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에 팔린 배달의민족이 대표 사례… 정부도 산업정책 방향 바꿔야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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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을 정부가 육성한다는 건 위험한 발상입니다. 유니콘은 비상장 스타트업이고, 망할 수도 있는 회사에요. 육성하기엔 위험성이 큰 미완성 기업이라는 거죠. 상장이나 인수·합병(M&A)으로 이 전설 속 동물이 ‘승천’하기 전엔 투자자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요. 중요한 건 유니콘이 아니라 유니콘에서 엑시트한(벗어난) 엑시콘입니다.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된 배달의민족이 바로 그런 엑시콘이죠.”유효상 숭실대 교수는 “유니콘 기업을 둘러싼 열기가 과열돼 있고 개념에 대한 오해도 있다”고 말했다. ‘유니콘 기업이라면서 왜 적자냐’는 지적도 있는데 ‘유니콘 기업이니까 적자’라는 설명이다.엑시콘은(Exitcorn)은 엑시트(exit)와 유니콘(unicorn)의 합성어. 상장하거나 인수·합병(M&A)으로 경영권을 매각해 유니콘에서 벗어나 더욱 도약한 스타트업을 말한다.
유니콘은 긱이코노미에 불과, 엑시콘 찾아야“유니콘은 본래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어느 회사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지, 투자자 관점에서 분석해 제안한 개념입니다. 이들은 1조원의 투자금을 날려도 개의치 않아요. 그게 그들만의 게임의 법칙입니다. 비유하면 피카소 그림이 소더비 경매장에서 얼마에 팔렸든 보통 사람들과 무관한 것과 같죠. 말하자면 일반 투자자가 유니콘 기업에 대해 버블이니 아니니 하는 건 넌센스에요. 이들 기업이 유니콘을 졸업해 상장하면 그때 평가해 주식을 사든지 말든지 하면 됩니다. 기업 가치가 조 단위에 이르는 게 성공의 징표인 건 맞지만 기본적으로 유니콘은 고용 창출을 많이 하거나 세금을 많이 내는 회사가 아닙니다.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 유발 효과가 큰 그런 기업도 아니에요. 모두 적자 상태이고 만들어낸 일자리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기업이 필요에 따라 단기계약직·임시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의 경제) 일자리들입니다. 그런 기업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성한다는 건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에요. 오히려 엑시콘을 지원하는 게 정책 목표가 돼야 합니다.”유니콘 기업은 산업정책 차원에서 접근할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또 배달의민족이 4조7500억원에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되면서 엑시콘이 된 것이야말로 게임의 법칙이 제대로 적용된 사례라고 말했다. 배달의민족이 유니콘 기업으로 있던 기간은 1년이 채 안 된다.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거지 유니콘에서 탈락한 게 아닙니다.”
바람직한 사례 같지만 배달앱 시장 독점 우려도 있는데요?“그건 다른 측면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팔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우리나라는 적자 기업이 상장을 할 수 없습니다. 유럽 배달앱 시장의 최강자인 딜리버리히어로가 고가에 사겠다고 할 때 응한 건 잘한 일이에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유니콘으로 만들었고 엑시콘에 등극한 완벽한 사례로 봅니다.”
유니콘의 의미는 그럼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어깨가 처진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공무원이 되거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유니콘 기업처럼 시가총액을 조 단위로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공계 출신이라야 가능한 일도 아니고 하이테크 기업도 아니에요. 배달의민족은 음식 배달앱, 야놀자는 숙박 예약앱입니다. 일반 소비자의 불편·애로 사항을 해결하면 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어요.”
관점에 따라서 헛꿈을 꾸게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정부의 유니콘 기업 육성 정책이 오히려 사행심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정부가 플레이어로 들어와 청년들에게 바람을 넣었다는 거죠. 앞서 말한 앱 서비스 정도의 비즈니스 모델로도 기업 가치가 100억원, 1000억원 하는 회사로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니콘은 왜 플랫폼 기업 일색인가요?“제조업체와 하이테크 기업은 구조적으로 단기간에 기업 가치가 커질 수 없습니다. 반면 유니콘은 개방형에 확장성이 큰 글로벌 기업들이죠. 제조업체·하이테크 기업은 이런 속성과 거리가 있어요. 하지만 제조업체·하이테크 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쉽게 안정될 수 있어 기업 가치가 1000억~2000억원대만 돼도 상장을 통해 10조원, 100조원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비상장 상태에서 1조원대로 성장한다는 건 유니콘이 미완성의 과도적인 기업이라는 의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기업 가치가 1조원에 이르도록 비즈니스 모델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얘기죠. 만일 어느 회사의 기업가치가 1000억원일 때 비즈니스 모델이 안정돼 상장 후 기업 가치가 1조원에 이른다면 어느 쪽이 국가 산업에 더 크게 기여한 것일까요?”그는 유니콘 기업을 띄우는 건 로또 당첨자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유니콘 기업은 미국·중국에 편중돼 있습니다.“80~90%가 미·중 두 나라 기업입니다. 3위권 이하는 서열을 매기는 게 무의미하죠. 제조업 강국인 독일·일본엔 유니콘 기업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를 제친 혁신국가라고 할 수 있나요?”
우버 대항군 키운 중국 전략에서 해법 모색을유 교수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벼락부자들], [유니콘] 등의 저서를 통해 국내에 유니콘 기업을 소개했다. 연세대에서 생명공학으로 학·석사를 마친 후 서강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건국대·숙명여대 교수를 거쳐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장을 지냈다. 삼성그룹·동양그룹에 근무했고 창업투자사·컨설팅회사 대표도 역임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란 무슨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정부는 뭘 해야 하나요?“카피캣 전략을 써야 합니다. 해외 시장에서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조사, 평가해 국내에 확산시켜야 해요. 우리나라에선 카피캣이 금기어처럼 돼 있지만 타다·마켓컬리·옥션 등도 실은 다 카피캣입니다. 유니콘 기업의 개수를 늘리고 이들 기업을 지원할 게 아니라 청년 창업가들에게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을 알려줘야 합니다. 미국보다 유니콘이 더 많은 중국이 쓴 전략이죠. 우버를 카피한 중국의 디디추싱은 우버와 함께 차량 공유 앱 세계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어요. 디디추싱이 오히려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했죠. 중국은 우버 차이나가 자국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디디추싱이라는 카피캣을 만들었고 그 바람에 중국에 진출한 우버는 발을 못 붙였죠.”그는 최근 불거진 타다와 택시업계와의 갈등, 규제 등의 문제가 풀렸을 때 과연 타다가 우버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문제가 없는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확산시키는 한편, 규제에 걸리는 시장은 공론화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규제 철폐의 효과를 모르면서 한꺼번에 풀자고 하는 건 나이브한(경험·지식이 부족해 순진해 빠진) 생각일 수 있다는 거죠.” 그는 카피캣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려 ‘카피 타이거’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고양이를 베끼는 게 아니라 호랑이를 복제하는 것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은 ‘카피 타이거’를 경제 신조어로 소개했다.
정부의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입니까?“유니콘연구소든 비즈니스모델연구소든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가 유니콘을 분석해 부상하는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확산시켜야 돼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연구원·무역협회·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이 참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10~20개 추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경진대회도 열 수 있어요.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이더라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창업가들이 수정해야겠죠. 맨땅에 헤딩하지 말고 좋은 모델을 응용해 유니콘으로 성장하고 투자도 받으라는 겁니다.”
플랫폼 산업에서도 우리 내수 시장이 테스트 베드 구실을 할 수 있을 거로 보나요?“상당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프라 면에서도, 시장의 마인드 면에서도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유 교수는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 등의 역서도 냈다. 그는 국내 대학에 앙트레프레너십 MBA 과정을 최초로 개설했다.
기업가 정신이 쇠퇴했다고 보나요?“쇠퇴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의 혁신적인 마인드입니다. 이렇게 볼 때 단적으로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김봉진 대표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보다 기업가 정신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쌀장사를 하거나 주식·부동산 거래로 큰 돈을 버는 건 기업가 정신과는 거리가 있어요. 회사 경영을 잘한다고 기업가 정신이 뛰어난 것도 아니죠. 빈손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해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거나 윤택하게 만들면서 그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기업인이야말로 기업가 정신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창업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주시죠.“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눈여겨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 방식, 어떻게 투자가 이뤄지고 시장에서 거래되는지 꾸준히 지켜보면 기회가 있을 거예요. 웨딩홀, 산후조리원도 플랫폼 무풍지대입니다. 플랫폼 기업 창업은 기술로 하는 게 아닙니다. 소비자가 불편을 느끼는 페인 포인트를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해 고통을 경감해주면 유니콘 기업도 될 수 있어요. 배달의민족이 음식 배달을 편리하게 만들고 야놀자가 모텔 예약의 품을 덜어 주었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