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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세기의 담판(15) 약소국의 생존법을 터득한 인상여] 상대의 의중 읽고 논리로 대응하다 

 

허점 파고드는 주도권으로 ‘전쟁 무리수’ 차단… 대국 진나라로부터 약소국 조나라를 지키다

▎사진:김회룡
예전에 [열국지 재발견] 연재에서 인상여(藺相如)라는 인물을 다룬 적이 있다. 조나라의 보배 ‘화씨지벽’을 노리는 진나라 소양왕에게 당당히 맞서 나라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명장 염파에게 양보하며 조나라의 단합을 이끌어낸 ‘문경지교(刎頸之交)’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런데 인상여가 남긴 이야기는 이것뿐이 아니다. 그는 이른바 ‘민지(澠池) 담판’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조나라의 수호자가 된다.

‘민지 담판’은 ‘화씨지벽’ 사건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화씨지벽’을 탐냈으나 인상여의 대응으로 인해 실패한 소양왕은 분풀이라도 하듯 연이어 조나라를 침공해 성을 빼앗았고 4년 동안 수만 명의 조나라 군사를 죽였다. 그런 다음 기원전 279년, 조나라 혜문왕에게 사신을 보내 ‘민지’라는 지역에서 회담을 열자고 요청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화친을 맺자는 것이었지만 조나라 임금을 억류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20년 전(기원전 299년) 진나라 소양왕은 역시 화친 맹약을 맺자며 초나라 회왕을 불러다가 포로로 붙잡고 그를 협박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회왕은 탈출했다가 다시 체포되어 결국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이 같은 진나라의 전과 때문에 혜문왕은 두려움에 떨며 진나라의 부름에 응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

혜문왕이 이렇게 나오자 인상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예전 ‘화씨지벽’ 사건 때 뭐라고 아룄나이까? 진나라가 성 15개를 주며 화씨지벽과 바꾸자고 하는데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책임은 조나라가 져야 하고, 조나라가 화씨지벽을 전달했는데도 진나라가 성을 주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진나라에 있으니, 이 두 가지 경우를 따져본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낫다고 진언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나라가 화친을 맺자며 회담을 요청했는데 우리가 응하지 않는다면 조나라는 비겁하고 나약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만약 진나라가 회담을 빌미로 불순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에 대한 비난은 모두 진나라를 향할 것입니다. 물론 전하께서 무엇을 우려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초 회왕처럼 될까봐 걱정하시는 것이겠지요. 신이 모시고 가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을 터이니 심려를 놓으시옵소서.”

명분 중시하면서 담판 깨질시 대책도 철저

그러면서 인상여는 조나라 총사령관 염파와 상의해 만약 임금이 한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한다면(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민지까지 왕복하는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 태자를 옹립하여 나라를 지켜가도록 했다. 초나라 회왕에게도 그랬듯이 진나라가 조나라 임금을 볼모로 잡아 협박할 수 있으니 그 가능성을 신속히 차단하고, 리더십의 공백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인상여는 민지의 회담장 주변 곳곳에 조나라 군대를 배치하였고 유사시에는 조나라 대군이 신속히 달려올 수 있도록 안배해 놓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민지에서 진나라 소양왕과 조나라 혜문왕이 마주 앉았다. 두 군주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소양왕이 이렇게 말한다. “조나라 왕께서 거문고를 잘 다루신다면서요? 한 곡조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고, 또 친한 사이라면 악기 연주를 부탁하는 것쯤은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임금에게 이를 요구한다는 것은 분명 무례한 일이었다. 아랫사람 취급을 하며 깔아뭉개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혜문왕은 매우 불쾌했지만 약소국 조나라의 입장에서 강대국 진나라 임금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문고를 뜯었는데 소양왕은 진나라의 사관(史官)을 불러 이렇게 적게 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을 만나 술을 마시고 조나라 왕에게 거문고를 연주하게 하였다.” 마치 신하를 대하듯 한 표현으로, 양국이 평등한 위치라면 결코 이렇게 적지 못한다. 소양왕은 조나라 임금과 신하들에게 진나라를 상국으로 받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여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는 소양왕에게 부(缶, 배가 불룩하고 목이 좁은 질그릇으로 진나라에서 타악기로 사용하였음)를 바치면서 말했다. “진나라 임금께서도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전하께서 듣고 싶어 하시니 청하옵건대 부를 두드려 진나라의 소리를 들려주시옵소서.” 당신이 실제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진나라와 조나라는 동등하다, 진나라 임금이 조나라 임금에게 악기를 연주하게 했으니 조나라 임금도 진나라 임금에게 그럴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소양왕은 분노했다. 조나라 따위가 나에게 감히 악기를 연주하라니. 이 모습을 본 인상여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진나라의 강한 힘만 믿고 이리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신과 대왕의 거리는 다섯 발자국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제 목을 칼로 찔러 그 피로 대왕을 물들일 수도 있음입니다.” 일갈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는 위치라는 것이다. 인상여의 기세에 눌린 소양왕은 어쩔 수 없이 부를 두드렸는데, 인상여도 조나라 사관을 불러 적도록 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을 위해 부를 두드렸다.”

담판은 논리 싸움이자 기세 겨루기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진나라 신하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조나라를 꺾어 누르려는 소양왕의 시도가 실패했으니 이제는 자신들이 뭐라도 해야 했다. 이에 어떤 신하가 “오늘 참으로 기쁜 날이 아닙니까? 조나라 임금께서는 성 열다섯 곳을 바치셔서 우리 대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해주심이 어떠십니까?”라고 하였다. 땅을 바치라는 것은 신하국으로 복속하라는 의미다. 그러자 인상여가 차분히 말했다. “좋은 일입니다. 예절이란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열다섯 성을 드릴테니 진나라에서는 그 답례로 수도인 함양을 주시어 우리 대왕의 장수를 축원해주십시오.” 수도를 달라니 이는 아예 항복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요구다. 진나라 신하들은 분개했지만 자신들이 먼저 도발을 했으니 뭐라 따질 수도 없는 형국. 이를 본 소양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마무리하게 한다.

이상 인상여가 활약한 ‘민지 담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기세에서 상대방을 압도했다. 담판은 논리의 싸움이면서 기세를 겨루는 장이다. 두려워하는 모습,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순간 주도권은 상대방에게 넘어가버린다. 인상여는 진나라 측 주장의 허점을 이용해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냉정하고 용감한 태도로 진나라 임금과 신하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다음으로는 진나라가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점이다. 인상여는 조나라 임금이 억류될 경우 세자가 곧바로 즉위하도록 조치함으로써 임금을 포로로 잡아 조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진나라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했다. 군사적 대응도 철저히 준비하여 유사시 진나라 또한 잃을 것이 많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그러니 진나라로서도 괜히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담판에서 약소국이 취할 수 있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520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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