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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자신을 스스로 코칭하다현대상선 팀장 시절 직원들과 북한산에 오르며 상품을 걸고 쓰레기를 주운 일이 있다. 경쟁적으로 쓰레기를 찾다 보니 쓰레기 줍기가 마치 보물찾기 같았다. “그날의 목표가 등정에서 쓰레기 줍기로 바뀌니 쓰레기가 꼭 보물 같더라고요. 인생의 목표도 승진, 고액 연봉, 자녀 교육에서 더 원대한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그가 미국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회사가 많이 어려웠다. 그 무렵 참석한 한 집회에서 접한 송길원 교수의 메시지가 그의 뇌리에 각인됐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 그는 “일찍이 이런 생각을 했다면 입사 때 30년 후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꿨을지 모르죠”라고 말했다.코칭으로아름다운동행은 그가 설립한 1인 기업이다. 그는 국내 유수의 코칭펌 인코칭의 파트너 전문코치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삼성SDS, LG화학, 현대글로비스, 외교부 등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최 대표는 2년 전 [백점 아들 육식동물 아빠]란 책을 냈다. 이 책의 부제는 ‘외대부고 수석 입학, 토플-ACT 국내 최연소 첫 만점 최정혁 아버지의 참회록’이다. 미국의 수학 영재 대학을 나온 아들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극심한 우울증에 대인 기피증을 앓았다. 아들의 주치의는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조련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아버지는 정글 같은 경쟁구도에 익숙한 강인한 육식동물 성향입니다. 반면 아들은 푸른 초원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초식동물의 기질을 지녔죠. 극단적으로 성향이 다른 두 동물이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에게 눌려 정신적으로 위축된 거예요.” 그는 “아들은 잠재지능지수는 150+이지만 정신적 맷집이랄까 사회적응지수는 0에 가까웠다”며 “아빠 닮아 유약한 아이의 인생 매니저를 자처하다 과욕을 부린 탓”이라고 털어놓았다.그도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대학 본고사 시험을 보던 날 우연히 시험장 책상의 상판이 떨어진 것에 영향을 받은 그는 결국 시험을 망쳤다. 재수 끝에 이듬해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개조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고 분위기를 업 시키느라 객기도 부렸다. 그 때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끼를 발견했다.대학원 졸업 후 들어간 현대상선에선 혼성4중창팀을 만들어 창사기념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듬해엔 아예 가요제 사회를 맡았다. 3회 땐 사회를 보면서 오너인 현영원 회장 등 경영진에게 노래 ‘십오야’에 맞춰 외설스럽게 비칠 수도 있는 율동을 시켰다. 대리만족을 느꼈는지 직원들이 뒤집어졌다. 그의 사회 솜씨를 지켜본 현 회장이 심사평을 하면서 즉석에서 총무부장에게 “저 친구 특진을 시키라”고 지시했다. 회사에서는 그를 특진시키려 사내 석사학위 소지자 전원에게 1년의 경력을 인정했다.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생겼을 때 최종 후보자 중 그가 발탁된 것도 사회를 잘 본 덕이었다.
올해 환갑잔치는 초등 동창들과 단체공연 계획그는 잘못된 자신의 교육법, 의도적으로 칭찬에 인색했던 과거에 대해 피눈물을 쏟으며 아들에게 사과했다. 아들은 결국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군복무를 무사히 마친 후 결혼했다. 지금은 핀테크 회사에서 수학 천재 실력을 발휘 중이다. “취업 전 학원 강사를 한 아들, 학교 교사인 딸, 레크리에이션 강사인 아내까지 네 식구가 모두 강의하는 사람입니다. 다들 음악을 좋아하고 저마다 악기를 다루죠. 강의와 음악이 저희 가족의 공통분모인 셈이죠.”올해 환갑을 맞는 그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청춘 프로젝트 2020’이라는 타이틀로 가을에 단체 환갑잔치를 연다. 가족이 차려주는 잔치가 아니라 가족들 앞에서 벌이는 단체 공연이다. 춤과 노래, 연주가 있고, 랩도 한다. 쉰다섯 되던 해 그가 기획해 지난 4년 간 해마다 가족을 초청해 공개 리허설을 했다. 공연이라는 꿈이 생기자 다들 열심히 참여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야 돼요. 퇴직 후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아침편지로 바라본 세상 스케치’를 언젠가 책으로 내는 꿈을 꿉니다. 인생 2막도 목적이 이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된다면 떠난 후에도 사람들이 그리워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