존감의 건강성은 달라질 수 있다. 앞서 모든 자존감이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그 내부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다른 하나는 자기 능력과 가능성의 확인이다. 전자는 타인과의 조화를 통해, 후자는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드러난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이 두 요소를 ‘순응의 동기’ 대 ‘경쟁의 동기’라고 구분했다.

자존감의 이 두 요소는 성격도 다르고 얻어내는 방법도 다르다. 첫 번째 요소인 ‘순응적 자존감’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얻고 동료로 받아들여지는 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걸 얻기 위해서는 남들이 원하는 대로, 상황에 적절하게 내 행동을 맞춰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에 반해 자존감의 두 번째 요소, 즉 능력의 인정 혹은 ‘경쟁적 자존감’은 내가 정말로 남들보다 뭘 잘하느냐에 달려있다. 자신이 해낸 것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주면 더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기준에 만족스럽거나 남들과 비교해봤을 때 내가 더 낫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경쟁적 자존감은 남들에게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 이 요소는 선을 넘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순응과 경쟁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부터 마치 시소게임을 벌이듯 오르락 내리락 한다. 갓난아기 시절 우리는 온전히 부모에게 의존하고 순응한다. 순응적 자존감의 시대다. 하지만 기저귀를 떼고,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경쟁적 자존감이 눈을 뜬다. 우리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시험하려 든다. 남들이 못 해도 나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들쑤시다 보면 반드시 선을 넘고, 사고를 치고, 혼나게 되어 있다. 이때를 틈타 순응적 자존감이 세력을 되찾는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자각이 눈을 뜨고, 남들 하는 대로 하기 위해 주변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커지면 다시 남들이 넘지 않는 선을 과감히 넘어보는 일이 반복된다. 이 과정 자체가 성장이다. 영국 작가 아서 C 클라크가 말했듯, “가능의 한계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의 영역에 살짝 발을 들여 놓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는 이 순환을 반복하며 내게 허용된 선의 범위를 넓혀왔다. 자존감의 이 두 요소는 상호 보완재이기도 하다. 남들의 평가에 의존해서 쌓아올린 순응적 자존감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이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이것에만 의존하면 불안해진다. 대중의 호감에 의존하는 유명 연예인들처럼, 남들이 나에 대한 마음을 바꾸는 순간 내 가치도 순식간에 전락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경쟁적 자존감이 더 필요해진다. 반대로 남들의 평가나 시선을 무시하고 선을 마구 넘다 보면 삶이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정작 이루어놓은 것의 가치를 평가받을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

자기 통제 가능한 경쟁적 자존감 필요

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변사람들과의 조화는 매우 중요하다. 조직이 나에게 내리는 평가를 무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에만 의지해 내 자존감을 쌓아올리는 건 미친 짓이다. 그건 정신건강에 위험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해버리는 길이다. 미국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이 말했듯, “남들에게 순응하면 모두가 당신을 좋아해준다. 당신 자신을 빼고는.”

심리학자 크리스 마룩은 우리 인생에는 ‘진정한 자존감 경험의 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원래 능력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는데, 그것이 내게 중요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순간을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내가 과감하게 세상이 내게 그어준 선을 넘었는데, 혼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받는 순간이다. 그 순간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도 흔들거나 부술 수 없는, 평생 동안 유지될 자존감 한 조각이 만들어진다.

이런 순간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얼마나 건강한 자존감을 보유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모쪼록 새해에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 진정한 자존감 경험의 순간이 한번 이상 일어나시길 바란다. 그러려면 언젠가는 반드시 선을 넘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

-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심리학 박사)

1520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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