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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두려운 이유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이 된 상황… 패러다임 전환이 온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엔 예상치 못한 변화가 올 것이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에서 재건축 조합 ‘드라이브 스루’ 총회가 열리고 있다.
저명한 교육학자인 제롬 브루너(J. Brunner)는 1949년 미국 성격심리학회지에 트럼프 카드를 이용한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대학생들에게 아주 잠깐, 대략 0.3초 정도 트럼프 카드 사진을 한 장씩 슬라이드로 보여주고서 그게 무슨 카드인지를 맞춰 보라는 거였다. 실험에 참가한 미국 대학생들 대부분은 트럼프 카드로 하는 각종 게임에 익숙했고, 그들은 방금 지나간 카드가 무엇이었는지를 상당히 쉽게 맞췄다.

물론 이게 실험의 목적은 아니었다. 연구진은 카드에 사소한 조작을 했다. 정상적인 트럼프 카드는 검은색 스페이드, 검은색 클로버, 빨간색 하트, 빨간색 다이아몬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보여준 슬라이드 중에는 빨간색 스페이드나 검은색 하트로 된 변종 카드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실험 결과, 이런 변종 카드에 대한 반응은 대략 3단계로 나타났다. 처음 이런 카드를 본 학생들은 어떤 망설임이나 당황함도 없이 정상적인 카드인 것처럼 대답했다. 빨간색 스페이드를 보여줬어도 그냥 스페이드 혹은 하트라고 답하는 것이다. 물론 틀린 답이었다. 그러다 변종 카드를 좀 더 많이 보게 되면 학생들의 응답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온전한 정답을 내놓진 못했다. 까만 하트를 본 학생은 “스페이드인데 빨간색 테두리가 있는 것 같다…” 같은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본 것이 뭔지 확실히 깨닫고 정답을 찾았다. 일단 한번 이런 변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학생들은 그 다음에 다른 변종 카드를 봐도 쉽게 맞출 수 있었다.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못 사는 세상

그런데 일부 학생들은 실험이 끝날 때까지 변종 카드를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 나중에는 변종 카드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카드조차도 잘 못 보기 시작했다. 스스로 “스페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하트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혼동되는 지경”이라며 실험을 포기한 경우까지 있었다. 트럼프 카드에 얼마나 익숙한지는 실험 결과에 별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포커 게임을 별로 해본 적이 없는, 그래서 트럼프 카드를 자주 본 적이 없던 학생들은 정상적인 카드를 맞추는 시간은 (나머지 학생들보다) 조금 더 늦었지만, 변종 카드는 오히려 더 빨리 맞췄다.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토마스 쿤(Thomas Kuhn)은 자신의 책에서 이 실험을 인용하며 과학의 역사도 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과학자들 역시 완전히 객관적인 눈으로 연구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을 기초로 그 결과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타났을 때, 학자들은 처음에는 그 결과를 무시한다. 패러다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얻은 실험이 잘못되었다고 간주한다. 그 다음에도 맞지 않는 결과들이 나오면 이제는 패러다임과 결과를 조금 수정하거나 보완해서 끼워 맞춰 보려고 노력한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억지로 패러다임을 보완할수록 그 결과물은 진실로부터 더 멀어진다는 점이다. 천동설을 믿던 16세기 천문학자들이 만들어낸 태양계의 모습은 갈수록 기괴하고 어처구니없이 복잡해졌는데, 모두 천동설 이론에 맞지 않는 천문학 관측결과를 천동설의 틀에서 설명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변종 트럼프 카드를 보던 학생들이 초반에 ‘빨간 테를 두른 스페이드’니, ‘뒤집어진 하트’니 같은 이상한 답변을 내놓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낡고 틀린 패러다임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는 뭘까? 우선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과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을 혼동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포커 게임을 아주 많이 했고, 힐끗 스쳐지나가는 카드만 봐도 그게 무슨 카드인지 알아맞힐 정도로 트럼프 카드에 능숙한 사람일수록 변종 카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개 사소한 실수는 초보자들이 저지르지만 거대한 착오는 오히려 그 분야의 최고참 숙련자들이 저지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지식의 저주’라고 부르는 이런 오류는 우리나 과학자들이나 마찬가지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두 번째 이유는 기존 패러다임을 포기한 이후에 아예 답이 없는 상황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브루너의 실험에서 변종카드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카드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된 일부 학생들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을 포기했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면 정말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될 수도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인 과학자들이 순식간에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사태 파악을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사회적욕구·직업군 어디로 튈지 몰라

요즘 학계의 가장 큰 화두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한 예측이다. 이 주제로 정말 많은 전문가들의 모임이 열리고 그만큼 많은 예측을 담은 보고서들이 쏟아진다. 문제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는 점이다. 일단 몇 가지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감염력은 매우 높은 반면, 발견되기는 매우 어려운 이 바이러스의 특성은 백신 개발 전까지는 근절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게다가 세계 각국이 교역이라는 네트워크로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는 한, 이 코로나 시국이 완전히 정리되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요원해 보인다. 결국 우리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비정상적인 상황을 앞으로 당연한 정상 상황으로 여기고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는 종교모임이 믿음뿐 아니라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그로부터 얼마 후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거리와 상관없이 전국에서 특정 클럽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모임을 포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방역을 위해 집단 활동을 어떤 형태로든 변형하게 되면, 이전의 집단 활동에 종사하던 직업군도 따라서 사라지거나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변할까? 행사장에 관람객이 모이지 못하고, 연극무대에 관객들이 참여하지 못하며,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는 어떻게 해소될까? 열악한 노동조건이 집단 감염의 온상이라는 사실은 한국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확실히 드러났다. 그렇게 집단 감염이 시작되면 해당 노동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가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른다. 결국 노동조건의 개선은 노동자 인권 이전에 안보의 문제가 됐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기업들이 비용을 들여가며 노동조건을 개선할까? 아예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는 않을까? 그 방법은 무엇일까?

이렇게 지엽적인 것들만 보이는 이유는 내게 앞으로 올 세상을 이해할 패러다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예전의 하트와 스페이드가 아닌 다른 하트와 스페이드의 세상이 온다는데 내게는 그걸 알아볼 눈이 없다니… 이제는 브루너의 실험실에 앉아있던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40호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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