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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7) 우리 회사는 왜 변하지 않을까?]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를 원치 않는 두려움 

 

새 시대엔 새 방식으로 무의식적 저항 넘어 조직 변화 모색해야

▎경북도가 5년 전 의견을 소신껏 발언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계급 없는 토론회를 열어 7급 이하 젊은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두 달 전의 일이다. 박과장이 담당하던 거래처가 제안 겸 약간의 불만을 제기해왔다. 자신들이 구입하고 있는 제품에 불편한 점이 있으니 이러저러하게 바꿔주면 좋겠다고 했다. 들어보니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상당히 생산적이었다. 다른 거래처에서도 환영할 것 같았다. 팀장 생각도 마찬가지여서 정식으로 기안을 올렸다.

며칠 후 재무팀과 개발팀장이 연락을 했다. 빙 둘러서 얘기했지만 그들의 말을 한 마디로 하자면 이랬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 재무팀장은 비용 때문에 안 된다고 하고, 개발팀은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바쁘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안 좋은데 왜 그런 것까지 들고 오느냐며 거래처를 잘 설득하라는 거다. 세상에, 요즘 같은 시대에 고객을 설득하라니. 억지 부리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불경기이니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쇠 귀에 경 읽기다.

한두 번이 아니니 익숙해질 만도 하련만 그럴 수도 없는 게 날마다 들려오는 소식들 때문이다. 다른 회사들은 인사 시스템을 바꾼다, 거주지 근처에 이동 사무실을 연다 등등 하루가 다르게 미래를 위한 변신을 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들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고 있고, 맨 꼭대기는 뭘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워낙 세상이 요동치니 가끔 뭔가 한다고 법석을 떨긴 하는데 그때뿐이다. 한두 달 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유야무야 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마음이 얼마 전부터 심란해지고 있다. 1년 반 전 유망하다는 스타트업으로 간 대학 선배가 “혹시 올 생각 없느냐”고 했던 것이다. “연봉이 조금 적긴 하지만 성장 중이니 아마 몇 년 일하면 스톡옵션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일하는 분위기 하나는 비교할 수 없어.” 저번에 만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처음엔 너무 자유스러워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 그 선배도 알만한 대기업을 다니다 그곳으로 갔기에 왜 그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괜히 속 끓이지 말고 이리 와서 마음껏 일해 보라’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듣는 순간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이번에 확 바꿔 봐?

하지만 겁도 난다. 낯선 곳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아냐? 어렸을 적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가 공부하기 싫다고 할 때마다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호랑이 가죽은 갖고 싶은데 호랑이는 무섭지?”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자신이 지금 딱 그런 상황이다.

마음이야 10년 가까이 다니고 있고 일도 익숙한 이곳에 있고 싶다. 하지만 서른 중반이 넘어가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회사가 내리막길을 걸으면 다른 회사들처럼 명퇴 바람이 불 것이고 그러면 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는데, 40 넘으면 다른 곳으로 가기도 힘들잖아? 지금 오라고 할 때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있자니 답답하다 못해 불안하고, 가자니 두렵다.

페이스북 저커버그의 수모

회사 다니면서 이런 고민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과장 중후반쯤 되면, 성장기 때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다들 한 번씩 겪는다. 다른 곳에 가서 그나마 적응할 수 있는 한계선쯤 되는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과장처럼 다니는 회사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수록 고민은 깊어지고 일에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이상한 건 회사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보면 다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들 이대로는 안 된다며 변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렇듯 모두들 한 목소리를 내는데도 말만 무성할 뿐, 변하는 것도, 나서는 사람도 없다. 이러니 더 답답하다. 도대체 왜 우리 회사만 변하지 않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셀 수도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낚시꾼이 고기 못 잡는 이유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 것이다. (혹시 주변에 ‘도시 어부’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라. 수도 없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물고기 숫자보다 많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여기서는 이 가운데 주요한 세 가지만 알아보자. 제대로 알아야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고’(go)를 하든, ‘스톱’(stop)을 하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예전 적자투성이 회사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한 최고경영자(CEO)의 이야기다. 가서 보니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완전히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면담과 설문조사를 했더니 기가 막힌 대답들이 나왔다. 대답들을 종합해 보면 이랬다. ‘맞다. 완전히 모든 걸 뜯어고쳐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잘하고 있으니 건드리지 말고.’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박과장 회사 사람들이 사석에서는 모두들 변화를 외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게 이 때문일 것이다. 나를 빼놓고 다 바꾸라니, 누가,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생명체는 일단 자신의 생존이 안정화되면 위기가 아닌 이상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꾸는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다, 바꾼다고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아니 사실은 웬만한 위기가 닥치지 않으면 바꾸지 않고 버틴다. 총론으로는 변화에 찬성하면서도, 그 변화가 자기에게는 미치지 않았으면 한다. 애써 안정시켜 놓은 삶이 불확실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많은 연구가 밝혀내고 있다시피 우리 인간은 기회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뭔가 바꾸려 할 때 손해는 눈에 보이지만 기회는 저 멀리에 있다.

여기에 우리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뿌리 깊은 성향이 이 무의식적인 저항을 지원한다. 얼마 전 방한한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윌리엄 바넷 교수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 제자가 괜찮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있다고 해서 강의에 초대했다.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 캐주얼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와서 자신이 창업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반응이 어땠을까?

학생들은 바넷 교수의 수업 중 가장 형편 없었다고 평가했다. ‘들을 가치도 없다’ ‘저런 사람이 기업가라?’ 다들 이랬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후엔 완전히 달랐다. 같은 창업자가 와서 특강을 하겠다고 하니 서로 듣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왜 그랬을까? 그 창업자가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였던 것이다. 그런데 2년 전에는 왜 그렇게 혹평을 했을까? 그때는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그의 잠재력을 본 게 아니라 눈앞에 있는, 대학생 같은 옷차림에 배낭을 멘 저커버그의 모습만 봤다.

대니얼 길버트 하버드대 교수는 사람들이 이러는 게 ‘현재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과 사람을 평가할 때 오늘,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 저커버그의 얘기를 듣고 그의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는데 그의 옷차림만 보고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라고 다를까? 자, 대형 마트에 쇼핑하러 갔는데 배가 고프다. 이럴 때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밥을 먼저 든든하게 먹고 쇼핑을 하든가, 아니면 눈 꼭 감고 참으며 쇼핑을 한 다음 밥을 먹는 것이다. 혹시 이 두 상태가 쇼핑에 영향을 미칠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어차피 사야 할 걸 사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등 따습고 배 부른 상태에서 쇼핑을 하면 상대적으로 적게 사고, 배고픈 상태에서는 많이 산다. 역시 현재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조직을 변화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현재 기준으로 판단, 손해 가능성부터 떠올리니 부정적인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어 보이지 않는 심리적 저항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한다고 되겠어?” 이런 말이 나온다. 전력투구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러면 변화는 산 넘어 산이 되고 만다.

변화에 눈감고 현실에 안주하면 퇴보


▎사진:중앙포토·폴인
이런 성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현되면 위기가 온다고 해도 말과 움직임만 부산할 뿐 정작 바꿔야 할 것들을 바꾸지 않고, 바꾸지 않아도 될 것들을 바꾼다. 우리가 이러는 오래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진화해 오는 동안 눈앞의 현실에 적응하기 바빴다. 당장 먹고 사느라 멀리 내다볼 수도 없었고 그럴만한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아남았고 우리 또한 그들의 후손이다 보니 우리 안에도 이런 성향이 강하다. 느리게 천천히 오는 위기는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다. 닥쳐야 움직인다. 아무리 지구온난화를 경고해도 귓등으로 듣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 그것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다르다.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아도 우리는 비행기 사고를 더 끔찍하게 생각한다. 자동차 사고는 개별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게 일어나지만, 비행기 사고는 대형으로, 그리고 매체를 통해 끔찍한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조용히 느리게 오는 회사의 위기는 언제나 발등의 불로 떨어져야 깨닫게 되고 그때서야 허둥지둥 갈팡질팡한다. 심각성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을 미리 알고 뭘 좀 바꿔보려고 누군가 나서면 발목을 잡는다. 은근한 시기와 질투로 그 ‘잘난’ 사람을 끌어내린다. 이들에게 위기는 먼 일이고 경쟁자가 잘 되는 건 발등에 떨어지는 불이다. 그래서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지원한다. 덕분에 능력은 없지만 욕심은 가득한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공멸의 지름길로 가는 여정을 스스로 시작한다.

인(人)의 장벽은 이것만이 아니다. 조직에는 변화를 원치 않는 이들이 있다. 현재 상태가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기 때문에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이다. 예전 미국과 영국에서 아동 노동이 일상적인 때가 있었다. 이걸 하지 못하도록 법을 정하려 하자 국가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아동 노동의 혜택을 보고 있던 기득권자들이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 대학 교수가 최근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펴내며 이런 말을 했다. “지배세력은 지금과 다른 사회구조가 가능하지 않고 불평등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조직에서도 이들은 아주 낯익은 말을 한다. “시기가 좋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불경기인데 우리끼리 내부 총질하면 안 된다.” 부정적인 면을 침소봉대해 변화하지 못하게 막는다.

유능했던 상사도 앞길 막는 걸림돌

자신의 이권에 눈이 어두운 기득권자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의도치 않게 변화를 막는 이들이 있다. 디지털카메라(디카)를 개발해 놓고도 시장에 출시하지 않았다가 폭삭 주저앉은 코닥 경영진은 사리사욕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을까? 유능한 덕분에 고위직에 오른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디카가 없어도 잘 나가고 있으니 천천히 출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유능한 덕분에 고위직이 된 이들이 자신들의 일하는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고집해 변화를 정체시킨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성공적이었던 건 차에 탄 채 검사를 받는 드라이브스루 같은 신속한 대응책들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드라이브스루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국내 코로나19 환자 1호 주치의 김진용 씨인데(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그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런 말을 했다. “전통적인 감염병에는 경험 많은 원로가 대응을 잘 하지만, 신종 감염병은 경험치가 통하지 않아요. (이번에는) 497(40대, 90년대 학번, 1970년대생) 세대 의료진의 역발상과 순발력이 통했어요. (...) 사태 초반 위원회 윗사람들은 회의실에서 도시락 먹으면서 대책회의를 하자고 했습니다. 40대 의사들은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해 줌·스카이프·카톡으로 실시간 대응을 했어요. 자가격리 매뉴얼도 단톡으로 소통하며 몇 시간 만에 만들었고요.”

‘높은 분’들의 방식으로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수많은 조직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들이 한둘이 아니고,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데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을 고수한다. ‘높은 분’들이 이럴수록 변화는 강 건너 남의 일이 되고 만다.

경영자의 기술 편중도 실패 원인

조직의 변화가 더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최고경영자들의 관심이 조직보다는 기술에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과거의 성공 경험에 갇힌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알다시피 우리는 추격자 전략, 그러니까 선진국을 따라잡는 전략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뤘다. 그들의 기술을 획득하고 개발하는 게 최고의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기술이 성공의 전부라고 여기는 경영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조직 시스템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기술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요즘 잘 나가는 세계적인 회사들은 하나 같이 조직의 변화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한 중견기업 사장이 한 말이 있다. “기술은 눈에 보여요. 하지만 조직 변화는 답이 없어요.”

이런 조직으로는 안 되겠다는 걸 느끼고는 있지만 기술 우선 성향이 뿌리 깊은데다 조직을 통해 성장해 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잘못했다간 조직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 더 그렇다. 젊은 세대들이 답답해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중첩돼 있다.

조직 변화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곳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관건은 언제나 사람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을 넘어설 때 성공했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했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한 조직은 젊은 세대를 압박,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으로 등을 떠밀어 떠나게 한다. 젊은 피가 사라지니 미래도 사라진다. 그건 그렇고 박과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언급한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강하다면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셋 모두 강하다면? 그가 바라는 미래가 쉽게 오지 않을 게 확실하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41호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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