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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빠진 산업은행] 대우조선·KDB생명·대우건설 매각 등 곳곳에 ‘암초’ 

 

아시아나항공 M&A는 안개 속… 생사기로 기업 지원도 특혜시비로 ‘눈치’

▎임기만료를 두 달여 앞둔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 사진:연합뉴스
KDB산업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매각 등에서 뜻하지 않게 암초를 만난 데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여기에 대우조선, STX조선해양 노동조합 등이 매각과 구조조정 등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어떻게든 매각을 완수해야 하는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매수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이 자칫 특혜 시비로 이어질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무산 우려


산업은행과 산업은행 자회사 등이 최대주주인 국내 주요 기업들은 KDB생명(92.73%), 대우조선해양(55.72%), 대우건설(50.75%), STX조선해양(35.26%), 한진중공업(16.14%) HMM(13.02%) 등이다. 산업은행은 이들 기업 가운데 KDB생명·대우조선·STX조선·한진중공업 등에 대한 매각을 진행하고 있지만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대우조선노조) 등이 매각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금속노조에 ‘제3자 지위’를 부여한다고 통보하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 결합 심사 과정에 금속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EU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 결합 심사 자료를 열람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금속노조가 양사의 합병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EU의 기업 결합 심사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 결합 심사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만큼, 양사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사는 한국을 포함해 EU·싱가포르·중국·일본·카자흐스탄 등 경쟁 당국인 6개 국가에 기업 결합 승인을 신청했는데,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는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나머지 5개 국가 가운데 한 곳이라도 기업 결합을 승인하지 않으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은 무산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이번 제3자 지위 획득은 노동 친화적인 EU의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라며 “산업은행이 노동집약적인 조선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M&A를 밀어붙였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 정부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M&A를 부당 지원했다’며 한·일 조선업 분쟁 해결을 요청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대중공업 측은 “WTO에 문제를 제기한 주체는 일본 ‘국토교통성’으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기업 결합을 심사하는 일본 ‘공정취인위원회’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으나,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일본 정부가 양사의 M&A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의 KDB생명 매각을 두고 ‘졸속 매각’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은 최근 KDB생명 매각 본입찰을 진행했는데,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JC파트너스 한 곳만 입찰에 참여했다. 산업은행은 2010년 KDB생명의 전신인 금호생명을 인수하고 이후 유상증자 등을 통해 10년간 1조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했는데, KDB생명의 매각 금액이 총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지면서 “졸속 매각”이라는 비난이 흘러나온다.

다른 한편에서 산업은행의 KDB생명 매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KDB생명 매각 등의 과제를 안고 지난해 7월 산업은행에서 KDB생명 수석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백인균 전 수석부사장이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 6월 코리아신탁 대표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이미 2014년 두 차례, 2016년 한 차례 등 세 차례에 걸쳐 KDB생명 매각에 실패한 바 있다.

산업은행이 2018년 매각에 실패한 대우건설에 대한 매각 작업은 윤곽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산업은행은 2018년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호반건설을 선정했으나, 호반건설이 실사 과정에서 대규모 해외 부실이 드러났다며 인수 포기를 선언하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 측은 “당분간 매각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KDB인베스트먼트는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로, 지난해 6월 설립됐다.

산업은행의 ‘고통 분담’ 이중 잣대 비판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인 아시아나항공 매각도 표류하고 있다. 금융업계와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6월 9일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 재협상 등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입장 발표 당시 “서면을 통해 각자 의견을 전달하자”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산업은행 측에 전달된 서면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6월 17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60년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편지를 하느냐”며 쓴 소리를 내기도 했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도 같은 날 “HDC현대산업개발 측에 대면 협상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심각한 경영 위기에 내몰린 두산그룹, 한진그룹 등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에 대해서도 엇갈린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산업은행이 국내 기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을 이유로 국내 기업에 ‘알짜 자산’ 매각을 강요하면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전부 매각한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산업은행에 자금 지원을 받아 살아남는다고 해도 경쟁력이 대폭 줄어드는 셈”이라고 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고강도 자구 계획을 요구하는 것은 대기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칫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최대현 부행장은 지난 6월 17일 쌍용자동차가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산업은행이 돈만 넣으면 기업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최 부행장은 쌍용차 지원이 이뤄지려면 “책임 주체(대주주)가 의지를 갖고 책임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회사의 지속 가능성도 확인돼야 한다”고 했다. 대주주의 고통 분담이 없으면 자금 지원이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대주주 고통 분담 없이 근로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TX조선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주인 STX조선은 노조 파업 등으로 조업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금속노조 STX조선지회(STX조선노조) 측은 사측이 2년간 무급 순환 휴직을 진행한 뒤 유급 휴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6월 1일부터 전면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장섭 금속노조 STX조선지 회장은 “노사는 당초 2018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무급 순환 휴직을 하기로 했는데, 산업은행이 일방적으로 무급 순환 휴직을 3년 연장하라고 통보했다”며 “산업은행은 STX조선지회 조합원 187명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의 퇴사, 향후 3년간 무급 순환 휴직, 고정비 700억원 삭감 등 기존 자구 계획안을 이행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산업은행은 노사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지만, 실제 산업은행 관계자의 허락이 없으면 10원도 지출하지 못하는 구조”라며 “경남도와 창원시 등은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한 지원에 대해 긍정적인데, 산업은행이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신청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STX조선노조 측은 “노조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며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파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산업은행은 노사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자구 계획 등에 대한 부분은 노사의 자율적 합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위기에 내몰린 기업에 대한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 대원칙은 경영 실패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고통 분담인데,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근로자에게만 모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산업은행 직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989만원으로, 2018년 연봉(1억952만원)보다 소폭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연결기준 당기 순이익은 7 060억원에서 2791억원으로 60% 급감했다.

“민간펀드 조성, 생존가능성 판단해야” 지적도

다른 한편에서는 산업은행이 적기에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아 오히려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사례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한진그룹은 지난 2014년 2조원 규모의 에쓰오일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대한항공의 유상증자 등을 통해 한진해운 살리기에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다. 한진해운 측은 2016년 8월 총 5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 방안 등이 담긴 자구 계획안을 채권단에 제출했으나, 채권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결국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은 이듬해인 2017년에 파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산업은행 등은 국내 해운업 재건과 관련해 HMM(옛 현대상선)에 3조원 이상의 유동성 지원 등에 나섰으나 만족할만한 경영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MM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으로 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지난해 1분기(1057억원)와 비교해 적자를 약 1000억원 줄였다. 그러나 해운업계 안팎에서는 “법정관리 전 한진해운의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등을 감안하면 국내 해운업 재건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글로벌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6월 25일 기준 HMM의 선복량은 57만5696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세계 9위이다. 법정관리 전의 한진해운 선복량이 약 60만TEU로 세계 7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위원장은 “산업은행은 재무적 구조조정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밖에 없고 일자리 문제 등 정치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적기에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렵다”며 “지금이라도 민간 펀드를 조성해 기업의 생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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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호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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