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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부부를 위한 ‘시간’은 없다] ‘출산 장려’에도 난임치료 휴가는 ‘3일’ 

 

2018년부터 난임치료 휴가 실시… 실제 난임 부부에겐 턱없이 부족

▎2018년 국회에서 열린 난임지원 정책을 촉구하는 정책간담회. 정부의 난임지원은 매년 확대돼 2019년 시술비 지원 나이 제한은 사라졌지만, 난임치료 휴가는 여전히 3일로 한정됐다.
“남은 연차휴가가 이제 없어서 내년에 다시 시도하려고요.”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직장인 이 모(33)씨는 올해 초 산부인과에서 난임 판정을 받고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난임 치료를 시작했다.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는 이씨는 질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난포를 키우는 호르몬 주사를 직접 놓으며 서너 번 병원을 들러 난포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고, 추가로 체외에서 수정시킨 배아를 이식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7~8번 병원을 다녀오고 나니, 남은 연차휴가는 모두 소진상태가 됐다.

이 씨는 “병원에서 진단받고 검사하는 데 불과 2~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난포를 키우고 난자를 채취하고 나면 배에 복수가 차서 움직이기 거북한 상태가 돼 휴식이 필요하다”며 “회사에서 배려를 해줘 난임 치료 휴가 3일을 모두 사용했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니 3일로는 턱도 없었다. 이제 남은 휴가가 없어서, 올해가 지나고 내년부터 다시 새로운 연차휴가로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난임 진료 환자 23만명 넘어


난임 치료를 받는 부부가 늘고 있다. 난임이란 1년간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했음에도 임신이 성공하지 않았을 때를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난임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7년 20만8704명에서 2018년 22만9460명, 2019년에는 23만802명으로 증가했다.

난임의 원인은 남성의 무정자증, 여성의 나팔관이 막혀있는 경우 등 다양하다. 명확한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10~15%에 이른다. 치료는 배란유도, 인공수정, 체외수정(시험관 시술) 등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난임 부부들 사이에서 ‘첫 번째 시도로 임신에 성공하는 것은 로또 맞은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로 대부분의 난임 부부들은 여러 번의 시술을 시도한다.

이처럼 한 번의 병원 방문으로 끝나지 않는 치료이기 때문에 직장인 난임 부부는 본격적인 난임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부인과 진료시간이 직장인들의 근무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난임 부부들은 치료를 받는데 ‘눈치 보기 바쁘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기세판에는 ‘3일의 난임 휴가기간을 최대 3개월까지 연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 글을 올린 작성자는 “여자의 몸은 한 달에 딱 한 번의 배란일에만 임신이 가능하다”며 “배란일을 맞추기 위해 병원을 방문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내 몸의 기능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주기의 병원 가는 횟수가 최소 3번이고 인공수정을 위해선 5~6번의 병원 방문을, 시험관 시술은 최소 6~7번 이상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난임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를 것이다. 이처럼 임신을 위해 힘든 과정을 진행하는데 현재 난임 휴가는 겨우 3일이다.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난임 부부가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다닐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7월 10일 현재 이 청원은 1052명이 동의한 상태로 지난 6월 20일 청원 마감했다.

현재 법적으로 보장된 난임 치료 휴가는 연간 3일로 최초 1일은 유급, 나머지 2일은 무급으로 정해졌다.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 의학적 시술을 하는 당시에만 사용할 수 있는 휴가제도로 배란 유도를 위한 사전 준비단계는 포함하지 않는다. 또 남녀 모든 근로자가 사용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지난 2018년 5월 ’남녀고용평등법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행령에 따른 것으로, 난임 치료에 개인 연차 휴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근로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난임 치료 휴가 법령을 시행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난임 부부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먼저 3일이라는 기간이 난임 치료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산부인과 권고 사안에 따르면 인공수정을 위해서는 난자 채취 1일, 배아이식 및 휴식에 3일이 필요하고, 체외수정을 한다면 인공수정 1일, 안정기 3일이 필요하다.

이외에 복강경을 이용한 자궁 수술은 수술 후 3~4일 후 퇴원할 것을 권유받고, 개복술은 이보다 더 길게 입원이 필요하다. 결국 난임 치료 휴가인 3일로는 어떠한 시술도 완벽히 끝낼 수 없다는 뜻이다. 한 번에 임신에 성공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치료를 반복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3일이라는 기간은 난임 부부에게 부족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난임 휴직’ 최대 2년 보장받아

반면 공무원은 난임으로 최대 2년간 휴직할 수 있어, 최대 3일 휴가만 받을 수 있는 기업을 다니는 난임 부부는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다는 지적도 더해졌다. 물론 몇몇 대기업은 공무원과 같이 난임 휴직 제도를 펼치기도 하지만 아직 이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난임 시술비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지원받을 만한 사회적 상황은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난임 부부에게 인공수정, 체외수정 중 일부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및 100% 전액본인부담금 등을 지원한다. 시술비 지원은 매년 확대해 정부는 지난해엔 지원자의 연령제한을 없애고, 소득기준 130%이하에서 180%이하로 확대했다. 지원횟수도 늘었다. 종전까진 체외수정 4회만 지원했으나 지난해부터는 신선배아 체외수정 4회, 도열 배아 체외수정 3회, 인공수정 3회 등 총 10회를 지원한다. 결국 시술비는 10회까지 지원하지만 이를 지원받아 시술받을 수 있는 시간적 기회는 지원해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난임치료를 받는 직장인 김모씨(34)는 “난자 채취부터 이식까지 13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비용적인 측면도 부담되지만 사실 이보다 부담되는 건 직장에서의 시선”이라며 “난임 치료 휴가를 쓴다고 하니 모두가 만날 때마다 임신여부를 물어봐 불편하다. 휴가가 아닌 단 한 달이라도 휴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안정적으로 준비하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6일 권은희 국회의원(국민의당)이 난임 치료 휴가 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권 의원은 현행 연간 3일인 난임 치료 휴가 기간을 연간 30일의 유급 휴가를 나눠서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실었다. 또 난임 시술을 받기 위해 하루에 2시간은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해 발의한 상태다.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위원회 위원이자 서울마리아 병원의 진료부장인 주창우 산부인과 전문의는 “난임 치료 후 임신 성공 여부는 지극히 개인 차가 존재한다. 한 번의 시도에 성공하는 부부는 3일의 휴가로도 충분하지만 여러 번 시도해야 하는 부부의 경우엔 병원을 자유롭게 오지 못해 안타까운 상황이 많다”며 “또 생리 주기에 따라 시술 일이 2~3일 전에 급하게 정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같은 상황을 기업에서 인지하고 난임 시술을 받는 직원이 시술 때마다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신세계, 롯데쇼핑…난임 직원 지원하는 기업, 유통업계에 몰렸다


▎ 사진:연합뉴스
법적 난임 치료 휴가 3일 외에 기업 자체적으로 난임 부부 직원을 지원하는 기업도 있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600대 기업의 여성 고용 비율 분석을 토대로 여성 고용 비율이 과반수를 넘거나 여성 직원 수가 많은 기업의 복지제도 운영 사례를 조사한 결과, 난임시술비를 지원하고 난임 치료 휴가와 난임 치료 휴직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이 유통업계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기업들은 난임 부부를 위한 복지뿐만 아니라 이후 출산, 육아 지원제도도 다른 기업에 비해 더욱 유연하게 잘 갖춰진 것이 특징이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기업 중 가장 길게 난임 휴직 제도를 실행하는 기업은 신세계였다. 신세계는 직원 중 난임 부부가 최대 6개월까지 난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후 임신을 하면 2시간 단축 근무 및 탄력근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법정육아휴직 외에 추가로 최대 1년을 더 무급으로 육아휴직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 육아휴직 후 다시 회사로 복직할 때는 직원이 희망하는 사업장에 발령 날 수 있도록 희망부서 우선배치 제도를 진행한다. 이마트도 난임 치료를 위한 휴직 제도를 운영한다. 난임으로 진단받은 직원은 3개월간 휴직할 수 있고, 이 난임 휴직은 두 번 사용할 수 있다.

롯데쇼핑은 난임시술비를 지원한다. 정부의 지원 외에 기업 자체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비용에 대해 100만원 한도 내로 비용을 지원한다. 또 난임 진단 직원에게 휴가 3일을 유급으로 지원한다. 이후 출산 후에는 육아휴직으로 최대 2년을 보장한다. 남성 직원을 위한 휴직도 따로 있다. 배우자가 출산한 남성 직원은 출산 즉시 한 달간 자동으로 출산 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데 이때 통상임금 100%를 지원한다.

유통업계 밖에서는 삼성전자가 돋보인다. 삼성전자는 유급으로 난임 치료 휴가 3일을 지급하고, 휴직을 원하는 난임 부부 직원에게는 최대 1년간 난임 휴직을 지급한다. 또 삼성전자는 육아휴직을 최대 2년으로 확대 운영하고 자녀가 만 12세가 될 때까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외에 CJ프레시웨이와 아시아나항공, 한화갤러리아 타임월드 등이 난임 부부 직원을 위해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들은 난임, 출산, 육아지원이 잘 갖춰진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기업문화를 확대하는 건 여성 고용을 늘리는 데 필요한 제도지만,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실시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 등 정책적 지원 역시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43호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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